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운명이 결정되었던 포츠담 ⓒ이해학

혼돈, 혼돈, 혼돈

내 머리에는 이상하게도 별별 기억들이 담겨있다. 초등학생인 우리는 굵은 자갈이 깔린 신작로에 줄을 서서 우리 반 친구인 이병학의 아버지가 하는 긴 연설을 들었다. 그분은 검정 두루마기에 멋진 수염이 인상적인 마을 유지이셨다.

그 연설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도 신탁통치 반대 구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똑같은 행사를 하고 신탁통치 찬성을 외쳤다. 내 어린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신탁통치가 무엇이길래 반대도 하다가 찬성도 해야 하는가?”라는 기억이다.

포츠담, 거만한 제국들이 약소국들의 운명을 결정했던 곳

유럽대륙에서 전쟁의 끝이 보이자 비로소 한반도에 이해관계가 있는 강대국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43년 11월 37일 카이로 회담에서 중국 대표의 제안으로 한국에 대한 특별조항을 넣어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표명하였다. 제3항에서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 한국을 해방하여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12월 테헤란 회담에서 한국을 대변하던 중국 대표가 빠졌던 결과로 봐야 할까? 미국의 루스벨트는 “한국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까지 약 40년간의 수습 기간이 필요로 한다.”고 말했고, 스탈린은 이에 구두로 동의를 표하였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는 루스벨트와 처칠과 스탈린은 소련의 대일참전과 전후 처리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비공식 대화로 신탁통치를 결정하였다.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이 1945년 5월 항복하자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연합국이 점령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교외에 있는 포츠담(Potsdam)의 세실리안(Cecilien) 성당에서 포츠담 회담을 하였다. 독일은 회담 장소를 잘 보관하고 있었다. 거만한 제국의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약한 나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폭풍우 속에서 요동치는 똑딱선

그 후, 미국과 영국과 소련은 테헤란에서 회담을 열어 삼국은 조속한 종전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소련의 대일전쟁 참가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1945년 7월 말 포츠담선언에서 트루먼과 처칠, 스탈린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소련의 참전을 논의하였으며 “한국이 적당한 시기에 독립되어야 한다.”는 ‘카이로선언’을 재확인하였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원폭 투하 후 12시간이 지난 뒤 소련은 대일전에 참여하였고 일본은 8월 10일에야 포츠담선언을 수락할 용의가 있다고 미국에 통고하였다.

조선이 일제에서 해방된 것이다. 충칭에 있는 임시의정원은 김구를 주석, 김규식을 부주석으로 그리고 14명을 국무위원으로 선출하여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광복군은 미군의 지원을 받아 낙하산 부대를 창설하였고 광복군 제2 지대는 특수훈련을 위해 미국 OSS와 제휴를 하였다. 그 후 임정은 30여 개 연합국에 정부 승인을 요구하며 이어서 1945년 2월에는 독일에 선전 포고도 하였다.

그러나 한 번도 싸워보지도 못하고 해방을 맞이한 임정요인들은 여의도 비행장에 내리는 것 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이미 이 땅은 미국이 주도권을 깆고 있었다. 다시 삼 개월 후에야 민간인의 자격으로 환국하였고 12월 초에 한국 땅에서 최초로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개최하였다.

미국은 소극적이던 소련이 대일선전 포고를 한 뒤에야 비로소 소련의 한반도 점령은 동아시아 전체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것을 깨달아 급하게 종전 후 한반도와 극동지역에 관계된 부분의 초안 작성임무를 ‘전쟁성작전국’ 전략정책단 정책과의 두 명의 대령에게 (딘 러스크(Dean Rusk, 회고록 《As I Saw It》) 맡겼다. 그들은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군하여 웅기와 청진항에 분초를 다투며 상륙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초안을 작성하였다.

미국은 깊이 더 고민하거나 연구할 겨를도 없이 그들에 의해 작성된 38도선 확정안을 8월 14일 소련 측에 전달하였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전범국 일본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희생양이 되어 소련과 미군에 의하여 38선으로 분단이 되었다. 그리고 남한에는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미군이 진주하고 독립운동가들이 돌아오며 해외 동포들과 북쪽에서 피난민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미소공동위원회를 축으로 하여 정치인들이 이합집산하였다. 세상은 미친 듯이 돌아가고 식량 공급과 구호설비 부족으로 서민들의 생활은 식민지 시대보다 더 힘들고 고달프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던 곳에서 해방을 꿈꾸어 본다. ⓒ이해학

해방정국, 이념으로 불탔던 전쟁터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 대한 언론들의 선동적인 오보와 이를 정권 창출의 기회로 삼으려는 각종 정당과 단체들의 찬탁과 반탁의 극단적인 대립은 민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물가폭등과 인구 폭발로 인한 극심한 빈곤, 테러와 저격, 범죄와 부정부패에 방치된 일상에 절망하였다.

우리가 뒤늦게 통탄한 것은 2차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은 동서로 갈리어 지배되었으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충성자들은 끝까지 응징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런데 아시아를 피로 물들게 한 전범국가인 일본을 분할 되지 않고 피해국가인 한국을 분단해 버렸다. 미국은 자기들의 아시아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을 보호하고 도쿄재판에서 일본 천왕을 비롯한 주요 전범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국제질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결권이 없는(보장되지 못한) 국가는 항상 강대국의 먹잇감에 머문다는 것이다. 정치의 필요는 국가의 자결권을 확보해 가는 것이다. 분단을 막으려 좌우합작론을 주장하며 전국민의 추앙을 받았던 여운형은 12번째 테러를 통해 암살해 버렸다. 38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분단은 안 된다고 버틴 김구도 죽여버렸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결정된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됨으로써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다. 총사령관 M. W. 클라크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서명하여 155마일 길이의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졌다.

우리 땅에 그어진 DMZ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대륙 세력과 해양세력의 세계 재패의 힘겨루기를 휴전하고자 우리 땅을 희생양으로 사로잡았다. 문제는 우리의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지도자들마저 동의하거나 합의한 사실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 7천만 동포의 고난의 원죄요 악의 근원이 되어버렸다.

바로 그 무렵 나는 나보다 여덟살 위의 누이 손을 잡고 보리밭 이랑을 넘나들며 나물을 캐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이해학 대표(사단법인 겨레살림공동체)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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