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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을 치료하라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18)
구자만 박사 | 승인 2024.06.13 04:40
▲ 허망한 것에 사로잡혀 우리의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 마음의 병일 것이다. ⓒGetty Images
예수는 “너희가 어느 마을이든지 그곳을 지나갈 때 그곳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면 그들이 너희 앞에 차려주는 것을 먹고 그들 중 병든자가 있으면 그들을 치료하라”고 말씀하셨다.(도마복음 14:2)

어떤 음식이라도 ‘앞에 차려주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마 15:11). ‘병든 자가 있으면 치료하라’는 의미는  하나의 성품(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현상(허상)을 있다고 보며 분별하는 ‘이원적 사유의 병’(죄)을 둘이 아닌 진리 깨달음으로 치료하라는 것이다(요 9:41). 우리는 ‘이원성의 병’(ego)을 고쳐서 더 높은 영적 수준인 하나의 신성(영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불교는 분별하는 마음을 잘 다스려 고통의 원인인 ‘마음(佛性)의 병’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으로 영원한 즐거움(One)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離苦得樂, 법화경). 육조(六祖) 혜능(惠能) 대사는  ‘자기의 마음을 모르면 부처님을 따라 배워도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 하늘이 푸르게 보인다고 해서 푸르름이 실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러 가지의 현상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인 생명(실상)의 희열 속에는 고통(병)과 생사(生死)의 현상이 없으며, 다만 환상(幻想)과 허상일 뿐이다(五蘊幻身).

‘치료하라’는 것은 하나의 진리(생명)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원성의 현상만을 인식하는 ‘마음의 병’을 고치라는 것이다. 예수는 마음이 병든 자에게 ‘나’(진리)에게 오라고 하였다(마 11:28). 불교의 선(禪)은 현상(허상)에 머무르고 있는 마음의 병인 나쁜 업력(業力)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본래 마음과 우주의 생명은 본질상 하나(One)이므로 영원한 생명(神性, 佛性)의 그림자인 ‘마음의 병’(分別智)이 치료되면 인과(因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재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이원성(ego)이 소멸되면 모든 고통과 불행의 원인인 어두운 마음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밝은 마음’(無爲)으로 조화자체인 하나의 진리(생명)에 따르게 될 때 부족함이 없는 원만구족(圓滿具足)과 더불어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마 6:33).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이원성의 병(ego)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조각한 코끼리 조각상에서 나무만을 보거나 물들인 천에서 실(絲)만을 보는 것(허상)을 버리고 본바탕(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고후 4:18)고, 불경(佛經)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요, 거품에 불과하다’(금강경)고, 현대물리학은 ‘모든 것은 에너지의 파동이다’고 하여 모두가 텅 빈 공(空)을 말하고 있다. 다만 텅 빈 공(空)이지만 공(空)의 실상은 신묘한 생명(神性, 佛性)이다. 천지우주가 순수 에너지인 생명으로 충만하며, 인간의 성품도 죄인이 아니라 영생하는 신성(불성)의 생명이다. 일체 물질의 근원과 마음의 근원이 하나로 귀일(歸一)된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가 본성(神性)을 자각하여 현상(허상)을 있다고 보는 죄(분별심)를 회개하고, 하나의 근본성품(실상)을 바로 보도록 하기 위함이다(막 1:15; 요9:39).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지만 성자(聖者)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성품(神性)을 보는 것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르쉬는 ‘내면의 참나(神性)는 우리가 무엇을 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고 고요히 있음으로써, 또한 자신이 실제 있는 그대로 단순히 있음으로써 깨달아진다’고 하였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는 무심(無心)의 거듭남 즉 둘이 아닌 진리를 자각할 때 이원적인 ‘마음의 병’(죄)을 치유하고 천국의 무한한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다(요 3:3). 예수는 “너희도 만일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요 13:5)고 하셨다. 여기서 죄는 완전한  마음의 실상(神性)을 덮게 씌우고 있는 이원성의 허상(ego)이다. 예수가 “네 오른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 5:39)고 말씀하신 것은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 상대방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도덕경 4장), ‘악도 없고, 적도 없다’고 하는 비이원성의 마음을 설명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진리 깨달음을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먼저 자신의 본래 마음(생명)을  아는 것이며(一切唯心造, 화엄경), 집착과 망상하는 이원성의 마음(ego)을 치료, 즉 제거하는 것이다. 우주에 충만한 진리(생명)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죄이며(요 9:41), 행복 자체인  하나의 본성(神性) 쪽으로 향하는 근본적인 깨달음(회개: matanoia)이 있어야 한다(마 1:15). 그렇지 아니하면 불완전한 상태로 분별시비하는 이원적인 ‘마음의 병’은 현실계에 실현되고 구상화되어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念의 具象畵 法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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