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도 혼성 단체전 연장전에 돌입해 디지털 룰렛을 통해 체급을 결정하는 순간 ⓒ화면 갈무리

올림픽, 아니 그 어떤 대회가 되었든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늘 감동이 뒤따른다. 매달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애쓰는 노력에는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그래서 메달의 색이든 순위든 상관 없이 박수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독자들께서 이런 표현에 대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빌며, 아주 ‘기과하기 짝이 없는’ 종목을 보았다. 유도 혼성 단체전이었다. 유도 혼성 단체전은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신설됐다.

유도 혼성 단체전은 남자 3명과 여자 3명으로 구성된 국가 간의 유도 종목이다. 총 6개 체급에서 경기가 진행되며, 체급은 남자 73kg, 90kg, +90kg과 여자 57kg, 70kg, +70kg으로 나뉜다. 각 체급에서 승리하면 팀에 1점을 부여하고, 총점수가 높은 팀이 승리하게 된다.

만약 경기가 3:3으로 동점일 경우, 디지털 룰렛 추점을 통해 체급을 결정하고, 여기에서 승리한 팀이 최종 승자가 된다. 예를 들어, 이번 동메달 결정전에는 한국과 독일이 맞났는데, 3:3이 되었다. 이렇게 연장전에 돌입한 순간, 양팀의 선수들이 모두 나와 화면을 지켜보는 가운데 디지털 룰렛이 움직였고 –73kg이 결정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이번 올림픽에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73kg 체급의 선수가 없는 관계로 66kg의 안바울 선수가 연장전에 나선 것이다. 독일에서는 73kg 체급의 반트크 선수가 출전했기 때문에 연장전에서 안바울 선수는 자신 보다 한 체급 위의 선수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것도 5분여 전에 경기를 끝낸 안 선수였다.

경기 결과는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안바울 선수가 극적으로 승리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경기를 지켜 보고 난 후 여러 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성한(?) 올림픽이 “도박”이냐는둥 “카지노”냐는둥 수위 높은 비난이 등장했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다른 국가에서도 이 디지털 룰렛 방식의 결정에 대해 비판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디지털 룰렛 방식이 조작되었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누군가 해킹을 했다는 음모론까지 회자되었다는 뜻이다. 특히 자국에게 불리하거나 패할 경우 생겨나는 이런 이야기들은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는 말들이다.

하여간 앞서 기괴하기 짝이 없다고 한 말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렇게 한 국가에서 모든 체급에 나서는 선수가 없다면 체급이 서로 다른 선수가 경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거의 모든 경기 종목에서 체급을 설정하는 이유는 선수들의 공정한 경쟁과 선수들의 안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체급 간 경기를 허용하는 것은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선수에게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니 운에 맡길 수밖에 없기에 “도박”이니 “카지노” 하는 과격한 비난의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체급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공정이나 공평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단순히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공평하다는 말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하나, 어떤 국가들은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 다양한 체급에 걸쳐 강력한 선수들을 배출할 수 있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특정 체급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채 디지털 룰렛으로 결정한다고 해서 공정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있지도 않은 체급이지만 디지털 룰렛으로 결정되었으니 공정하다는 말은 우스운 말이다.

이런 장면들과 생각들이 연이어 머릿속을 스쳐가니 자연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떠올랐다. 오로지 ‘아리인’과 독일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올림픽으로 전락한 베를린 올림픽 말이다. 즉 이런 국가 선전전에서 올림픽은 정말 탈피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다.

선수들이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정과 자신이 국가 대표해 경기에 임한다는 자부심이야 누구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나마 국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 선수들을 지원한다면야 다행이지만, 오직 열정과 자부심 하나로 국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없이 경기에 임하는 저개발 국가의 선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공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베를린 올림픽이 끝난 후 많은 비판이 일어났지만, 기자의 눈에는 여전히 올림픽이라는 것은 선수 보다는 국가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로 보인다.

정말 올림픽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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