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고갱의 의자> (1888. 12, 캔버스에 유채, 90.5×72.5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의자는 피곤하고 지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가구다. 의자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참외밭에 까는 지푸라기나 호박을 받치는 똬리도 의자다. 빈센트에게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인생의 가치와 정체성을 포함하는 자존감과 같은 것이다.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안식과 평화에 이르는 도구이다.

<폴 고갱의 의자>(1888)는 비슷한 시기에 그린 <반 고흐의 의자>와 함께 쌍을 이룬다. 화면 가득 채운 의자는 세기의 화가에 대한 자존감의 표현처럼 보인다. 빈센트의 예술이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애써 축소하지 않았고 일부러 겸손해하지도 않았다. 고갱의 의자 역시 캔버스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화면에 가득하다. 고갱에 대한 존경과 예찬으로 보인다. 그래서 두 점의 그림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폴 고갱의 의자>는 의자의 단순한 기능만 가진 자신의 노란 의자에 비하여 곡선미를 갖추고 있어 자못 고급지다. 게다가 팔걸이도 있어 훨씬 기능적이다. 색감도 훨씬 화려하다. 바닥도 자신의 의자가 타일 위에 있는데 비하여 양탄자가 깔려있다. 자신의 빈 의자에는 담배를 올려놓아 고독을 강조한 반면 고갱의 의자에는 두 권의 책과 촛불을 그려 지성과 영광을 표현하였다. 모름지기 고갱을 향한 빈센트의 본심이 그랬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두 의자 다 비어있다. 마치 두 사람의 이별을 예고하기나 한 듯 의자에는 주인이 없다. 이 그림이 그려진 후 얼마 되지 않아 세기의 두 화가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우정은 금이 갔지만 그들이 남긴 의자 그림은 쌍을 이룬다.

김수영의 시 <열두 개의 빈 의자>는 “가난뱅이 고흐는 의자를 열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고 시작한다. 빵을 굶어가며 마련한 의자이다. 자신은 한 번도 앉아보지 않은 의자이다. 고흐는 과연 누구를 위하여 의자를 마련한 것일까? 보리나주 탄광촌의 늙은 광부와 뉘넌의 감자 농사를 짓는 농부, 그리고 방풍용으로 심은 사이프러스 나무, 자기 가슴을 열어젖힌 해바라기, 그리고 쪽창으로 들어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이를 위해서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의 상상력이 빈센트의 마음과 일치하는 듯하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빗대어 말한다면 의자야말로 가구가 아니다. 의자는 삶을 안돈시키고 쉼을 주며 평화에 이르게 한다. 특히 빈 의자는 부재한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그리운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빌립보서 2:3)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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