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이 꿈틀대는 아름다운 논 ⓒ정아롬

지난 6월 녹색전환연구소 주관으로 ‘일본 영농형 태양광 사례’ 세미나가 진행되어 세미나 관련 기사를 통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일본 시민에너지치바의 사례였다. 일본은 원전사고로 인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특히 에너지 자립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를 농업에도 적용한 것인데 농기계가 들어가고 작물이 태양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간격으로 태양광발전시설을 설비하는 것이다. 농작물 재배와 태양광발전수익으로 이중 소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틀린 말은 없지만 일본과 다른 우리나라 농촌현실에 대비해 몇 가지 간과한 내용이 눈에 띄게 보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전기를 판매하여 얻는 수익률이 아니다. 생산한 전기를 어디에서 사용하는지가 먼저다. 가구수라 해봤자 고작 몇십 가구이고 시설도 적은 시골마을에서는 얼마나 많은 전기를 사용할까. 고작 전등 몇 개에 전기장판, 텔레비전, 냉장고가 사용하는 게 전부인 분들도 아직 계신다. 결국 수천, 수만평의 농지에서 생산한 전기는 가까운 군소재지나 도시, 농공단지로 옮겨 사용해야 한다. 전기를 옮기기 위한 송전선로를 새로 가설해야 하는 문제와 송전시에 발생하는 에너지 상쇄에 대한 것, 전자파 문제를 간과 했다. 재생에너지는 사용처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오히려 마을회관과 각 농가와 창고의 지붕을 활용한 마을단위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는 게 가장 활용도가 높다.

그럼 전기발전으로 농가의 이중 수익이 생겨서 좋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전기로 얻는 수익 대신 실제 농가의 수고만큼의 값어치를 보장받으면 된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로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농사 지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은 상식되었다. 쌀값만 가지고 말해도 그렇다. 그나마 자급률이 가장 높은 작물이지만 한가마에 20만원을 위해 농민들이 상경투쟁을 한다. 우리나라 쌀 생산량의 10%(약 40만톤)가 무역협정에 의한 의무수입률이다. 정부에서 일정부분 쌀을 분리해야 시장가격이 나오는 건 바로 수입된 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러니 주식인 쌀도 가격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물가는 계속 오르지만 지금의 쌀가격이 15년 전과 다르지 않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한걸음 더 생각한다면, 1ha 이하의 농지를 경작하는 소농이 70%이상인 우리나라는 생태적인 전환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만큼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지만, 자본시장의 형태로 농업을 접근하기에 대규모단작을 부축일 수 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내수와 자급율을 높여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다른 나라에 손벌리고 앉아서 기다릴 것인가. 어느 순간 무역이 중단될 수도 있다. 먹거리 만큼은 내수와 자급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한마디로 ‘할머니 텃밭을 회복’해야 한다. 정성과 땀이 녹아있는 소농들의 방식에 힘을 실어주고 그만큼의 값어치를 인정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지만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윤리적인 소비이다.

농촌의 농지를 빈공간으로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농지에는 생명력이 꿈틀대는 곳이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식(食)’의 핵심 공간이다. 사람이 적고 건축물이 없다고 개발해야 하는 현장으로 보지 마시라. 전기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시의 지붕과 공장의 지붕에 설치하지 않고 자꾸 농촌공간을 소비하려는 풍조가 잘못이다. 수천킬로미터의 도로와 철도의 법면을 차라리 이용해서 시설하는 게 현명하다.

농촌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여름, 바람에 춤을 추는 푸른 물결과 가을 추수철에 펼쳐지는 황금물결을 포기해야 하는가. 영농형 태양광의 치명적인 점은 농촌 경관을 해친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은 풍수적인 관점에서 위치해 있다. 특히 물과 바람의 흐름에 대한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여 있다. 그에 따라 물이 나는 곳은 논으로, 배수가 잘되는 곳은 밭으로 사용해왔다.

▲ 산의 등고선과 물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농지의 모양 ⓒ정아롬

농지의 모양도 산새와 강의 흐름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마을 위치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하게 연결되어있는 자연의 흐름을 읽으며 형성된 지혜가 바로 농촌의 경관이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햇빛의 방향에만 관심을 쏟는 게 대규모 태양광시설이다. 영농형이라고 다르지 않다.

농촌 경관의 변화는 농민의 심리적 변화에도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태양빛을 잘 흡수 하기 위한 검은색 물결의 태양광전지를 365일 쳐다보며 산다고 생각해 보자. 주변의 자연을 보며 절기와 계절을 읽었던 농민의 안목을 반감 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농촌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먹거리’를 짓는 곳이지만 그만큼 보호받고 이해받지는 못한 채 밟혀지는 곳이다. 소비지와 생산지가 철저히 분리 되어 있는 시대적인 발상자체부터가 잘못되었다.

얼마전 군청 홈페이지 공고란을 보니 ‘농촌 공간 재구조화’를 위한 연구용역 선정 공지가 떴다. 살펴보니 지방소멸을 대응하기 위한 농림식품부에서 추진하는 법실행안이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학교, 가게 등 주민들이 이용할 공간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복지 사각지대가 생기니 농촌 공간을 재편성하자는 말이다. 주민들도 함께 모여 살면 공공, 편의시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공간은 재생에너지 지역, 주거지역, 농촌유해시설로 분리된 축산지역, 농업지역, 농업유산지역, 주거지역 등으로 분류된다.

좋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무서운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이곳은 재생에너지 지구로 편성되었으니 원래 살던 주민들은 모두 강제 퇴거하여 주거지역으로 옮겨야 합니다라는 말이다. 주거지역에서 출퇴근 하듯 농지가 있는 곳에서 가서 일하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 도시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누구의 머리 속에서 나온 생각일까. 문전옥답은 알고 이런 실행안을 만들었을까. 언제까지 시골은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할까.

올해 12월부터 ‘농지 쉼터’ 제도가 시행된다. 일종의 불법 농막 양성화 단계다. 기존 농막의 6평 규모를 제한했던 것을 33제곱미터의 공간을 지을 수 있고 주거 가능하고 정화조와 주차장도 설치할 수 있다. 건축공간의 두배의 농지 위에 마음껏 건축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도시근교의 농지다.  가뜩이나 농지가 줄어가고 있는 시기에 위 제도는 그 속도를 가속하게 만들 것이다. 농지라는 생명을 키워내는 공간에서 오롯이 부동산으로서만 인식하게 될 것이다.

무더위가 지속되는 시기이지만 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났다. 옛 속담에 “입추에는 벼가 자라는 걸 보고 개가 놀라 짖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식물이 자라기 좋은 계절이다. 아무리 예초기로 풀을 깔끔하게 베어도 뒤돌아 서면 다시 제자리이다. 풀들의 생명력은 가히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밟혀도 베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그 자체가 ‘농촌’과 같았다. 얼토당토않은 법안들이 난립하는 시기에 아무리 밟히고 베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생명력이 꿈틀 대었으면 좋겠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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