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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베네딕도, 《수도규칙》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15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5.20 02:51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272년-337년)에 의해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된 것과 그를 칭송하면서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교회’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카이사레이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0년-265년 사이-339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그에 힘입은 기독교의 제국종교화는 교회의 남성성직자중심주의를 강화시켰습니다. 성직자들은 준공무원 대우를 받았고, 징집이 면제되었으며, 국가로부터 사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황궁의 예식과 복식, 성가대를 수용했고, 교회는 부유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예배당은 화려해졌고 교권은 강화되었고, 이단과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점차 지상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교회 안에 이미 하나님 나라를 제도적 교회와 동일시하는 것에 도전하는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298년-373년)와 루시퍼 등 이른바 ‘삼위일체론적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와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통합을 거부하면서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나님의 평화를 보장한다고 확신하고, 교회의 자율성과 자유를 위한 정치적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스 및 라틴 교부들은 이론적으로 반국가적 공산주의적 이상에 사로잡혀, 기독교를 세상에 적응시키기보다 세상을 기독교에 적응시키려고 하였습니다. 특히 파코미우스(Pachomius, 292년-346년)는 320년 경, 이집트 남부에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공동체 수도원’을 건립하여 예수 운동의 모범에 가까이 가려고 하였습니다.(1) 수도사들은 성서에 근거한 ‘규칙서’를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고,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예배와 식사를 공동으로 하는 ‘밥상공동체’였습니다.

다른 한편의 수도원 운동은 ‘은둔 수도원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은둔수도승으로 유명했던 인물은 ‘안토니우스’(Antonius, ?-356년)였습니다. 그는 나일강변의 작은 촌락에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수도승이 된 후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최소한의 의복과 깔고 잘 거적만 가지고, 야채만을 먹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금식과 기도와 명상으로 평생을 보낸 그는 교만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서적의 소유를 배격하고 성서를 기억에만 의존하여 가르쳤습니다.(2)

그러나 ‘공동체 수도원’들은 수도사들의 수행과 결합된 노동으로 점차 부유해졌습니다. 가난은 더 이상 거부되어야 할 악이 아니라, 악한 세상으로부터 해방되는 수단으로 이상화되었고, 사회적 불평등과 착취에서 기인된 불공평한 가난은 중산층 엘리트가 된 수도사들의 내적 자유를 위한 가난과 혼동되었습니다.

비록 금욕적 전통 안에 있던 수도원 운동이 사회개혁의 윤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세계를 부정하는 윤리로 작용하였지만, 그러나 수도원 운동은 기독교가 국가종교가 된 이래, 중요한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한 지류를 형성했다고 할 것입니다.(3)

가톨릭과 정교회는 오늘까지 수도회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개신교가 16세기 종교개혁 후 수도회 전통을 없앤 것은 – 당시의 역사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 개신교의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공회, 독일에 있는 디아코니센 개신교 여성 수녀회,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등 개신교의 수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매우 미약하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도 사제는 물론 수사나 수녀가 되겠다는 지원자들이 급감하고 있어 앞으로는 자칫 수도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고대 교회의 수도원 전통을 비교적 자세하게 전승하고 있는 베네딕도(480년경-547년)의 ⟪수도규칙⟫(4)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네딕도는 지금부터 1500여 년 전 이탈리아 중부 노르치아(Norcia)에서 태어나 수도회를 조직했고, 몬테까시노 수도원에서 삶을 마쳤습니다. 처음에는 홀로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했지만, 제자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공동체수도원 운동으로 전환했습니다. 베데딕도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레고리우스 대종(590년-604년 재임)의 대화록에 실린 자료를 통해서일 뿐, 베네딕도 자신은 ⟪수도규칙⟫ 외에 남긴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수도규칙⟫에 자신에 대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사람됨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5)

▲ Tal Ganoub Qasr al-Agouz(탈 가눕 카스르 알 아구즈) 유적지는 역사적으로나 현대의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진 고립된 장소인 Bahariya Oasis(바하리야 오아시스)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고고학 유적은 현지 조사관들에게 알려졌지만, 카이로의 Français d’Archéologie Orientale(프랑스 오리엔탈 고고학 연구소)와 노르웨이 오슬로의 MF Vitenskapelig Høyskole(MF 비텐스카펠리그 회이스콜레)의 노르웨이-프랑스 팀이 발굴을 진행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 팀은 2009년, 2013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20년 12월에 세 차례에 걸쳐 이 유적지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이 유적지가 lavra(라브라)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교 수도원의 일종으로, 여러 개의 방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유적지는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 많은 건물이 벽과 때로는 지붕이 온전히 남아 있다. ⓒhttps://the-past.com/news/earliest-christian-monastery-found-in-egypt/

