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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려면 맨정신에 깝시다”나의 사립학교 생존기 7
홍경종 교사 | 승인 2024.06.08 03:52
▲ 왜 술의 힘을 빌어 일을 해결하려고 할까. 일종의 열등감은 아닐까.

폭풍우를 몰고왔던 교장의 퇴진으로 학교에는 어느 정도 평온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교장과 같은 교대 출신으로서 총애를 받던 선배 교사, 일전에 ‘서울교대 티내면 죽는다’고 했던 그사람이 당시의 사건으로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그의 주사를 견디는 것도 사실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하루는 날을 잡아 맨정신인 낮에 학교에서 대체 나에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건가, 왜 자꾸 술만 먹으면 나에게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건가 물었더니 자기는 술 때문에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 놈의 남교사 회식을 어떻게든 빠지든가 해야지, 이건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식사 이후 술자리에서, 그는 또 그 때의 ‘해우소’ 사건을 언급하며 나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배 교사들이 줄줄이 앉아 있으니 최대한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술이 과하셨습니다. 그만 들어가시죠.”

하지만 그의 욕설과 행패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일어났다.

“더 이상 여기 앉아 있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리고 자취방(고시원)에 돌아왔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그 인간이다. 전화를 받았더니 역시 같은 말로 계속 행패를 부렸다. 몇 번이나 좋은 말로 ‘그만 하시라’고 했는데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결국 나도 한마디했다.

“야, 이 신발색귀야, 너같은 놈은 선배대접 더 이상 못하겠다. 닥치고 전화 끊어.”

뭐라 뭐라 고성이 들렸지만,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한참 뒤 또 전화가 온다. 나보고 니네 고시원 근처니 나오란다. 한 번 까자고. 그래서 한 마디만 했다.

“난 송장 치고 살인하기 싫어. 깔려면 맨정신에 까, 개객꺄.”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서 그를 마주쳤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그의 교실로 직접 찾아가 또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진짜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그래서 또 한 마디 했다.

“늘 술드시면 기억못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제 일은 기억 나시나봐요. 그럼 뭐가 문제인지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몇 개월이 지난 뒤 난 그에게 어정쩡한 사과를 받을 수 있었고, 그는 이듬해 공립학교 특채로 학교를 그만두고 공립으로 나갔다. 이렇게 2년간 지속되었던 그와의 악연은 정리가 되었고, 나의 교직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가 공립학교에 가서 또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배운 교훈을 새기고 공립학교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며 그의 행운을 빌었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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