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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마나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18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6.10 04:30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백록’이 3편이 있습니다. 4세기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난 고대 기독교 신학자로서 서방교회와 신학의 역사에서 우뚝 선 거대한 산과 같은 인물,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고백록》(1)이 그 하나입니다. 그리고 18세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철학자, 소설가, 교육학자, 작곡가이자 프랑스 사회계약론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로 알려진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고백록》이 다른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스토엡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비폭력평화 사상으로 마하트마 간디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의 《참회록》이 그것입니다.

러시아 귀족 집안 출신으로 5년에 걸쳐 집필한 《전쟁과 평화》(1869년)로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그의 작가로서의 절정기에 톨스토이는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고 삶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고, 그 시기에 《참회록》(1879년)을 썼습니다. 톨스토이가 씨름한 질문은 과연 삶에는 죽음으로도 파괴되거나 사라지지 않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답을 찾지 못해 자살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던 그가 철학과 과학 등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 신앙이라는 지식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 참회록의 줄거리입니다.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도 일종의 ‘참회록’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그가 성장기의 성(性)과 사랑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자신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한 아기였습니다. 아들을 출산한 후 곧바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루소를 ‘어미를 잡아먹은 살모사’라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태어나면서부터 갓난아기에게 뒤집어씌우고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장 자크가 14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고, 다섯 명의 자식들을 모두 고아원에 버립니다. 냉대와 매질, 학대,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감, 방랑생활이 그의 청소년기를 지배했습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모순적이고 분열적이고 드러낼 수 없는 내밀한 욕망에 사로잡힌 자기, 얼마든지 비열해질 수 있고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신을 발가벗깁니다.

자, 이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남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97년, 그가 아프리카에서 주교가 된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을 때, 《고백록》을 썼습니다.(2) 그가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입니다. 《고백록》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책이 아닙니다. 《고백록》은 참으로 통렬한 자기 고백이고, 젊은 시절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사제가 된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의 날카로운 긴장이고, 하나의 치료 행위였습니다.(3)

모두 13권으로 구성된 《고백록》의 1권부터 9권까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아기부터 모친 모니카의 죽음에 이르는 기간을 보여줍니다.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했던 소년기의 잘못부터 남의 과수원에서 배를 따먹은 이야기, 카르타고 유학시절 쾌락을 추구한 생활, 한 여인과의 동거, 마니교와 점성술에 깊이 빠진 이야기, 지적 회심의 과정,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 이야기 등이 그것입니다.

10권부터 13권까지는 일종의 신학적 주제들을 탐구합니다. 기억, 시간과 영원, 무로부터의 창조, 창세기 1장의 은유적 해석이 그 주제들입니다.

《고백록》은 기도 형태로 쓰였는데요, 이는 종교 철학의 오랜 전통에 기초한 당시의 일반적인 서술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백록》이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바꾸거나 윤색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잔인할 정도로 정직하게 분석합니다.

우리는 《고백록》에서 인간 자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불량배의 ‘이유 없는 행위’는 자유의지의 서글픈 전형으로 묘사됩니다. 사람이 선한 것을 선택하고자 원할 때도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전의 행위들이 ‘습관의 사슬’을 만들고, 이 ‘습관의 사슬’은 사람을 ‘자기 의지의 쇠사슬’에 묶어버립니다. 《고백록》 전체를 통해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자유의지와의 투쟁’입니다.(4) 이런 경험은 후에 원죄론으로, 자유의지를 주장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으로 발전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의 과거를 현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 속에 살아있고, 미래는 현재의 희망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습관의 힘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습관의 힘에 대한 경험은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과정들을 통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보여줍니다.(5) 그래서 습관은 그래서 제2의 운명이라고 불리는 것 같습니다.

▲ Vittore carpaccio, 「visione di sant’agostino」 ⓒWikipedia

참회록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도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자기 자랑이나, 사실의 왜곡, 자의적 해석 등이 그 내용입니다. 간혹 실패담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잘 아는 사람이 그러면 실소를 금할 수 없지요.

그런데 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으면서 놀라움과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솔직함, 마치 날카로운 칼로 해부하듯 다가가는 자기 고백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최초의 심층심리학적 자기분석이라고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살아 있을 때, 스스로 《고백록》을 쓴 이유를 밝혔습니다. 427년 그가 죽기 3년 전, 그는 평생 그가 작성한 글들을 정리하고 목록을 만든 《재고록》(Retractationes)을 썼습니다. 《재고록》에서 그는 ‘내 고백록 13권은 나의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을 말함으로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자극하여 하나님에게 향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6)

고백록의 주체는 자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악한 행동은 본받지 말고, 선한 행동은 본받으라는 독자에 대한 도덕적 권면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백의 목적은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향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이 사람들에 의해 읽힐 것을 몰랐을리 없지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주님의 면전에서, 내 동포, 그리고 내 글을 읽게 될 세상 사람들의 일부에게 고백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단지 독자만을 의식했다면, 그는 자신의 아픈 경험, 숨기고 싶은 어둠을 그토록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고백록》이 진실한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29년, 죽기 1년 전에 다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 이 책에서 너는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보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 이상으로 나를 칭찬하지 말라. … 만일 내 안에 너를 기쁘게 하는 어떤 것이 있으면 나를 찬양하지 말고 내가 찬양하고 싶은 하나님을 – 나로 인해 – 나와 함께 찬양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로 우리는 한때 스스로 잃어버린바 되었었다. 그러나 우리를 만드신 그분이 우리를 다시 만드셨다. 그러므로 이 책의 각 쪽에서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실족하지 않고 계속 완전함에 나아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내 아들아,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7)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이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다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는 길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실족하지 않고 계속 완전함에 나아가도록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라는 한 개인의 과거의 회상이나 기록이 아닙니다. 고백록은 아직도 살아 있어 실족하고 또 실족하면서도 계속 완전함에 나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에로의 초청입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교계신문에서 ‘나의 삶, 나의 신학’이라는 연재를 요청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때 독일에서 귀국하여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할 때니, 40대 초의 나이였던 제가 감히 그런 주제의 글을 쓰기가 민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의 신학’이라고 할만한 ‘나의 신학’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책 번역하거나 읽은 내용을 요약해서 가르치는 ‘지식소매상’인 제가 무슨 내 자신의 사상이랄 것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저의 삶을 정리하면서 감히 《고백록》 같은 책은 쓸 용기도 없고, 또 글로 남길만한 내용이 있는 삶을 산 것도 아니어서, 회고록이니 자서전이니 하는 글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고백은 용서를 필요로 하는 저에게 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향하게 하기에, 저는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기도 안에서 오직 그 분 앞에 나아갈 때 저는 정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아니라 침묵의 말로라도 자기를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저같이 글로 남길 만한 삶의 이야기도 없고, 잘못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용기도 없는 인간에게 기도와 찬미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경청해주시어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미주

(1)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선한용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3).
(2) 피터 브라운, 《아우구스티누스–격변의 시대, 영혼의 치유와 참된 행복을 찾아 나선 영원한 구도자》, 정기문 역 (서울: 새물결, 2012), 232.
(3) 피터 브라운, 《아우구스티누스》, 237.
(4) 피터 브라운, 《아우구스티누스》, 248.
(5) 피터 브라운, 《아우구스티누스》, 250.
(6)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23.
(7)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2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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