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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여인고흐와 산책하기 (40)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4.06.01 02:07
▲ <화가의 어머니> (1888년 10월, 아를, 캔버스에 유채, 40.5×32.5cm, 노턴 사이먼 박물관, 패서디나) / 글 속의 여인과는 상관없다.

정확한 출생과 사망 기록을 가진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은 프랑스의 잔 루이즈 칼망이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1875년 2월 21일에 태어나 122세를 살다가 1997년 8월 4일에 숨졌다. 칼망은 프랑스 남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 아를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가져본 적 없이 고급 취미생활을 하다가 아를에서 숨졌다. 자신은 장수하였으나 무남독녀 딸은 40대에 숨졌고, 외손자도 일찍 죽었다.

상속자가 없자 그녀는 40대의 변호사 앙드레 라프레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자신의 집을 매매하였는데, 그 조건이란 매월 2,500프랑(우리 돈 50만 원 정도)을 내되 그녀가 죽으면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당시 칼망은 90세의 노인이었으니 언제 죽더라도 장수하였다는 말을 들을 것으로 판단한 변호사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망은 그후로도 32년을 더 살았다. 변호사는 집값의 두 배를 꼬박꼬박 물다가 칼망보다 2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를은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이다. 지중해에 잇대어 있어 기후가 온화하여 주전 6세기에 그리스인들이 도시를 세운 후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과 고대극장이 과거의 영광을 증명하는 듯하다. 5세기 무렵에는 지중해를 통해 들어오는 오리엔트 문물이 론강과 육상로를 통해 번성하였다.

빈센트는 파리에서 테오와 동거하며 갖게 된 갈등을 풀기 위하여 아를에 와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그림을 그렸다. 화가로서 가장 왕성한 창작 욕구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미술의 한계를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하였다. 전에 없던 미술이다. 아를의 강한 햇살은 빈센트의 작품에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입혔다. 15개월 정도를 머물며 2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니 이틀에 한점씩 그린 셈이다. 아를은 인류 역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예술이 탄생한 곳이다. 하지만 세상이 알아주기에 시간은 더뎠다.

아를의 여인 칼망은 빈센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삼촌이 운영하는 화구점에서 색연필과 캔버스를 사는 것을 보았고, 그녀가 114세 때에는 빈센트가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제의하였는데 거절하였다고 한다. 빈센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지저분한 옷차림에 불쾌한 인상’이었다. 빈센트의 초라한 행색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대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칼망의 무지와 안목 또한 안쓰럽다. 인생은 찾아오는 기회를 잘 맞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래 산다고 성공한 인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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