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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체제를 ‘규율’해 ‘해방의 사회’로”강원돈 교수의 『기독교경제윤리론』(동연, 2024)이 주장하는 시장을 규율하는 사회에 대해
홍인식 박사(에큐메니안 대표) | 승인 2024.05.31 05:15
▲ 강원돈 교수가 출판한 ⟪기독교경제윤리론⟫은 한국 기독교윤리의 거대한 성취로 평가된다. ⓒ이정훈

오늘의 세상: 우상이 된 시장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며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개인의 책임이라는 설명도 있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 다른 한편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시되는 모든 방안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시장(市場)을 향한 불변의 신뢰이다.

다시 말하면 제시되는 모든 방안은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시장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시장의 존재와 정당성 혹은 그의 능력에 대하여 부인하거나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시장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신성한 존재로 등장한다. 시장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하거나 신뢰를 상실하는 사람은 즉시 이단자로 취급받는다. 시장이 신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과연 시장은 신성한 존재인가? 시장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전능의 신인가? 이러한 상황 앞에서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신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신학이 시장(자본주의)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왔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시장, 즉 경제의 문제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성찰해 보려는 노력이었다. 과연 기독교는 시장(경제)문제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해 왔는가?

지금까지 기독교는 서구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살아왔으며 결국 시장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사상적 그리고 종교적 정당성의 도구로 살아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말은 결국 기독교회와 기독교 신학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시장이라는 우상에게 절하고 살아왔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한편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켜가고 있다. 더욱 벌어지고 있는 빈부의 격차, 금융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으로 인한 복지사회체제의 붕괴, 직업의 불안정화 등은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부의 세습이 아니라 가난을 대물림해야 하는 불공정하고 불의한 이 사회에서 신학자들의 임무와 기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이 같은 상황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보다 더 철저한 이해와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우리의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해석과 개념을 도출해 내는 이론적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 신앙의 경험이 무엇인가를 신학적으로 규명해 내는 심오한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해방신학은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분야에서 신학을 발전시켜 왔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론, 신론, 교회론, 종말론, 기독교 윤리 분야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해방신학자들은 사회윤리, 땅의 신학, 노동의 신학, 여성 해방의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등을 전개해 왔다. 해방신학자들은 사회학과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의 꾸준한 대화와 만남을 통하여 신학을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해방신학자들의 신학적 공헌과 업적은 놀랄만한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분야에서의 학문적 발전은 계속되어 질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는 해방신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분야에서의 신학적 작업을 계속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해방신학자들이 맞고 있는 신학적 작업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경제, 생태 그리고 문화인류학이 그것이다.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서 생태학은 해방신학의 전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생태학적 관심은 해방신학으로 하여금 오늘의 정치 경제 모델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오늘의 기후 위기는 현 세계의 정치경제적 모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무한한 전개와 부의 무한한 축적을 향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이 결과적으로 기후위기의 생태적 파멸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말함에 있어서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여 오늘의 사회를 심각한 격차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는 정치경제 모델 그리고 이와 연관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언급은 필연적이다.

신학과 경제

성서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역사를 통하여 이원론과 싸워왔으며 인간의 경제생활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경제는 인류의 일상적인 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은 인간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으며 예수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시고자 오셨다고 하면서. 생명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경제(오이코스)는 본래 집, 가정. 다시 말하면 가정 구성원의 안녕과 질서, 보호, 가족을 위한 양식의 생산, 분배, 소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 같은 정의가 아담 스미스에 와서 국가단위로 발전되어진다. 그러므로 경제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과 분리될 수 없는 주제이다. 일상적인 생활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경제는 언제나 힘의 사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경제문제는 자원의 부족이나 혹은 기술의 부족으로만 오는 것만은 아니다. 불균형적인 힘의 사용에서 비롯되어 지는 것이 태반이다. 경제적 결정은 인류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경제는 언제든지 가치관의 요소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경제체제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 사회가 유지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관과 연관이 있다. 즉 한 사회의 내재적 가치판단 기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의미이다. 경제 문제가 신앙과 신학의 영역에서 갖고 있는 기능, 영향과 의미는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신학은 경제문제에 대해서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니 오히려 시장과 자본으로 대변되는 현 경제체제를 신학적 비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것을 신적인 질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한국 기독교내에서 경제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혹은 신학적 성찰이 담긴 저서, 연구논문과 글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경제를 다루고자 하는 연구가들이 이 분야의 전문적 신학자를 참고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경제신학은 오늘의 한국 교회에서 불모지와 같은 영역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한국 기독교 현실에서 가뭄의 땅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경제’와 관련한 기념비적인 저서의 발간 소식이 그것이다. 강원돈 교수가 지은 『기독교경제윤리론』이 화제의 책이다.

저자 강원돈 교수는 “시장경제는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사회적 가난을 물리치고 화폐자본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시장경제가 불러들이는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와 금융 수탈은 시장경제를 해체해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원칙과 방안을 갖고 시장경제를 규율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저자는 본 저서의 발간에 대하여 “위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면서 “교회가 세상을 등지지 않고 세상을 형성하는 데 책임 있게 이바지하겠다는 생각과 의지를 품고 있다면, 교회도 그 질문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답변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강원돈 교수가 저술하여 발간한 『기독교경제윤리론』은 오늘의 시대에서 한국 사회가 교회에게 요구하고 질문하는 ‘우리 시대의 경제 문제’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다.

