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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이름도 없는 할머니가 중심이었다산은 脈이고 江은 줄기이다 ①
이해학 대표(사단법인 겨레살림공동체) | 승인 2024.05.29 04:16
▲ 6.25 전쟁을 비롯 아픈 역사를 추모하는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이해학

할머니는 호적에도 이름이 없다. 그냥 趙(조) 씨라고만 되어 있다. 임실군 삼계면 죽계리에서 시집오셨다. 임실 첩첩산중 산으로 막이 쳐진 동네여서 <산막>이다. 산에서 흐르는 실개천들이 세심 앞을 지나 오수를 거쳐 동계에 이르면, 강이 되어 적성 평촌 들에서 운암 칠보를 흘러온 큰물과 만나 ‘적성강’이란 이름을 갖는다. 이 강이 채계산을 돌아 화탄 앞을 지나 곡성 압록에서 지리산에서 모아온 요천수 물과 만나야 비로소 ‘섬진강’이 되어 도도하게 광양 하동에서 여수 앞바다에 이른다. 물은 만나고 합쳐지고 엉키며 하나가 되어 간다.

사람은 산에서 내려와 물을 따라 흐르며 다른 사람을 만나 인연이 되고 운명의 배를 좌우로 짜가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 자녀를 낳고 나무가 열매를 나누듯이 퍼지며 문화를 창조한다.

우리 할머니 趙 씨는 시집와서 ‘본동 댁’이라는 택호가 있었다. 아이들은 ‘호랑이 할매’라고 불렀다. 아낙들은 떼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본동 할매 온다!’고 말했다. 튼튼한 몸으로 두 딸과 아들 셋을 낳아 기르셨다. 첫째 딸 순금이를 당신이 살았던 산막 동네 든든한 김씨 집안에 시집을 보냈다. 큰고모는 산막에서 나중에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김태연이라는 아들을 비롯해 6남매를 낳아 잘 길렀다.

둘째 목단 고모는 순창 읍내에 두 아들을 데리고 재혼하는 정 씨에게 시집을 가서 3남 1녀를 두었다. 첫째 아이가 만수인데, 내가 어렸을 때 너무 이뻐서 보고 싶은 나머지 순창을 혼자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곧 찾을 줄 알고 울면서 맴돌다가 밤이 되서야 동네 사람 만나서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지독한 애정이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학대다. 할머니는 당신의 모든 불행이 며느리 때문으로 단정하고 어머니를 달구는 듯하였다. 이것을 알 리 없는 아버지는 할머니께 불효한다고 어머니를 개 패듯이 때렸다. 나는 아버지가 미웠고, 절대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째가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하고 실천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당신의 뼈라도 갈아 줄 듯한 지독한 할머니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발버둥 쳤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젖내나는 향긋한 품에서 자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를 열세 살까지 당신 품으로 끌어안고 젖을 물렸다. 나의 불행의 씨앗은 할머니의 품이 나의 세계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고 쫓기고 쫓는 발소리에 이어 총소리가 날 때면, 나는 할머니 품을 파고들었다.

6.25전쟁 발발 70년이 넘어 조선노동당 전북도당이 한때 자리를 잡았던 회문산과 남쪽 정면인 무직산, 성미산, 동쪽 정면인 여분산, 그리고 북쪽의 희여터를 돌아보았다. 무성한 숲과 아름다운 꽃들, 잘 정돈된 도로와 말끔한 등산로는 전쟁의 피비린내를 깨끗이 덮어버렸다. 특별히 근자에 조성된 국립 회문산자연휴양림은 사람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회문산의 6.25전쟁, 빨치산과 군경의 전투를 역사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만약에 회문산 역사관과 비목공원위령탑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누가 그곳이 동족상잔의 피바다였음을 알겠는가!

