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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약을 맺다: 하나님의 백성(1)출애굽기 강해 18(출 19:4-6)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6.23 01:57
▲ A 1907 postcard depicts the Israelites gathered in awe at the foot of Mount Sinai for the revelation of the Ten Commandments. ⓒhttps://jweekly.com/2017/02/16/hearing-gods-word-above-all-the-noise
4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출애굽 한 백성들이 이제 드디어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 이집트를 떠나온 지 두 달 만입니다.

출애굽 이야기의 하이라이트가 두 장면이 있다고 한다면, 첫 번째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이겠지요.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 땅으로 백성들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뒤쫓아오는 이집트의 전차부대들은 마른 땅을 미처 건너지 못하고 바닷속에 수장되고 맙니다.

당신의 구원역사를 극적으로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렇게 증거 합니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오늘 주님께서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출애굽기 14장 1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구원역사를 분명하게 보여주셔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은 왜 홍해 바다를 가르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런 구원을 해주지 않으실까? 그렇게 눈에 딱 보이게 구원해 주시지 않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제대로 보려면,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서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내 주관에 사로잡혀서, 내 계획에만 몰두하고, 내 가치관과 내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도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고 계시고 세상에 역사하고 계신 것을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눈을 가지고서는 말이죠.

그래서 모세는 ‘가만히 멈추어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멈춤이 필요합니다. 이 멈춤이 바로 예배고, 기도에요. 찬양이 멈춤이에요. ‘나’를 멈추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거지요. 그래야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모습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이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구나. 맞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구나. 내가 몰랐구나. 내 눈이 어두웠구나…’

우리는 홍해 바다 사건을 보면서, ‘가만히 서서 잠잠히 하나님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게 홍해바다의 신앙입니다.

자, 오늘 이야기는 출애굽 이야기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입니다. 바로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만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을 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홍해바다의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보여주시는 사건이라면, 시내산의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그 설명의 중심이 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내 보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당신은 이렇게 해 준다’는 서로 간의 약속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계약이라고 하고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이 언약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믿음입니까? 왜 믿습니까? 무엇 때문에 믿습니까? 무엇을 믿습니까? 어떤 식으로 믿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믿습니까? 누구를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그저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아멘’ 하는 그런 믿음 아니지요?

우리가 철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목적입니다.

성경 말씀이, 교회에서 목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내 맘에 안 들고 내 생각과 다르고, 내 가치관과 다른데도, 이상하게 들리고 고개가 갸웃거리는데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하고서 그저 믿는, 그런 믿음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데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고, 내가 누구를 믿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믿음이면 안 됩니다.

이걸 믿음의 내용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믿음의 내용이 확실해야 합니다. 이 내용이 부실하면 우리 믿음은 언제라도 무너집니다.

둘째로는 믿음의 목적인데요.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복 받는다더라’ 해서 믿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 말씀을 왜 믿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믿으면 복 받는다니까 믿어야지.’ 이렇게 믿는 분 계십니까?

믿음의 목적이 나의 행복과 나의 기쁨에 초점이 딱 맞춰져 있습니까? ‘복 받는다는데 뭘 못해?’ 이런 마음입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나중의 보상을 바라면서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내 안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하고도 손잡을 수 있어요.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이익을 취하고 그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누구하고도 잠시 잠깐 친구 할 수 있어요. 정치판을 보아도 명백합니다. 나중에 내 이익이 안 되면 그때 손절하면 그만이에요. 세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이익과 이득, 하나님한테 받을 수 있는 보상, 그것이 목적이 된다면, 그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목적,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한데 포괄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해하기 딱 좋은데요. ‘먼저 하나님이 하자는 대로 하면, 나중에 나한테 필요한 거 다 주실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무조건 하나님 말대로 해. 그러면 다 나중에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일단 하나님이 하자는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는 내 진실된 마음 없이 거짓으로 가짜로 쇼하듯이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내 마음 깊이, 내 영혼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아니고서는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사모할 수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행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완전히 하나님과 소통해야 하고, 완전히 하나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되고, 그래야 하나님의 의를 알아요. 그렇게 알게 된 것을 진심으로 사모해야,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내 나라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하는 일이 더 이상 중요한 목적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오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그 언약의 사람입니다.

오늘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언약이라고, 계약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사실 완전히 잘못된 용어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너는 이렇게 해줘,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해줄게.’ 이런 언어적인 형식만 보고서 ‘언약, 계약’ 이렇게 부르는데, 이건 완전히 잘못된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과 백성들 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약속대로 하나, 안 하나’ 서로 눈치보고 간보는 그런 계약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율법 안 지켰으니까 이제부터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아니야’ 하나님이 그러십니까? ‘하나님 말씀 지키기 너무 어렵네요. 이제부터는 하나님 백성 안 할래요’ 백성들이 그럽니까? 아닙니다. 그러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백성이, 서로 ‘내가 너의 하나님이고, 너는 나의 백성이다.’ 하고 선언하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내 나라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된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온 마음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그 구원을 온전히 우리에게 베푸신다고 결정지어버리는 것입니다.

서로 약속을 잘 지키는 동안에는 계약대로 이루어지다가, 마음이 틀어지고 조건이 안 맞으면 계약파기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성경의 증언을 읽어보세요. 어디 하나님께서 한순간이라도 그 백성들을 포기하십니까? 미워하십니까? 하나님께 등 돌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배신해도 하나님은 끝까지 그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저 하나님이 성품이 좋아서 그렇습니까?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그래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되어버리신 겁니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리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결코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마음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시내산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그래서 이건 사실 계약이 아닙니다. 언약이 아닙니다.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의 존재가, 결정지어지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미 나의 생각과 나의 결심과 나의 계획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미 결정지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하나님의 은총 안에, 담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 내 멋대로 살래! 하나님 믿는 거 싫어!’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인간의 실존이 곤고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결정지어진 우리의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이 곤고합니다.

다시 말씀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믿음 이야기를 했지요?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목적 이야기를 했지요?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목적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이 곤고합니다.

일단 ‘믿습니다!’를 잘 해야 되는데, 그걸 못해서 곤고한 게 아닙니다. 누구를 믿어야 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면서 ‘믿습니다!’를 하려니까 우리 삶이 곤고한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명령을 잘 지켜야 보상을 잘 받을 텐데, 뭔가 아직 내 믿음이 부족하고, 내 열심히 부족해서 곤고한 게 아닙니다. 그 보상에, 그 행복에, 그 기쁨에 내 눈길에 꽂혀 있어서 내 삶이 곤고한 겁니다.

오늘 우리는 시내산 앞에서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몸부림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 내 생각과 일치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서 무엇이 진짜 ‘참’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붙들고 있는 ‘거짓’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일러주시는 ‘참’을 나의 본마음으로 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고민의 시간이 시내산의 40일입니다. 그 고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면,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하고, 반역을 하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맙시다. 과연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품에 안아 주십니다. 우리는 참된 고민을 끝까지 해내고, 마침내 주님의 백성이 되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민의 시간에 우리 영혼을 붙들어 주시고, 참된 신앙의 내용을 일깨워 주시고, 신앙의 목적을 바로잡아주실 줄 믿습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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