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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더럽히는 것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19)
구자만 박사 | 승인 2024.06.27 03:48
▲ 먹는 것이 우리를 더럽히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Getty Images
예수는 “너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희를 더럽히지 않지만 너희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히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14:3)

우리를 더럽히는 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으며, 안으로 무엇을 들이느냐 보다는 안으로부터 무엇을 내어 놓느냐에 달려있다. 번뇌 망상의 분별하는 마음에 의해 발산되는 것들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계는 내계의 투영’이므로 내어놓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본질과 존재의 향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三界唯心所現, 화엄경). 우리가 거짓된 분별심(자기 목숨)을 소멸하고 내면의 무분별심인 생명(성령)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무엇이든 변화시키고, 영원한 구원(One)을 이룰 수 있다(막 8:35).

분별의 세상으로 향하는 이원적인 옛사람(거짓 나)를 죽일 때 비이원적인 새사람(참나)의 생명을 찾게 되어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마 16:25). 우리는 금기하는 음식을 먹는다고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악한 생각과 말)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외부의 것들은 본래 청정한 내면의 본질인 생명(아르케)을 더럽힐 수 없다(요 15:27). 불경(佛經)의 반야심경에서는 ‘일체 모든 존재의 본질(생명)은 본래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 지는 것도 아니다’(不垢不淨)고 한다.

영적인 사람(참나)은 언제나 하나(One)의 실상(본바탕)을 바로 보지만, 분별하는 세속적인 사람(거짓 나)은 언제나 꿈과 그림자처럼 헛되고 헛된 허상(현상)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누어 보는 죄를 범한다(요 9:41).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의 실상(본바탕)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바로 보게 함이다(요 9:39). 우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육체의 ‘나’(거짓 나)에서 나오는 것 때문에 여러 가지의 갈등과 고통을 일으키고 있다. 초기 불교의 경전인 숫따니빠따에서도 “분노, 교만, 완고, 적대, 사기, 질투, 거짓말 등이 비린 것이지 육식(肉食)이 비린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원론적인 교리나 ego(거짓 나)의 집착과 탐욕을 제거하고, ‘마음이 청결해진 사람’(無我)만이 전체성(All)인 신비로운 하나님의 광명을 직관한다(마 5:8).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 즉  먼저 내면의 생명(神性)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우주의 진리(One)에 따르는 자는 모든 것이 더하여 지는 형통함을 이루게 된다(마 6:33). 이와 같이 마음의 작용은 우리를 더럽힐 뿐만 아니라 또한 깨끗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그함마디의 문서 중 하나인 “구세주와의 대화”에서는 “몸의 등불은 마음이며, 너희 내면에 있는 것이 제대로 보존되는 한, 너희 몸은 밝게 빛이 난다”라고 하여 내면의 생명(본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는 “자기(ego)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ego)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 9:23)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에서 ‘나’는 나사렛의 개별적인 고유명사의 예수가 아니고, 내면의 생명(본마음)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인 보통명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다(요 8:5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고 말하는 그리스도의 ‘나’(참나)는 내면의 그리스도(神性, 佛性)를 믿고, 자각한 ‘나’(참나)와 서로 동일하다(見性成佛, 갈 2:20)

하나인 내면의 생명(본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입에서 나오는 이원적인 사유의 말을 제거해야 한다. 분별하는 ego를 제거할게 될 때(大死),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본마음)께서 사시는 것’(갈 2:20)이라고 고백할 수 있으며(大死一番 節後蘇生),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질 타자(他者)는 필요하지 않다. 십자가를 지고 마음이 청결하게 되면 열반사덕(涅槃四德), 즉  생사(生死)가 소멸되는 영원한 상(常), 번뇌와 불안이 사라지는 안락(樂), 자유자재로운 상태의 참나(我), 근심이 사라지는 청정한 정(淨)의 경지에 도달한다. 우리가 열반사덕(涅槃四德)을 성취할 때(無我),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는 진리를 자각하게 된다(롬 8:28).

따라서 우주에 충만한 생명(靈)의 광명을 덮고 있는 ‘분별하는 마음(ego)의 죄’(어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분별의 신성(본마음) 깨달음인 회개(metanoia)가 필요하다(막 1:15). 인식 작용 이후 작용의 여운이나 흔적의 습기(習氣)와 죄(業)의 과보는 현세 혹은 내생에라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5:26). 행위에 따라 받는 업과(業果, 갈 6:7)인 윤회(輪廻, 마 17:12-13)는 사랑 자체로서 둘이 아닌 하나님과 대척점에 있는 ‘영원한 지옥’이라는 흑백논리의 이원적 모순을 해소한다. 불교 심리학적으로는 ‘모두가 의식 차원의 차이’이므로 좌선(坐禪)으로 업(業)과 윤회의 주체인 제 7식(야뢰야識)의 더럽혀진 마음 밭(心田)을 개발하면 청정한 마음 밭인 제9식(암마라識)의 참다운 부처(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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