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악을 어두워질 때 빛을 발해야 할 곳은 교회이다. ⓒGetty Images

그토록 길게 느껴지던 여름이 이제는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바람 속에 시원한 기운이 살짝살짝 들어 있어서입니다. 예전의 한여름이 이제는 여름 막바지에 그것도 길게 계속되고 있는 것은 세상이 한참 달라졌구나를 실감하게 합니다.

높이가 달라지고 길이가 달라져도 자연은 아직 큰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지구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미안하고 미래세대를 생각하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지구가 그렇게 할 힘마저 잃는 때가 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는 것 없이 그 끝을 향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모두의 멸망 속에서도 자신의 안전과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무지몽매한 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큰 어리석음입니다. 이 어리석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어리석은 행태를 고발하기 보다는 무관심이나 침묵으로 오히려 촉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 어리석음의 대표가 부정의한 정치경제권력이기에 그 앞에서 자기의 안위와 이익을 얻기 위해 그러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러한 것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속만도 못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교회는 다릅니다. 달라져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계시록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계시록에 교회라는 말은 1-3장과 22,16에만 나옵니다. 그 사이에는 성전이란 말만 언급됩니다. 교회와 성전은 어떤 관계에 있을런지요? 그리고 그것은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겠는지요? 위의 본문에서 시작해 이에 대한 답의 단초를 얻고자 합니다.

요한이 여기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있는 것을 못보았다는 말이 아님은 자명합니다. 성전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16장까지 하늘의 성전이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요한의 발언은 참으로 뜻밖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전능하신 이와 그의 어린 양이 성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의 전조는 이미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전뿐만 아니라 해나 달도 필요 없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영광과 등불이신 어린 양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인 성전의 원형인 하늘의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세상의 보존을 가능케 했던 해와 달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임을 우리는 압니다. 완전히 변화된 세상을 계시록은 교회에 이렇게 보여줍니다.

계시록이 전망하는 새하늘과 새땅의 최종적인 모습입니다. 새롭다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위 본문은 그 세상이 더이상 피조물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임을 짐작케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빛이 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이 그 세상에 있는 백성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것입니다. 그 사이에는 태양도 달도 빛을 비추기 위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들로 대표되는 모든 것들이 그 사이에 있을 수 없습니다. 직접적인 만남, 직접적인 대면, 직접적인 삶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자 모든 것인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은 그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그 모든 것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성전도 더이상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화해의 장소였던 성전은 용서와 화해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새하늘과 새땅의 새세상에는 있을 곳이 당연히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이 곧 성전이 될 것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제도들이 사라집니다. 환희와 평화의 만남이 그 안에서 그 무엇에 의해서도 방해받는 일 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있던 성전은 어떤 곳이었을런지요? 그곳은 악이 지배하는 세상을 향한 하늘의 마지막 선전포고가 이루어지고 최후 심판 행위들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성전은 언제까지나 악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 궁극적 제거 없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싸우는 곳이 성전입니다. 악을 최종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있는 곳입니다.

이같은 성전의 기능이 땅의 교회들과 무관한 것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전일 수 없지만, 하늘의 성전은 교회의 모범입니다. 악 가운데 존재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있는 한 불가피한 일이지만, 악과 타협하거나 악에 굴종하거나 심지어 악을 섬기는 것은 교회의 모습일 수 없음을 그 모범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으로 악에 저항하고 악을 견디고 행동으로 희망을 나르는 것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해 내 사자를 보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다”(21,16)고 하신 이유입니다. 그는 그의 증언을 들은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줄 것”(21,12)이라고 함으로써 그의 증언대로 살 것을 촉구하십니다. 그렇게 사는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

이러한 교회는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평화의 꿈에 감동하고 인간의 탐욕으로 존재 위기를 맞은 세상을 아파하며 평화의 두 기둥인 정의/공의와 사랑을 세상에 우뚝 세우려고 합니다. 교회는 그래서 희망이고 그래서 미래입니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미래입니다.

빛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 자신이 빛으로 드러나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본래 모든 생명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설계된 세상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모든 생명의 하나님이시고 모든 인간이 그의 백성이 되는 세상, 그것이 하나님의 기획이었습니다. 인간에 의해 뒤틀린 바로 그 세상이 기획된 모습 그대로 미래로부터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 미래를 품고 일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 미래를 거부하는 권력의 악에 저항하고 지구의 고통에 공감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섬김의 삶으로 그 미래를 맞는 현재의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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