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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금융’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안병무’에게 묻지 못한 것강원돈 교수가 이야기 하는 《기독교경제윤리론》 (동연, 2024)
이정훈 | 승인 2024.06.01 02:12
▲ 강원돈 교수는 2020년 봄학기를 마지막으로 한신대에서 퇴직했지만 여전히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 사이사이에도 농사짓기가 건강을 지켜주는 일이라고도 했다.

책의 앞뒤를 감싸고 있는 표지와 책 본문을 보호하는 내지를 제외하고 책 내용의 제일 마지막 쪽에 찍혀 있는 숫자는 ‘1231’이었다. 강원돈 교수의 《기독교경제윤리론》이 출판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저자로부터 직접 건네 받은 이 책의 두께와 숫자를 확인하고 ‘악’ 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렇게 저렇게 정해진 시간 내에 이 책을 다 읽기나 할까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읽어 가는 동안 기자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 두꺼운 책이 그냥 읽혔다. 물론 어려운 개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잠시 잠시, 또한 ‘교수님이 의도한 바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또 잠시 잠시 멈추곤 했지만, 독서 진행 속도는 여느 책보다 빠르게 나갔다. 동어반복이지만, 경제학과 생태학, 윤리학을 아우르는 깊은 학문적 체계를 갖춘 책이지만 평이한 문체였다는 뜻이다.

독서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직업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인터뷰를 통해 질문들이 정리되어 갔다. 여전히 배움이 모자란 입장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면이 궁금할까 하는 생각에서 하나 둘 질문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독서가 마쳐갈 때 즈음, 강 교수께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즉 인터뷰 계획을 이야기했던 것보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신 강원돈 교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또한 우문현답이라고 했던가, 깊이가 없는 질문에도 성실하고 깊이 있는 답변으로 인터뷰를 완성해 주신 부분에도 감사드린다.

이런저런 소식으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강 교수의 답변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얼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가감 없이 질문과 답변이라는 형식 그대로 게재한다. 강 교수의 언급대로 《기독교경제윤리론》에서 시장경제를 규율할 수 있는 기독교신학과 윤리의 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편집자 주

▲ 먼저 양에서도 그 질적인 면에서도 압도적인 책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일단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간 교수님께서 책을 출판하실 때는 한 주제에 대한 깊은 연구서가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번 저서는 깊은 연구서이기도 하지만 “개론서”적인 성격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만큼 남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약 4년 전 대학 교수직을 은퇴하고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신학적-윤리적 관점에서 경제를 규율하는 원칙을 또렷이 제시하고, 그 원칙에 따라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 그리고 가혹한 금융 수탈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을 일관성 있게 제안하는 단행본을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독교경제윤리의 방법론과 규범체계, 시장경제의 근본 문제에 대한 분석, 시장경제의 근본 문제가 우리 시대에 발현하는 방식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체계적인 문제 해결 방안의 제시 등을 논하다 보니 어느덧 이 책은 기독교경제윤리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개론 형태의 책이 되었습니다.

본래 저는 ‘경제윤리’라는 단순한 제목을 달고 싶었는데, 제 책을 발간한 동연출판사의 김영호 사장이 ‘기독교경제윤리론’이라는 제목을 제안하였고, 저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출판인이 책을 읽고 제목을 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 책의 내용과 성격에 잘 부합하는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 책의 어떤 부분은 어지간한 단행본과 맞먹는 양이었습니다. 책의 여러 부분 중 가장 힘을 쏟았던 부분은 어느 곳이었습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책을 쓰기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생각을 가다듬은 주제는 화폐 이론과 금융 이론이었습니다. 제 책의 제VIII부 “재정과 금융의 민주적 통제”, 제IX부 “달러 패권 체제의 종식과 새로운 세계통화체제의 형성”, 제X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그 대안”에서 저는 화폐 이론과 금융 이론을 심도 있게 다루었고, 250여 쪽 되는 분량을 썼습니다.

