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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이슬람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2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7.08 04:50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슬람에 대해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그리스도교 고전에 들지 않지만, 세계종교의 하나인 이슬람 자체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공부하는 것은 단지 역사공부가 아니라, 오늘도 전개되고 있는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스도교 사이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고만장’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종교들 사이의 갈등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었고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종교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서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을까요?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은 계시종교라는 특수한 자기주장에 근거한 신학적인 문제일까요? 아니면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의 역사적 문제일까요?

두 종교의 역사는 상호 배타와 갈등이 단순히 신학이나 세계관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종교가 모두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이슬람의 공격적인 팽창도 갈등의 심화에 기여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도시의 이름이 이스탄불로 바뀐데서 절정에 이른 일련의 군사적 패배는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은 1529년 비엔나를 포위하기까지 했고, 마침내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교 세계의 두려움은 적대감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은 그리스도교가 대적해야 했던 종교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로부터 가장 심하게 왜곡되고 비난받은 종교일 것입니다. 천 년 이상을 그리스도교와 서구문명의 최대의 적으로 간주되었던 이슬람에 대한 왜곡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마호메트’로 부른데서 드러납니다. ‘무함마드’에 해당하는 스코틀랜드어 ‘머하운드’가 악마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그를 의도적으로 ‘마호메트’로 부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무함마드는 우상숭배를 철두철미 배격했고 스스로를 하나님의 시종이며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고 했는데도 마치 그가 스스로를 최고의 신으로 여긴 것처럼 왜곡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가 처음부터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슬람은 출발부터 강력하게 주장한 ‘유일신 신앙’과 ‘종말론적 신앙’ 때문에 유대교 혹은 그리스도교의 일파로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두 종교의 신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동정녀 탄생을 사실로 인정합니다. 예수는 무함마드 이전 시대에 마지막으로 부름 받은 위대한 예언자이자 치유자였고, 신성한 지위를 결코 탐하지 않는 사랑과 가난과 겸손의 사표로 이슬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원죄의 개념을 모르는 이슬람은 대속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바로 여기에 두 종교의 신학적인 근본 차이가 있습니다.

16-17세기 유럽에서는 지독하게 반이슬람적인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그리스도교의 이슬람에 대한 끝없는 증오는 동유럽에 대한 터키의 정치적, 군사적 압력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이슬람에 대한 왜곡은 당시 그리스도교 서구의 열등감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천문학(알데바란, 베텔게우스 등의 많은 별자리 이름), 수학(알고리듬, 알게브라 등), 화학(알케미, 알코홀 등) 등 과학 분야에서는 물론 문학과 예술 면에서도 이슬람 세계는 서방세계의 모델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이 이슬람이 지배하던 세계를 ‘동양’(Orient)으로 표현한 것도 그들의 동양 지향성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는 말에 함축된 ‘새로운 사조나 문화에 대한 적응’이라는 의미도 이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타종교에 대하여 이슬람이 더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이야기도 사실 역사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슬람은 오히려 타종교에 대하여 관용적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1453년 콘스탄틴노플을 정복하여 이스탄불로 개칭했지만, 오스만 제국은 이스탄불을 종교적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만들려고 했고, 패전국의 그리스도교 문화까지도 관대하게 수용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스탄불에 지금까지도 그리스 정교회 본부가 존속되고 있다는 점도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과 유대교, 혹은 그리스도교의 적대적 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1918년 오스만 제국의 패전에 따른 전후문제 처리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강국들과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었습니다. 그 후 냉전체제 아래서 강화된 서방의 친 이스라엘 정책이 결국 오늘의 이슬람 국가들과 그리스도교 서구 국가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킨 것입니다.