『기독교경제윤리』는 모두 11부 4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독교경제윤리의 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저서의 마지막 부분인 제11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세계무역체제의 규율>에 이르기까지 오늘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문제와 그 체제에 대하여 거의 모든 분야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서는 1부 <기독교경제윤리의 이론: 사회과학적 현실 분석과 윤리적 성찰의 매개>를 거쳐 제2부에 이르러서는 시장경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경제체제의 수준에서 드러내는 시장경제의 근본 문제를 다룬다. 제3부, 경제민주주의를 다루면서 이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로 확장하는 시도와 더불어 제 4부에서 시장경제의 생태학적 규율을 다룬다.

이어 제5부는 시장경제의 사회적 규율과 관련하여 소득분배가 갖는 중요성을 논증하기도 한다. 제6부에서 다루어지는 토지공개념과 지대공유제는 한국 사회의 한국 사회의 질곡이 되어버린 문제, 다시 말하면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과 부동산 소득의 편중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심각한 자산 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을 지저가고 서서에 입각한 땅과 토지의 소유권을 개혁하는 방안과 주거 안정과 복지를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는 부동산정책의 원칙을 제시한다. 이러한 논의는 제7부에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기본소득 구상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경제의 생태학적 전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이에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제8부에서는 재정과 금융의 민주화, 제9부에서는 달러 패권체제의 종식과 대안적인 세계통화금융제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중립적인 세계통화를 창설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논하기도 한다. 저자는 10부에서 금융화의 대안, 다시 말하면 지구적 차원에서 은행을 감독하고 금융거래를 규율하는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방안을 논한다. 마지막 11부에서 자유무역협정(FTA)과 지역무역협정(RTA)을 통해 사회적 무역 조항과 생태학적 무역 조항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별 성과가 없었던 까닭을 분석하고, 세계무역체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무역규범 아래서 재구성하는 방안을 논함으로서 본 저서를 마무리한다.

저자는 시장경제체제가 사회적 가난, 생태계 위기, 금융 수탈 등을 가져온다고 해서 시장경제체제를 폐지하고 다른 경제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의 경제체제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경제는 “시장경제”와 “중앙관리경제”라고 전제하면서 서로 간의 조화의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오직 선택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국에는 ‘시장경제’를 경제체제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전제로 시장경제를 어떻게 규율하여 “사회적 가난, 생태계 위기, 금융 수탈에서 해방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기독교경제윤리론』은 이러한 전제 속에서 탄생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시장경제를 규율하여 해방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발생한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책머리’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의 축적과 팽창 메커니즘의 밑바닥에 깔린 자본의 독재를 해체하여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민주화하고, 생태계의 수탈과 파괴에 맞서 생태계와 경제계의 권익 균형을 추구하고, 화폐자본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제도적 기반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규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방식이다. 금융의 지구화와 경제의 지구화가 실현된 오늘의 세계에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는 지구경제를 규율하는 방안까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저자가 주장하듯이 “사회적 가난, 생태계 위기, 금융 수탈” 등의 결과를 가져 오는 시장경제체제를 ‘규율’해서 ‘해방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나가면서: 경제와 관련된 기독교 윤리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관리하며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모든 생명의 공동체적이며 평화적 그리고 조화로운 평등과 풍요로움을 향한다. 경제적인 결단을 하는데 있어서도 이와 같은 자연의 원리를 무시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이기심과 폭력을 사용한 경제적 발전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된다.

경제문제에 있어서 인간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온 우주의 생명에게 부여하신 천부적인 권리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관심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계약은 모든 인류와 생명을 향한 것이며 특히 인간 사회에서는 인종 혹은 언어 경제적인 차이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원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의의 개념을 우리는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의는 각자에게 속한 것을 주고받는 소극적인 의미의 것이 아니다. 성서의 정의의 개념은 더욱 풍요로운 개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이다, 그것은 노아 홍수이후에 주신 하나님의 약인 무지개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정의는 개인의 행복이 무지개의 다른 색깔에서처럼 서로 의존관계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몫만을 챙기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다. (창 9;13) 불평등과 착취와 소외가 계속되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보다도 행복을 잃은 경제적 힘을 잃어버린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의 행동에서 드러나고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경제는 불변의 법칙에 지배되지 않는다. 경제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니다. 경제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 만들어가는 제도”이다. 시장경제 안에서 “사람들이 존엄성을 지키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규율될 수 있을까?” 시장경제는 “작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해방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발전할 수 있을까?”

강원돈 교수의 『기독교경제윤리론』는 우리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질문의 범위와 깊이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로 “시장경제”와 “중앙관리경제”의 선택을 넘어서는 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경제윤리론』는 기념비적이다. 또한 본서는 ‘불평등과 착취와 소외가 계속되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성찰하고 또 행동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이정표와 같은 책이다.

홍인식 박사(에큐메니안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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