제가 이 문제들을 규명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쓴 까닭은 화폐자본이 실물경제를 수탈하는 체제가 공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생산 없는 이윤’이 천문학적 규모로 축적되는 금융 체제가 금융화의 이름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금융 체제의 위험성은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유례없이 강화된 달러 패권 체제,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달러 리사이클링,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이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시킨 ‘그림자금융’ 등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 주제들에 관한 연구는 사회과학계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화폐 이론과 금융 이론은 경제학에서 사각지대가 가장 많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관점에서 금융 체제의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한 이론적 성과 역시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이 분야에 관한 연구를 하는 데 저는 큰 노력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제 기억으로 생태학을 그 자체로 연구한 분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신대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가르쳤던 이준모 교수는 생태학의 기독교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나 윤리에, 특히 신학에 생태 이론을 접목한 분은 교수님이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경제나 윤리에 생태학을 도입해 연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태계 위기와 경제성장의 생태학적 한계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1972년에 로마 클럽이 발표한 《성장의 한계》 리포트가 제게 준 인상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학부 시절에 읽었던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의 《이성의 일식》(The Eclipse of Reason, 1944)은 제 사유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르크하이머는 그 책에서 ‘자연의 반란’이라는 경구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이윤 축적을 위해 인간의 내면적 자연을 억압한 나머지 인간의 공격성이 외부적 자연을 향하게 되고, 인간의 지배와 수탈에 시달리는 외부적 자연이 인간에 맞서 생태계 재앙이라는 형식으로 반란을 일으킨다고 분석했지요.

호르크하이머의 통찰은 제가 자본주의 분석과 정신분석을 통합적으로 살피고, 경제계와 생태계의 연관을 깊이 들여다보며 사유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제가 독일 유학 기간에 접한 생태학적 경제학은 사회정의와 생태학적 정의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해 있다는 생각을 벼리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특히 교수님의 생태학에 대한 관점과 기존의 생태학과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신학을 위시한 인문·사회과학이 생태학적 통찰을 수용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세계관적 태도를 문제로 삼는 심층 생태론, 인간과 인간의 지배 관계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에 투사되었다고 보는 사회적 생태론, 자본주의적 산업화 논리를 자연의 멸절로 보고 이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사회주의적 생태론 등이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이론들은 제각기 강점과 단점이 있고, 생태계 위기를 해결하는 각기 다른 방안을 제시합니다.

저는 앞에서 말한 이론들보다는 생태학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택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생태계를 개방계로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고, 마르크스가 인간의 노동을 ‘자연과의 신진대사’로 파악하는 관점을 중시합니다. 그러한 관점은 생태계와 경제계의 관계를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파악하게 합니다.

생태계와 경제계 사이의 에너지-물질 순환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자원고갈과 생태계 오염을 동시에 가속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고, 생태계 위기와 사회적 가난이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해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적 맑스주의는 사회정의 없이는 생태학적 정의가 실현될 수 없고, 생태학적 정의 없이는 사회정의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또렷하게 인식하게 합니다.

▲ 강원돈 교수는 《기독교경제윤리론》을 저술하는 데 있어 가장 깊은 연구는 화폐와 금융이었다고 술회했다. ⓒ동연출판사 제공

▲ 교수님은 무엇보다 마르크스 이론을 바탕으로 민중신학을 연구하며 학문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스스로 비교해 본다면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있다면 이번 저서에 어떻게 반영되었나요? 변함이 없었다면 마르스크 이론이나 민중신학의 어떤 부분이 교수님의 학문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마르크스 이론을 연구해 왔고, 여전히 마르크스의 관점과 방법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일찍부터 구별했고, 1980년대에 우리 사회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식주의와 교조주의에 비판적인 거리를 두었습니다. 제가 마르크스에게서 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는 관점, 인간을 억누르고 비참하게 하고 노예화하는 현실 관계들을 바꾸고자 하는 실천 중심적인 사유, 현실의 모순과 이론의 모순을 내재적 비판의 방법을 통해 드러내는 철저한 분석 등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 저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신학적 성찰을 결합하는 신학을 형성하고자 노력했고, 실천과 유물론에 굳건하게 발을 디딘 신학을 모색했습니다. 그 당시 그 신학은 ‘물(物)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즈음 저는 그 신학을 ‘유물론적 신학’이라고 고쳐 부릅니다.