▲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과의 갈등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지구적 과제이다. ⓒGetty Images

이슬람 세계에는 세계 4대 고대문명권 가운데 3개(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가 속해 있고, 이슬람 신도 수는 2024년 기준, 약 19억 6천 132만 3천 명이고, 또한 유엔에 가입하고 있는 정회원국만 57개국에 달하는 거대한 정치적 세력입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9,11 미국 뉴욕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 우리가 이른바 중동 특수라는 경제 관계 외에 특별히 이슬람 세계와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있었다면 그것은 주로 미국 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 왜곡된 이미지였습니다. 물론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테러와 폭력 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슬람 급진세력은 이슬람권에서 거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면서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1-5% 미만의 극소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른바 이슬람국가 IS(Islamic State)의 반인륜적인 테러와 문명파괴는 우리를 충격에 몰아넣었고, 용납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2) 이라크와 시리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IS는 점령지에서 외국인 인질을 살해한 것은 물론, 소수 종교, 종파에 소속 현지인들도 마구 학살하거나 박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IS가 이슬람 세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는데, 어쩌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주목을 받기 위해 더욱 극단적 테러 행위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 일부다처, 여성할례, 차도르 강제 등 여성의 인권이 문제되는 아랍적 문화유산은 전체 이슬람 세계에서 30% 미만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70%의 이슬람은 아시아(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전역, 중국 등)에 분포해 있다고 합니다.(3)

2024년 현재 84만 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다수가 이슬람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사회도 이젠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로 진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의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슬람에 대한 비방은 대게 ‘유학, 이민, 결혼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밀물처럼 들어온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선교사들은 무려 1만-2만 명에 이르고, 국내 이슬람 신자가 30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중동의 석유 부자나라들이 막대한 자금으로 국내에 이슬람 은행과 대학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슬람은 이미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한국을 찍어두고, 2020년 이슬람화 목표를 세웠으며, 2005년 11월 이슬람 한국 전래 50주년 기념식에 모인 이슬람 지도자들이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 하려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널리 퍼졌습니다.

또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보고서라는 것도 등장했는데, 여기에는 이슬람의 8단계 침투전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무슬림인구가 1% 안팎일 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 그룹을 지향하면서 잠복(1단계)하다가, 이슬람 선교를 서서히 진행시켜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면 이슬람을 강요하고, 급기야는 인종청소와 대학살까지 자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00%를 이루게 되면(8단계) 이슬람 율법이 헌법에 우선하는 신정일치체제를 구현한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주장들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풍문으로 밝혀졌습니다. 한국 이슬람 중앙회 측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국내 이슬람 신자 수는 26만 명 정도, 이 가운데 순수 한국인은 6만 명 정도입니다. 이슬람 선교사는 약 1000명 정도로 추정되고, 국내에 2024년 5월 기준, 약 150개의 사원이 있다고 합니다(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이슬람권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은 한국 여성가족부 2020년 자료에 의하면 매 년 약 300명의 한국인 여성들이 이슬람권 남성과 결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원인에 의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불교나 힌두교 등 전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이 세 종교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이 더 심한 것은 이들이 어쩌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 사이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를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대화와 증언의 전제입니다. 그래야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를 타종교인의 개종으로 이해하거나, 상대가 듣던 안 듣던 일방적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종교 사이의 대화와 화해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오늘의 이슬람국가들과 서방 세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거룩한 전쟁)으로 왜곡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신학적 대화는 훨씬 지난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지금까지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했던 이슬람 문제와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가자 지구 전쟁은 유감스럽게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지만, 전쟁이 빨리 종식되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종교들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대화와 화해도 더 심화되기를 바랍니다.

미주

(1)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신학사상」 (2001/겨울), 20.
(2) 2015년 1월, 모술 도서관에서 고대 서적과 문서 등 2000 여점을 불태웠고, 3월 5일 이라크 북부 점령지에서 3000년 전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유적인 님루드를 불도저 등을 동원해 파괴했고, 3월 7일에는 인근의 2000년 된 고대도시 하트라의 유적도 폭파했다. ‘중앙일보’, 2015년 3월 9일 사설 참조.
(3)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2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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