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너무나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깊이 헤아릴 필요 없이 단번에 그 뜻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굽어 몸을 펼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발견하고 가까이 불러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여, 그대는 병에서 풀려났소.”(13:12) 그리고 여자에게 손을 얹자, 여자는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수종병 환자를 치유하신 이야기(14:1~6)와 더불어 누가복음에만 전해지고 있는 치유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치유 받은 주인공은 여자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이 함축하는 복음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여기에 무슨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자명한 복음의 진실은 일종의 구설수 거리(스캔들)가 되고 맙니다. 기존의 사회적·종교적 질서와 통념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배제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복음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지켜본 회당장이 분개하여 회중에게 외칩니다. 화가 나서 회중들에게 외칩니다. 병자가 치유 받은 사건을 두고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한데, 이를 두고 사건의 당사자인 예수님께 항변하기 전에 회중들을 향하여 말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것은 이 회당장이 분개하는 이유에 대해 회중들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은 당시 통념에 의존해 대중을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당에서 벌어지는 일과 똑같습니다.

회당장은 분개하며 외칩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13:14)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함으로써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예수께서 안식일 법을 위반한 것이 되었을까요? 당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려 234가지였습니다. 완전한 숫자 4와 10이 결합한 40에서 하나를 빼면 불완전한 39가 됩니다. 여기에 다시 또 다른 완전한 숫자 7에서 1을 빼면 역시 불완전한 6이 됩니다. 이 둘 곧 39와 6을 곱하면 234가 됩니다.

불완전한 숫자들의 곱으로 금기 목록을 확정한 것입니다(파종, 쟁기질, 수확, 단 묶는 일, 타작, 키질, 독서, 제분, 체질, 반죽, 굽는 일, 표백, 빗는 일, 채색, 잣는 일, 실을 감는 일, 엮는 일, 분리하는 일, 매듭짓는 일, 푸는 일, 시침질, 이를 위해 뜯는 일, 사냥, 도살, 가죽 벗기는 일, 소금에 절이는 일, 가죽 정리, 깎아내는 일, 절단, 두 개 글자 쓰는 일, 이를 위하여 지우는 일, 건축, 무너뜨리는 일, 불 끄는 일, 점화, 망치질, 운반… 등).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경우로만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요즘도 이런 식으로 율법에 목을 매는 한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걸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답하십니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13:15~16)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 법을 그다지도 엄격하게 지키는 너희도 가축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을 하지 않느냐, 하물며 병으로 고통을 겪는 여인에게서 그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자,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 모두 부끄러워하였고, 모든 회중이 예수님께서 하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습니다. 여인이 질병의 족쇄에서 풀려났을 뿐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이 그간 자신들을 사로잡고 있는 통념과 편견의 족쇄로부터 풀려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그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사건을 보고 모두 그 사람의 기쁨에 동참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두드러진 쟁점은 안식일 법 준수 여부입니다. 안식일 법조문을 따르는 율법주의자들은 그 법조문이 규정한 금기를 잘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부칩니다. 우리 사회에서 주5일제 근무제를 도입할 때 한기총을 대표하는 인사가 성경에도 주 엿새 일하고 하루 쉰 걸로 되어 있어, 그에 반대한다고 했던 일이 연상됩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환기합니다. 안식이 생명의 활동에 꼭 필요한 것이며, 따라서 안식의 근본 뜻은 생명을 살리는 데 있다는 것을 환기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마가 2:27) 예수님께서는 그 정신을 환기하며,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안식일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한 것이라는 진실을 만천하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그 초점 하나만으로도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로서 충분하지만, 차별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현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더욱 깊이 새기게 해줍니다.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치유 받은 이가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해서 소란이 벌어진 이 상황은 더욱 복합적인 차별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차별은 항상 그렇게 복합적인 요인을 동반합니다.

▲ James Tissot, 「Christ healing an infirm woman」 (1850) ⓒWikipedia

우선 주인공은 여자입니다. 여자는 회당의 모임에 공공연하게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여자가 예수님의 부름으로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회당장의 눈에는 이것부터 거슬렸습니다. 게다가 병자입니다. 당시 병자는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징벌로 몹쓸 병에 걸렸다는 것이 당시 통념입니다. 병자는 곧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여자가, 그것도 죄인이 회중의 앞자리에 나서는 일은 완고하게 율법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회당장이 회중을 향하여 먼저 말을 건낸 것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중들의 동의를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율법주의자들의 허위의식을 질타합니다. 너희도 안식일에 가축들을 먹이지 않느냐는 말씀은 자신들을 되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그 엄격한 율법 규정이라도 스스로 재해석할 여지를 두고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신체의 장애를 가진 이라도 성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돼지고기도 먹으면서 같은 문맥에 등장하는 특정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구절만 금과옥조로 여기며 특정한 성적지향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태도를 문제시한 것입니다. 이미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는 태도를 돌이켜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브라함의 딸’, 놀라운 선언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만이 정통 계보를 잇는 후손이라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아브라함의 딸’을 말하고 계십니다

 여성을 당당한 구성원이자 주체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그 오랜 세월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외면하실 리 없습니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뜻을 지닌 안식일에 그가 치유를 받았다면 더욱 기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진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진실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치유 기적은 항상 사회적 차별의 편견을 걷어내는 것을 동반합니다. 고통의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뜻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복음이 함축하는 진실입니다.

복음은 인권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복음과 인권은 대립 관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서서 자신의 생명을 자유롭게 누리도록 하는 데 참뜻이 있습니다. 그 복음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권리로서 인권을 포용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의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자기 의만을 내세우는 냉혹한 율법주의와 동일화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복음이 완전히 율법주의로 타락해 버린 현실 때문에 탄식합니다. 율법 조문을 따라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요란하고 그들이 득세하는 상황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기관의 존재 의미를 완전히 거스르는 인사정책에 할 말을 잊을 지경입니다. 때때로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들이 국가기관장에 임명되는 경우는 있어도 해당 국가기관의 설립 취지와 존재 이유에 정반대되는 인사가 임명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그런 일이 무더기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만이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진실과화해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노동부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 국민을 분열과 갈등의 상황으로 내모는 선전포고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급기야는 국가인권위원장까지 반인권론자가 지명되었습니다. 국제연합(UN)의 권고에 따라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역할을 맡아야 할 국가기관마저 그간 혐오 발언을 일삼아 온 반인권 차별주의자가 위원장으로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해당 후보자 안창호는 유명 리조트 회장 아들의 미성년 성매매와 불법 촬영 사건을 변호하는가 하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법률 심판에 앞장서는 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반하는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복음의 뜻을 신실하게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더욱 서글픈 일은 그가 성경을 빌미로 차별과 혐오의 논리를 끊임없이 유포해 온 장본인이라는 것입니다. 반인권적이자 동시에 복음을 타락시킨 반복음적 율법주의자가 인권을 보장하는 기관장이 되는 어이없는 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신착란증과도 같은 국정운영입니다. 맡을 만한 사람은 모두 피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입니다. 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 징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완고한 율법주의자들의 억지에 굴하지 않고 병든 여인을 앞줄에 세우고 생명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율법주의가 아니라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먼저 시선을 주고 이끌어주는 사랑의 복음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사랑의 복음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의 진실, 상대를 포용하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믿으며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정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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