저는 그 신학의 관점과 방법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와 경제 현실을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과 방법으로써 분석하고, 사회와 경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을 윤리적으로 제시하고, 그러한 윤리적 근거를 신학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사회과학자’의 자의식을 갖고 있고, 제도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윤리학자’의 자기 이해를 지니고 있고,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학적 전통에 충실한 ‘신학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 무엇보다 그간 교수님의 저서들이나 이번 저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시장경제에 대한 규율 문제입니다. 독자들을 위해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시장경제를 ‘규율’한다”고 말을 즐겨 쓰니까 사람들은 ‘훈육’을 연상하곤 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미셸 푸코가 말하는 훈육이나 훈육 권력을 염두에 두고 규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훈육’을 강조한다면, 자본주의가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하고 그 효과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궁리하는 데 머무를 뿐, 시장경제를 경제체제의 수준에서 다룰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규율을 말할 때,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경제체제로서의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시장경제는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가 분산된 탈중심적 경제체제이고, 탈중심화된 생산 주체들과 소비 주체들이 시장의 가격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입니다.

그런 만큼 시장경제 체제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노동시장과 자원시장에서는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생산물 시장에서는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에서 시장 권력이 형성되어 가격 장치가 심각하게 왜곡됩니다. 그렇기에 시장경제는 언제든 무질서해질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금융 수탈도 시장경제의 실패를 보여주는 심각한 실례입니다. 그러한 무질서와 실패에서 벗어나려면 시장경제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규제해야 합니다. 저는 바로 그러한 시장경제 체제의 통제와 규제를 ‘규율’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규율하려면, 시장경제 체제의 근본 문제를 깊이 파헤치고, 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자본의 축적과 팽창 메커니즘의 밑바닥에 깔린 자본의 독재를 해체하여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민주화하는 일, 생태계의 수탈과 파괴에 맞서 생태계와 경제계의 권익 균형을 추구하는 일, 화폐자본이 실물경제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제도적 기반을 해체하는 일이 그 핵심입니다.

저는 그것이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핵심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의 지구화와 경제의 지구화가 실현된 오늘의 세계에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는 지구 경제를 규율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노동권과 소유권의 상호불가침과 상호제한을 토대로 하는 노동사회의 재구성, 자연의 권리를 헌법 규범으로 인정하는 생태학적 법치국가의 창설,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소득분배에 바탕을 둔 국민경제의 거시계획, 재정과 공공정책의 민주적 통제, 주권화폐 체제에 근거한 은행 적대적인 은행 감독과 은행 규율, 부동산 불로소득의 환수와 균분, 인간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충분한 기본소득의 도입, 달러 패권 체제의 종식과 지구적 공납체제의 해체,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무역 규범의 제정과 대안적 무역체제의 창설 등이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주요 과제에 속합니다.

