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은 현재 난민 2세대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2등 시민에 가까운 위치에서 비롯된 난민 2세대들의 사회적 불안정과 절망은 이들로 하여금 폭력 집단이 되도록 부추겼다. ⓒGetty Images

난민, 아직 우리 사회에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 난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16년과 2018년 사이에 예멘 출신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한 사건이었다.

또 한 계기는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로 수도 카불이 함락되면서, 한국 정부가 주 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과 KOICA에 협력한 390여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구출해 국내로 이송한 작전, 이른바 미라클 작전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국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책으로 출판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듯 현대 사회의 난민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증가하는 난민은 국제 사회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난민 2세대 문제까지 겹쳐지면서 유럽 사회는 난민 혐오 현상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제시한 “인간 쓰레기(human waste)”라는 개념은 주목할 만하다. 바우만은 그의 저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그가 제시한 “인간 쓰레기” 개념은 난민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 쓰레기”를 만드는 현대 사회의 모순

바우만이 2004년 출간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은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 현상을 “쓰레기” 생산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서이다. 여기서 그가 제시한 “인간 쓰레기” 개념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바우만이 말한 “인간 쓰레기”란 무엇일까?

바우만에 따르면, 이는 현대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에서 배제되거나 무용지물이 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사회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주로 실업자, 불법 이민자, 난민 등 사회 주류 시스템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바우만은 이러한 “인간 쓰레기”의 생산이 현대 사회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현대 사회의 끊임없는 ‘진보’와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사람들을 시스템에서 배제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자동화는 많은 일자리를 대체해 결과적으로 실업자를 양산한다. 또한 글로벌화로 인한 국경의 완화는 한편으로는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난민과 불법 이민자와 같은 “원치 않는” 인구의 이동도 증가시킨다.

즉 바우만의 “인간 쓰레기” 개념은 단순히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 전체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특정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글로벌한 현상으로 파악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난민 문제

이렇게 쓰레기 된 삶들 중 하나가 바로 난민이고, 이 난민 문제는 21세기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글로벌 이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8,200만 명의 강제 이주민이 존재하며, 이 중 2,620만 명이 난민으로 분류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이다.

난민 발생의 원인은 다양하다. 전쟁과 내전, 정치적 박해, 종교적 갈등,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난민 2세대들의 문제까지 더해지고 있다.

바우만의 “인간 쓰레기” 개념은 현대 사회의 난민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난민들은 바우만이 말하는 “인간 쓰레기”의 전형적인 예시다. 이들은 자신의 고국에서 배제되어 떠나야 했고, 새로운 땅에서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주변화된다. 난민들은 종종 “불필요한” 존재, 혹은 “부담”으로 여겨진다.

둘째, 난민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바우만이 말하는 “쓰레기” 처리 방식과 유사하다. 많은 국가들이 난민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며, 받아들이더라도 이들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난민 수용소나 게토화된 지역에 난민들을 격리시키는 것은 마치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처리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셋째, 난민 문제는 바우만이 지적한 현대 사회의 “일회용” 문화와도 연결된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난민들은 종종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할 때만 환영받고, 그 외의 경우에는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넷째, 난민 문제는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바우만은 현대 사회가 고정된 형태를 잃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난민들의 불안정한 삶, 그리고 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태도는 이러한 “유동하는 근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난민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바우만이 지적한 현대 사회의 도덕적 무감각을 반영한다. 바우만은 현대 사회가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책임감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난민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또는 냉담한 반응은 이러한 도덕적 무감각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 지난 6일 입국한 필리핀 가사 노동자들이 부당 노동에 시달리게 될지 지켜보아야 사안이다. ⓒ연합뉴스

스웨덴의 난민 2세대 갱단 문제

여기에, 난민 1세대가 안정을 찾았다고 해도 그들의 자녀 세대들은 여전히 쓰레기가 되는 삶을 면하지 못한다. 가장 극명한 예가 바로 스웨덴의 난민 2세대 갱단 문제이다. 스웨덴은 1980년대부터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통합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많은 난민들이 도시 외곽의 저소득 지역에 집중되면서 ‘게토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사회경제적 격차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스웨덴에서는 갱 관련 총기 폭력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갱 조직의 주요 구성원들이 난민 2세대 청소년들이라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주로 소말리아,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온 난민의 자녀들이다.

난민 1세대가 경험한 사회적 배제와 주변화가 2세대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바우만이 말한 “인간 쓰레기” 상태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민 2세대 청소년들이 갱단에 가담하는 것은 주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정체성 혼란, 경제적 어려움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이는 바우만이 지적한 “쓰레기” 취급받는 이들의 심리적, 사회적 상태를 반영한다. 스웨덴의 문제는 단순히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효과적인 통합 정책과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인간 쓰레기” 상태는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스웨덴 정부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력 강화, 갱 조직에 대한 처벌 강화, 취약 지역에 대한 교육 및 고용 지원 확대 등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바우만의 “인간 쓰레기” 개념을 통해 난민 문제를 바라보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정책적 접근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바우만의 분석은 우리에게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난민을 “쓰레기”나 “부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이자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난민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통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난민을 “인간 쓰레기”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난민 정책은 국가의 이익이나 경제적 고려만이 아닌, 인권을 중심에 두고 수립되어야 한다. 난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이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모든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미 시점을 넘어섰다

난민들은 현대 사회의 “쓰레기 생산” 메커니즘의 희생양이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새로운 땅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얼마나 쉽게 인간을 "쓰레기"로 취급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그러나 바우만의 분석은 단순히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난민을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보다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난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바우만의 “인간 쓰레기” 개념을 통해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난민을 “쓰레기”가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난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살아갈 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난민 문제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처음 미라클 작전의 성공으로 무사히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한국 정부는 법적 난민 인정자 지위를 주는 대신, ‘특별기여자’라는 체류 자격을 신설해 부여했다. 특별기여자는 사회보장제도 적용에서 난민 인정자와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애써 별도의 자격을 신설해 부여한 것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면 더 많은 난민들이 기대를 품고 한국에 난민 신청할 것을 우려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한국의 난민 신청 건수는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국내 노동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정책이 시작되었다.

9월부터 서울에서 시작되는 ‘시범 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6일 입국한 것이다. 이들 가사관리사들은 4주 160시간 동안 안전보건·생활법률, 성희롱 예방교육, 직무교육, 한국어·문화교육 등 특화교육을 받은 뒤 오는 9월 3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각 가정에서 일하게 된다. 노동계는 가정에서 일하는 이주여성이 가구원의 업무지시를 거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이들이 부당한 노동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한국 사회도 난민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해 문을 크게 열어야 할 시점을 이미 넘어섰다. 문제는 이들을 “인간 쓰레기”로 만들 것인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지의 문제만 남은 것이다. 이들의 인권도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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