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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침실고흐와 산책하기 (44)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4.07.06 04:52
▲ <아를의 침실> (1888. 10. 캔버스에 유채, 72.4×91.3㎝,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빈센트가 아를의 노란 집에 머물던 1888년 가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여성과 가정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접고 오직 그림에만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아를의 노란 집을 예술가 공동체로 꾸리고 싶어했다. 그림 한 점 팔리지 않는 무명 화가, 그것도 가난하기까지 한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꿈은 가진 것이 없어도 꿀 수 있고, 성공하지 않은 자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도전이자 기쁨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기준은 성공이 아니라 꿈이다. 자신의 꿈을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삶이다.

빈센트는 <아를의 침실>을 모두 세 점 그렸다. 빈센트의 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여기는 <감자 먹는 사람들>도 세 점이다. 같은 그림을 세 점이나 그렸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아를의 침실> (1889. 10. 캔버스에 유채, 73.6×92.3㎝, 시카고미술관, 시카고)

첫 작품(1888년 10월, 반 고흐 미술관 소장)은 예술가 공동체인 자신의 노란 집에 올 첫 번째 손님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그렸다. 고갱을 흠모하던 빈센트의 마음이 담겨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빈센트와 고갱의 만남은 두 달 만에 파국을 맞았다. 빈센트는 귀를 잘랐고 이듬해 봄에 생레미 정신요양원에 입원하였다. 두 번째(시카고미술관 소장)와 세 번째 작품(오르세미술관 소장)은 이때 그렸다.

세 작품 모두 구도와 소품이 같다. 문과 창문, 의자, 액자 등 소품들은 대개 쌍을 이루고 있다. 벽에 걸린 옷과 모자는 빈센트의 간소한 삶을 말하고 있다. 노랑, 빨강, 파랑, 분홍, 초록, 연두, 밝은 자주 등 다양한 색을 통하여 화가가 묘사하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벽에는 거울과 풍경화와 초상화, 그리고 일본판화인 듯한 액자가 걸려있다. 하지만 오른쪽에 걸려있는 액자의 그림은 조금씩 다르다.

▲ <아를의 침실> (1889. 캔버스에 유채, 56.5×74㎝, 오르세미술관, 파리)

첫 번째 작품의 초상화(1888)는 친구인 시인 외젠 보흐와 군인 폴 외젠 밀레이다. 두 번째 작품의 초상화는 1889년 9월에 생레미에서 양복을 입은 자화상인 듯하다. 세 번째 작품의 그림은 같은 무렵 깨끗이 면도한 모습의 차이나칼라를 입은 자화상으로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여동생 빌레미나로 보인다. 빈센트는 이 그림을 어머니에게 바쳤다. 같은 그림에 각기 다른 자화상을 넣은 속내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침실은 잠을 자는 공간이다. 누구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자궁처럼 폐쇄된 안전 공간이다. <아를의 침실>에는 절대적인 휴식이 배어있다.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는 빈센트에게도 꼭 필요한 공간이다. 육체의 잠은 영혼의 안식으로 이어지는 법,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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