옥정호 주변의 산들은 빨치산들의 보급 투쟁이 치열하게 일어났던 곳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원과 레저시설, 등산로와 산책로, 자전거 길로 너무 잘 가꾸어져 있어 하늘 호수 길에 소풍을 나와 구름을 타고 두둥실 날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옥정호가 용수리 앞으로 흘러 물우리 앞에서 일 중에서 들어온 물과 합수되어 천담과 구담을 지나 요강 바위 옆 용궐산 앞에서 장군목 유원지를 잘 가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때 거기에서 보급 투쟁을 벌이던 임실 군당, 정읍 군당, 완주 군당의 빨치산들은 무고한 양민들을 닥치는 데로 학살하였고, 군경은 빨치산을 토벌하며 죄 없는 양민들을 부역자로 몰아서 죽인 피의 골짜기였다. 전쟁에서는 무조건 자기는 선이고, 상대는 없애야 할 악이다.

화탄 우리 고향에서 회문산의 거리는 오십여 리에 지나지 않아 총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고 불이 나면 화기가 충천하며 연기가 피어올라서 우리는 변고가 일어났음을 저절로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도 사령부의 이동거점이며 지리산 지구 연락망인 용궐산도 이십여 리밖에 되지 않아 우리는 폭격 소리와 연기를 보며 공포에 떨기도 했고, 위험을 감지하기도 하였다.

순창문화원과 전라북도 문화원 연합회가 발간한 《순창의 근현대사와 6.25 전사》 185쪽과 186쪽에서 보면 학도병이 참여한 전투 장소와 그곳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소중한 자료가 있다.

6.25가 터진 지 2주일이 지난 1950년 7월 12일, 순창지구 모병관이던 박기병 대위가 순창 농림중학교에 와서 만 17세 이상의 학생들 가운데 신체검사에 합격한 158명을 의용병으로 선발하였다. 이들의 나이는 17세에서 24세까지였다. 이 중 40명은 간부 후보생으로, 나머지 118명은 지원병이 되어 7월 17일 순창서초등학교 교정에서 군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남원으로 떠나 운봉, 함양, 진주로 가서 낙동강을 건넜다.

순창 학도 의용군들은 계급도 군번도 없이 싸움터로 내몰렸다. 8월 13일 영천지구 504고지를 점령한 것을 시작으로, 포항전투를 치르고 일부는 유엔군을 따라 황해도 해주전투, 덕천지구, 평안북도 개천지구, 홍천지구 등에서 싸웠으며 가는데 마다 골고루 피를 뿌린 학생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영천지구 전투에서 4학년 농과생 이남주 군이 장렬하게 죽었다. 포항전투에서는 동계면 서호 출산인 강대근 군, 인계면 마흘리 출신인 김태근 군 등 수명이 죽었다. 해주전투에서 유등면 건곡 출신인 김호엽 군이 전사하였고 평안북도 개천지구 전투에서는 곡성 출신 정대효, 동계면 현포리 출신인 이윤희 군이 전사하였으며 덕천지구에서는 인계면 중산리 출신인 양종욱 군, 그리고 금과면 모정리 출신인 윤재환 군이 홍천지구에서는 적성면 내월리 양창균 군 등이 전사하였다. 적성면 내월리 출신인 최용순 군은 11사단 3중대 소속으로 구림면 회문산 빨치산 토벌 작전 수행 중에 전사하였다.

여기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이 더 많겠지만 이들이 살아남았다면, 오늘 그 자손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얼마나 차고 넘치리오. 지금 나의 감상은 회문산 꼭대기에 올라 이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싶다.

전쟁 기념관 6.25전시실 학도병 코너에는 전국 349개 중학교 출신의 전사자 명단이 걸려 있었다. 1,976명의 전사자 중에 우리 순창군의 농림중학생 37명이 들어있다. 순창서초등학교에서 뜨거운 눈물로 아들을 전송했던 어버이들이 사망통지서를 접했을 때 받았을 상심과 고통은 눈을 감을 때까지 떨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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