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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것이야훼는 우리의 깃발(출애굽기 17,9-14; 마태복음 14,13-21)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7.04 02:48
▲ 우리가 가진 적은 우리 안에 머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Getty Images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엉겁결에 떠나 왔으나, 동쪽을 향해 가는 길임은 알았을 것입니다. 목적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고 중도에 장애물들도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급작스레 나오는 탓에 식량이나 물도 넉넉히 준비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까지라면, 아무리 쉬지 않고 서둘러 간다고 해도 20일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무 준비도 없이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 가나안까지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식량이나 식수 문제가 금방이라도 발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다행히 식량 문제는 일찍 만나로 해결되었다고 해도 식수 문제는 광야를 가는 동안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입니다.

모세가 처음에 사흘길 정도로 생각했던 중간 목적지 시내산에 이스라엘이 이른 것이 실제로는 출애굽 후 두 달 만이니 그들의 광야여정이 내외적으로 얼마나 험난했을 것인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힐 문제에는 자연적인 어려움들만이 아니라 타민족들과의 충돌도 있습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자유의 길입니다.

이스라엘이 물 문제로 한바탕 대소동을 겪은 후 겨우 평온을 찾았을 법한 때에 이번에는 아말렉 사람들의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종살이만 하던 자들이기에 군사훈련이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먹을 것도 챙기지 못하고 떠났는데 무기란 게 있을 리도 없습니다. 적들 앞에서 이스라엘은 어떠했을까요? 엄청난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아말렉의 침임 앞에서 모세의 행동양식이 달라졌습니다. 앞에서 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이 백성이 금방이라도 나를 죽일 것 같은 기세인데 어찌 해야 되겠냐고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곧바로 여호수아에게 지시합니다. 상황이 그만큼 긴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갈 길을 다 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로부터 그가 이번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결론을 끌어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말에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너는 사람들을 뽑아서 우리를 위해 아말렉과 싸우라고 하며 자신은 ‘내일’ 지팡이를 들고 언덕에 올라서겠다고 합니다. 왜 지금이 아니라 내일인지요? 8절은 싸움이 오늘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말렉 사람들의 싸움 전체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내일이면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말렉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치고 빠지는 식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 거둔 것으로 만족하며 한발 물러서서 내일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후자일 것 같습니다. 날이 새고 여호수아는 사람들을 이끌고 아말렉과 싸우러 가고 모세는 언덕 위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날 이스라엘은 아말렉의 공격에 응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말렉을 향해 진격합니다. 아말렉의 공격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는 조치입니다. 그렇다 해도 무기가 거의 없을 여호수아의 군대가 어떻게 싸울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끝에 칼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무장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먼훗날 사울이 팔레스타인과 싸울 때 사울과 요나단만 무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싸움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아말렉과 하나님의 싸움이라고 해야 될 것입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 언덕에 오르겠다고 한 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입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이 첫째 재앙 때 그에게 그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라고 했고, 므리바에서는 그 지팡이를 잡고 바위를 치라고 했던 바로 그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그에게 어떤 말씀도 하시기 이전이지만 그는 이 지팡이가 지금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지휘봉이라고 하면 어떨런지요?

모세가 서있는 언덕은 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가 거기서 했던 것은 그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그가 손을 뻗었을 때 바닷물이 갈라지고 또 합쳐졌던 것처럼 그는 지금 여호수아의 군대를 그렇게 지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 역시 사람이라 지팡이를 계속 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힘이 빠져 팔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밀리고 다시 팔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우세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은 마치 모세의 자세에 따라 움직였던 바닷물 같습니다. 모세와 함께 갔던 이들이 이를 보고 모세의 팔을 붙들어 주었고 나중에는 그를 돌에 앉히고 그의 팔을 아예 고정시킵니다. 그 결과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 기이한 싸움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전쟁이 끝난 후 모세가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닛시’라고 한 것도 그 싸움이 기적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깃발은 야훼입니다.’ 모세는 전쟁의 지휘자가 자기 자신이 아나라 야훼 하나님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야훼의 깃발과 야훼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군대 없이 이 전쟁을 수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모세가 팔을 내리느냐 올리느냐에 따라 전세가 뒤바뀌는 것도 하나님이 홀로 싸우시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 가운데 계시고 그 가운데서 사람과 함께 사람의 힘을 빌어 일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인형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혼자 힘으로 끝까지 팔을 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통해 일하십니다. 사람들의 협력을 요구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와 닮은 예를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 말씀에 주리고 몸이 아픈 사람들입니다, 새세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는 주님입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고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거대한 군중이 모여 있으니 쉴 틈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저녁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끝나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초조해진 제자들이 말합니다. 여기는 빈들이고 끼니 때가 되었으니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 저녁을 사먹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합리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뜻밖에도 너희가 주라고 하십니다. 무슨 답을 기대하시는 것인지요?

우리 사정 잘 아시면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되묻게 만드는 말씀일 것입니다. 말씀과 고침은 내가 다 주었으니 먹을 것은 너희가 해결하라는 것일까요? 우리에겐 여기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밖에 없다고 제자들은 답답한 듯 답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져오라는 주님입니다. 이야기에서 보듯이 주님은 그것으로 저 군중을 먹이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적은 것을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그 많은 이들을 먹이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 그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양도 변변치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뭘 한다고 꿈도 꾸지 못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나누고 또 나눕니다. 이 나눔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제자들만 먹기에도 모자랐을 양인데, 그 많은 이들이 먹고도 남은 것이 매우 많습니다. 굶주림의 위기가 나눔의 나눔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이 없었으면 이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눔으로 우리의 것이 커졌고, 많은 이들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작고 부족한 것으로 주님은 새세상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길입니다.

우리의 적은 것은 우리가 우리 안에 갇혀 있을 때 정말 적은 것이 되고 불안과 절망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 앞에 놓이면 주님의 무기가 됩니다. 우리의 강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분명 희망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작은 것들과 없는 것들의 나눔을 통해 이 땅에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일하지 않으시고 일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서 펼쳐지기를 원합니다. 작은 것들에 눈뜨고 없는 것들을 나눔으로 나눔이 커지게 하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의 깃발 야훼가 자유와 평화와 안전으로 펄럭이는 이 땅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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