▲ 교수님께서, 제 기억으로는 10여년 전부터 기본소득이나 토지 문제에 대해 강조해 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교수님께 영향을 끼친 학자나 저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이번 저서를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교수님의 관점에 대해서도 알려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는 누군가의 책을 읽고 기본소득이나 부동산 문제에 눈을 뜬 게 아니고, 우리 시대의 심각한 노동 문제와 지대추구 경제의 문제를 다루다 보니 기본소득과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술 발전과 생산력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사회적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동시간과 삶의 기회를 분배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자리가 점점 더 희소해지는 상황에서는 일할 기회가 있든 없든 누구나 존엄한 인간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되어야 하고, 시장에서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본소득 이외에 노동소득을 추가로 얻는 사회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생활 활동과 돈벌이 노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이원적 경제(dual economy)를 형성하는 방안이고, 노동사회를 해체하고 대안적인 노동세계를 형성하는 철저한 구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사회를 구상하면서 저는 다른 학자들이 기본소득에 관해 펼친 여러 가지 담론을 접하게 되었고, 그러한 담론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우리 사회를 속속들이 병들게 하는 지대추구 경제의 핵심 문제이니만큼 우리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문제일 것입니다. 저 또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우리 사회의 소득분배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를 극도로 악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를 다루는 학자들은 헨리 조지를 참조합니다만, 저는 헨리 조지의 지대공유제를 뒷받침하는 리카도의 지대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에서 지대 문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 경제 윤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성서에 대해 해박하신 면모를 늘 보여주셨습니다. 성서를 중요시 하게 된 어떤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 그 당시 소장이셨던 고(故) 안병무 박사와 매주 한 차례 성서를 함께 읽고 토론했고, 또 국제성서주석 시리즈의 여러 성서 주석서를 번역했습니다. 에두아르트 슈바이처의 「골로사이서」, 요아힘 그닐카의 「에페소서」 등이 그것이죠.

저는 성서의 메시지를 오늘의 세계에 전하는 설교가 신학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설교의 핵심은 교회력에 따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서 일과의 주석이겠지요. 저는 어떤 신학적 주장을 펼치고, 그 주장의 신학적 근거를 확립하고자 할 때 반드시 성서 텍스트를 선택하고 주석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 교수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저서 중 ⟪물의 신학⟫을 개정할 생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독자들 중에서도 저도 워낙 힘들게 독서한 기억이 있어서 좀 더 쉬운 언어로 개정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은 유효하신가요?

⟪물의 신학⟫은 마르크스의 이론과 사상을 신학적 성찰과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였기에 많은 사람에게 낯설게 느껴지고 어렵게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도 저는 가끔 ⟪물의 신학⟫을 꺼내서 읽곤 하는데, 저는 ⟪물의 신학⟫의 개정판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물론 오늘의 상황은 ⟪물의 신학⟫이 쓰였던 1980년대 후반과는 크게 달라졌고, 오늘 우리가 대결해야 할 과제도 그 시대의 과제와는 많이 달라져서 ⟪물의 신학⟫의 내용 중 많은 것은 이미 지나간 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경제학 비판과 신학적 성찰을 결합하고 기독교인들의 운동을 뒷받침하는 실천이론을 제시하고자 했던 ⟪물의 신학⟫의 관심사를 계속 견지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쓴 ⟪기독교경제윤리론⟫도 어떤 의미에서는 ⟪물의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저는 앞으로 성서 경전을 포함한 인류의 고전을 주해하면서 ‘소유’ 개념과 ‘유물론의 역사’를 정리하고자 하는데, 그런 작업이 ⟪물의 신학⟫을 더 발전시켜 개정판을 내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양에서 너무 압도적인 책이라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면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끔 어떤 학자들은 자신의 저서를 읽는 방법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교수님은 독자들에게 이번 저서를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경제윤리론⟫을 쓰면서 본문을 가급적 평이하게 서술하고, 전문적인 논의는 각주로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제 책을 처음 읽는 분들은 각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본문 중심으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신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경제윤리 방법론과 규범체계를 논하는 부분부터 차례대로 읽으면 좋을 것이고, 사회과학자들은 신학적인 부분을 건너뛰고 시장경제의 근본 문제를 다룬 부분부터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제 책은 크게 보면, 시장경제의 생태학적 규율, 시장경제의 사회적 규율, 금융체제와 무역체제의 규율 등을 부(部)의 단위로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부를 이루는 각각의 주제를 선택해서 그것만 따로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읽어도 좋을 만큼 각 부는 나름의 독립성과 완결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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