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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다는 의식조차 없는 금식과 기도와 구제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17)
구자만 박사 | 승인 2024.05.23 14:03
▲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긍휼이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드러내지 않으셨다. ⓒGetty Images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금식하면 너희는 너의 스스로에게 죄를 가져올 것이고, 너희가 기도하면 너희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또한 너희가 구제하면 너희는 너의 영(靈)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도마복음 14:1)

우리는 금식, 기도, 구제를 대상을 향한 율법적인 외면적 형식과 위선적 유위(有爲)로 할 것이 아니라 이원론적인 분별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하나’된 무위(無爲)로 해야 한다. 우리는 개체(ego)가 있다는 자기 정체성의 사유를 넘어 전체성(One)의 세계를 자각하여 집착에 의한 금식, 기도 그리고 구제가 아닌 하나의 생명(神性)에 따라야 한다. 서구의 관념으로는 사물을 여러 가지로 분별하여 보지만 사물의 실상을 보는 동양의 관념으로는 모양은 다르지만 둘이 아닌 하나이다(異而不二).

구제는 근본 뿌리에서 보는 동체의식(同體意識)과 구제(보시)를 하였다는 집착(相)을 갖지 않아야 된다(無住相布施, 금강경).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은 상대적인 세계(ego)가 아니라 자신을 절대적인 하나(One)의 세계로 귀일(歸一)하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통하여 참다운 자기의 본래성품인 신성(불성)을 깨닫고, 하나(One)가 되어 행동을 하는 것이다(本來是佛, 요 17:21).

공자(孔子)는 ‘만일 하나(One)가 된 존재가 옳다면, 어떤 행위를 하든 자동적으로 옳은 것이 된다’고 하였다. 엑카르트(Eckhart)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어떤 존재의 사람인지를 걱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One)인 ‘존재의 뿌리’(본바탕)에 근거하지 않는 종교와 교회의 어떤 ‘이분법적인 사유’(有爲)의 말이나 신앙 행위도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자연스럽지 않은 유위(有爲)는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근본 진리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 6:3) 하듯이 금식, 기도, 구제 등 모든 경건한 행동을 ‘무위적(無爲的)인 마음’(One)으로 하지 않고 분별하는 행위(ego)로 하면,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인위적(人爲的)인 마음’(ego)으로 한다는 것은 자기의 욕구를 채우자는 것이며 자연의 법도를 어기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대상의 신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지금 여기에 이미 최상의 행복된 천국(神性)이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즉 오묘한 하나님의 뜻이 자기의 행위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믿음으로 기도를 하여야 한다(順天, 마 6:10). 믿음에 대하셔 불경(佛經)의 화엄경에서는 ‘믿음(信心)은 도(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일체의 선한법(法, One)을 길러내느니라’고 한다. 구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도 없다는 ‘무집착’(요 8:46)의 자세가 필요하다(自他一如).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보살은 형상(相)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고 한다.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과 차별이 없이 구제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원적인 집착과 분별로 행한다면 자기의 영혼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예수는 ‘모든 것은 일원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어떤 이원성이나 3원성도 존재할 수 없다’(탈무드 임마누엘)고 말씀하였다. 현대 물리학이 ‘모든 것은 에너지의 파동이다’(色卽空)라고, 성경은 ‘만물이 주(神性)에게서 나왔다’(롬 11:36)고,  불경(佛經)은 ‘만물이 불성에서 인연에 따라서 나왔다’(法界緣起)고, 도덕경(42장)은 ‘만물은 도(道)에서 나왔다’고 한다. 현대과학자와 성자(聖者)들은 ‘오직 하나의 생명뿐이다’고 하는 둘이 아닌 진리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의 파동인 물질(육체)은 텅 비어있는 공이지만(諸法空), 다만 텅 빈 공(空)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공(空) 가운데는 심심미묘한 생명(진리)이 충만해 있다. 우리는 이미 영생(永生)의 자리인 우주 생명과 하나임을 자각하여야 한다(요 10:30, 17:21). 전체성(One)인 생명(진리)의  자리는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관세음보살, 참나(眞我)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우리는 금식, 기도 그리고 구제를 이원적 대상을 향한 ‘유위적(有爲的)인 자세’(我執)가 아니라,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다’는 진리를 자각하여 ‘무위적(無爲的)인 자세’(無我)로 행하여야 한다(요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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