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를 간단히 집약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흔히 집약합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의 뜻만 알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초보적이지만, 가장 심오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일련의 논쟁적인 맥락에서 그 논쟁을 일단락 짓는 결구와 같습니다. 앞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른바 세금 논쟁이 등장하고(12:13 이하), 그다음 부활 논쟁이 등장합니다(12:18 이하). 세금 논쟁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유발하였고, 부활 논쟁은 부활을 믿지 않은 사두개파 사람들이 역시 예수님께 흠을 잡기 위해 유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 논쟁에 대해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명답으로 응수하였고, 부활 논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으로 응수하였습니다.

바로 그 논쟁을 지켜보던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다가와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으뜸이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12:28) 구체적인 주제들에 대해 명답을 내놓는 것을 보고, 그렇다면 이 사람의 근본은 무엇일까 확인하고자 하는 기대에서 던진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12:29~30) 신명기의 쉐마입니다(6:4~5).

연이어 답하십니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12:31) 이웃 사랑을 일깨우는 레위기의 말씀입니다(19:18).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 물었는데, 두 가지 계명을 말씀하심으로써 그 두 계명이 사실상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그에 대한 율법학자의 반응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낫습니다.”(12:32~33)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공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기가 알고 있는 율법의 정신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12:34) 이 대화 이후 감히 예수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본문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서에서부터 이어져 온 율법의 근본정신을 환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당신이 가르치는 것이 그 근본정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 진실이 율법에 정통한 율법학자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 뜻을 이루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근본정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구약성서의 율법에서 벗어남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신명기의 쉐마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것을 강조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전인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지적으로 이해하고 승인하는 상태나,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상태, 또는 의례적 예배를 드리거나 그저 남들이 보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으로 나타내는 상태, 그 가운데 특정한 형태에 한정되지 않고 그 모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요체는 전적으로 자기를 초월하는 차원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입장과 태도를 상대화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의 세계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어떤 아집도 어떤 우상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감히 그런 삶을 산다고 어떻게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두 번째 계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데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증 받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진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과 예언의 정신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율법학자의 대답은 바로 그 점에서 중요한 진실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12:3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종교적 의례에 몰입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그 행위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의 표현으로서 전적으로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더 낫습니다.” 하는 표현이 그것을 말합니다.

이 분명한 대화를 통해 더 이상 논쟁의 여지는 없어졌다고 본문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적 상황이 정말 종결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과 율법학자의 대화는, 다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그리고 헤롯 당원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잘못을 드러내 줍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 등장하는 율법학자를 칭찬한 것은 예수님의 진실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다른 율법학자들을 질책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 Gustave Dore, 「Arrival of the good Samaritan at the inn」 (1891) ⓒWikipedia

마가복음은 본문 말씀을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과, 그리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의 사건 사이에 배치함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 자신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구약성서 이래로 알려져 온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쟁적 맥락 한 가운데 있습니다. ‘나는 과연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가?’ 본문 말씀은 끊임없이 되묻게 합니다.

그 물음의 상황은 이 이야기가 계속 전파되면서 확대되고 심화합니다. 마가복음보다 후대에 기록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여전히 논쟁적 상황 가운데 이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질문자의 상황에 대해 부연함으로써 본문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 자신의 자세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마태복음(22:34~40)은 율법학자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전인적 승인 또는 따름과는 상관없는 태도입니다. 그와 같은 단서를 감안하고 마태복음의 같은 이야기를 보면, 트집을 잡고 싶은데 트집을 잡을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0:25~37)은 문제의 상황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누가 역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합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마가복음 본문 말씀과 거의 동일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다만 율법학자의 첫 물음과 대화 말미의 예수님 말씀이 달라집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10:25)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대화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당신 대답이 옳습니다.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살 것입니다.”(10:28)

누가복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연결되는 다른 이야기로 전환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로 전환하는 첫머리입니다.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10:29)

우리는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의 줄거리와 그 결론을 잘 압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베푼 사람으로서 사마리아 사람을 듭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의중을 꿰뚫고 일격을 가한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유대인 율법학자는 자신은 계명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족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학자는 자기가 정해놓은 이웃의 범위가 확고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고 하지만, 그 이웃은 자기에게 편한 이웃이요, 그 점에서 이웃의 경계는 확정되어 있고, 따라서 이웃 사랑마저도 지극히 자기중심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삶이 자기의 옳음을 입증하는 방편이 될지언정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삶을 사는 것과는 상관없는 삶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누가복음은 이웃 사랑의 계명마저 자기 기준의 한계 안에 가둬둔 유대인들의 한계를 넘어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이웃 사랑이 유대인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일깨운 것입니다. 보편적 사랑을 이루신 예수님의 삶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그 말씀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돌이켜 생각할 것을 촉구합니다.

본문 말씀은 오늘의 시대에 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인적 자본이 되고 저마다 자기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사람이 허덕이는 오늘의 삶 가운데서 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 삶은 끊임없이 타인을 경쟁의 상대이자 승패의 대상으로 여길 뿐 아니라 자기를 들들 볶는 고통의 악순환으로 몰아넣습니다. 자기를 넘어서는 세계에 대해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이웃을 돌볼 틈을 주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는 그 암울한 세계를 넘어서는 삶의 방식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 의미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 내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근원적인 진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자기만의 주관적 확신이거나 그저 외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에 그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 위험과 한계를 벗어납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을 의식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가운데서,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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