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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의 무게, 사랑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6.30 03:21
▲ Domenico Fetti,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1622) ⓒWikimediaCommons
그러므로 너희가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너희도 그들에게 그대로 하라. 이것이 법이요 예언(자)이다.(마태복음 7,12)

이 말씀은 황금률로 불리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말의 무게 만큼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법이요 예언(자)라는 평가의 말은 그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려줍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은 마태복음 문맥에서는 적절한 위치에 있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누가복음 6,31). 누가복음은 이보다 간결하게 말하고 비교적 문맥에 잘 어울리지만, 마태복음의 저 평가가 거기에는 없습니다.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다는 예수의 말과 저 평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예수의 생애는 이 말씀을 실천하신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일반적인 표현이어서 얼른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인 상황들로 바꿔 생각하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진실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진실해야 하고, 저 사람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기를 원한다면 나도 그들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처럼 그 말씀은 특정한 상황에서 내 마음과 행동의 결정을 지도하는 원칙이 됩니다. 만일 누구나 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거짓도 해를 끼치는 것도 없고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부리는 일은 없는 세상이 논리적 결과이겠지요.

이를 조금 다른 상황에서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힘들 때 나는 저 사람이 도움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힘들 때 그리 하라입니다. 내가 마음이 아플 때 저 사람이 위로해주기를 바란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내가 굶주릴 때 저 사람이 나에게 먹을 것을 주기 바란다면, 나는 굶주린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예들은 끝없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는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때는 통상적으로 아플 때, 힘들 때, 괴로울 때 등입니다. 좋을 때는 자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으로 그 명령을 구체화하면, 예컨대, 네가 아플 때 너를 돌아보는 것처럼 네 이웃이 아프면 그를 돌아보라가 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 말씀은 이 명령과 만나고 보충합니다. 내가 아플 때 나를 돌보아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면 그렇게 그에게 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은 성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본래 사람의 사랑 능력은 지극히 작습니다. 자기 부모처럼 자기 자식처럼 자기 연인처럼 다른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성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두 사랑이 같아야 한다면, 성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할 것입니다.

지나친 구분임을 무릅쓰고 양자에 이름을 붙인다면, 하나는 ‘감정적’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자에 공통된 것은 아마도 예수의 행위동기에서 알 수 있는 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일 것 같습니다.

여하튼 구체적인 상황에서 저 황금률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길이고 사랑의 능력을 확충하는 길이라면,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 길을 가노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마음이 되는 때를 만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오늘이기를.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우리의 눈을 선하게 만드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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