수도원은 베네딕도 이 전에도 많이 있었고, ‘규칙서’도 베네딕도의 ‘규칙서’ 외에 많이 있었습니다. ‘베네딕도 규칙서’ 이전의 수도 규칙서로 현존하는 것도 12개나 있지만, 베네딕도 규칙서가 다른 규칙서들보다 더 조직적이고 완전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6)

모두 73개장으로 구성된 규칙서는 수도원장의 과제와 임무, 수도자들에게 요청되는 덕(순명, 침묵, 겸손 등), 기도의 방법(아침기도, 야간기도, 시편암송순서 등) 등 영성적이고 규율적인 부분이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더 많은 부분은 수도원 내의 생활규율에 대한 것입니다. 매일의 육체노동, 수도원의 기구들과 물건들에 대한 태도, 주방봉사자들의 임무, 음식과 음료의 분량에 대하여, 식사 시간에 늦게 오는 사람에 대한 책벌(공동식탁 참여를 허락하지 말고 격리시켜 혼자 식사하게 하고 자기 몫의 술도 주지 말라), 침구와 옷과 신발에 대한 규정(요와 얇은 이불과 두꺼운 이불과 베개가 있으면 충분하다. 수도승에게는 잠잘 때와 빨래할 때를 위하여 두 벌의 옷이면 충분하다) 등 아주 상세한 규정들이 그것입니다.

수도회 전통도 없고, 수도원 경험도 없는 개신교 신자들은 수도규칙에 별로 관심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시행하는 ‘템플 스테이’나 단기 수도원 체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던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른바 제도적 종교에 대한 관심은 시들고 있지만, 종교성, 종교적 체험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일상생활로부터의 격리와 초월 경험, 절제되고 단순한 생활, 삶의 깊이의 탐구를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온 몸으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요.

저는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을 읽으면서 불교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7)이 떠올랐습니다. 일종의 불교입문서인데요, 지눌의 ‘계초심학인문’, 원효의 ‘발심수행장’, 야운의 ‘야운자경서’, 이 세 가지 글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불교에 입문한 초심 학인, 특히 출가 승려들의 필수입문교재이자 승가대학의 필수교과목으로, 출가자들이 알아야 할 범절과 수행에 관한 글이자(지눌), 수행의 중요성과 수행의 방법(원효), 수행자가 알고 지켜야 할 법규(야운)에 대해 쓴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발심자경문’은 방을 드나들 때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방에서 대화할 때는 옆방에 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화장실 사용과 세수, 양치 방법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 수행자는 부드러운 옷과 좋은 음식을 수용해서는 안 되며, 자기 재물에 인색하지 말고 남의 물건을 구하지 말며, 좋은 벗은 가까이 하고 나쁜 벗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진리는 무엇이고, 해탈은 어떻게 하는지 등 고상하고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태도로 시작하는 것이지요.

종교적 삶은 무언가 일상생활과 다르다는 생각, 아니 달라야 한다는 생각, 평범하지 않고 비범해야 하고, 보통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종교인도 모든 인간적 삶이 주는 한계와 모호함 안에 있습니다. 종교 없이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초월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의 훈련과 실천은 자신을 어느 종교에든 단단하게 구속시킬 때 더 자유로워집니다.

미주

(1) 유스토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엄성옥 번역 (서울: 은성, 2012), 228-232.
(2) 유스토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227.
(3) 로즈메리 레드포드 류터, ⟪메시야 왕국⟫, 서남동 역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1), 21.
(4) 베네딕도, ⟪수도규칙⟫, 이형우 역주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5).
(5) 베네딕도, ⟪수도규칙⟫, 9.
(6) 베네딕도, ⟪수도규칙⟫, 22.
(7) 지눌 외 지음, ⟪초발심자경문⟫, 조기영 역 (서울: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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