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은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에 형들과 만날 수 있었다. ⓒGetty Images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 말의 의미는 잘 생각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구호처럼 말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쓸 수 있을까요? 겉으로 보면 그 반대일 때가 더 많지 않을까요?

박해를 당하거나 권력에 이용당하는 것이 그러한 예일 것 같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순응할 것을 선포하는 강단이 적지 않고 루터의 두 왕국설을 악용하여 세상과 무관한 척 세상을 섬기기도 합니다. 결코 새상을 이기는 믿음의 모습들이 아닙니다.

세상의 노예가 됨을 덮기 위한 온갖 미사여구와 말장난들이 넘쳐나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탄식을 들으시고 이집트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응답했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을 때 그 폭력 아래서도 얻는 것이 있을 테니까 저항하지 말고 참고 잘 지내며 일본에 고마워하라고 하면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한 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불의와 억압을 몹시 마음 아파하며 믿음으로 이기게 하는 하나님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확인하고 그 믿음의 길 위에 서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야곱은 젊었을 때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돌아오게 되었지만, 훗날 노인이 되어 다시 이집트로 이동하고 거기서 생을 마칩니다. 떠돌이 삶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란으로 갔던 것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이었고 이집트로 내려간 것은 자연재해 때문입니다. 이유야 여하튼 평생 난민의 삶을 살았던 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의 아들 요셉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형들이 그와의 갈등으로 그들 상인들에게 팔아 이집트에 오게 된 요셉은 다른 의미에서 야곱의 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종에서 옥살이를 거쳐 재상에 오른 그가 양식을 구하러 온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비록 재상이 되었지만 그의 슬픔과 아픔은 므낫세라는 그의 첫 아들 이름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잊다’라는 말의 사역형에서 나온 분사형 명사로 ‘잊게 함’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잊는 것이 편할 정도의 고통스런 기억들이 많았던 탓일 겁니다.

물론 그리움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 이름에 설명을 붙여 모든 고난과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게 하셨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한도 억울함도 즐거움도 그리움도 모두 잊고 이제 현재의 삶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형제들이 자기 앞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잊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다시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그의 태도를 보면 한맺힌 것이나 억울한 것 보다는 그리움이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이 일을 깊이 성찰한 것 같습니다.

왜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재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재상이 된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현재의 내가 되었다면 그들이 나를 판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그의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올라왔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결과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믿음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형제들 앞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까지 일종의 연극을 하고 형제들을 깊은 두려움 속에 떨게 합니다.

형제들과 대제국의 재상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운 일일 텐데 범죄누명까지 더해진다면, 형제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지난날 자신이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지고 상인들에 의해 팔려오게 되면서 겪었던 모든 두려움과 공포 절망을 그들도 그 순간 겪지 않았을까요? 연극에 의한 과거의 재현이라고 하면 지나칠까요?

그후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오늘의 본문에 있는 말들을 합니다. 그는 형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탓하지 말라고 하며 그 일을 ‘하나님이 생명을 위해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형제들은 이 말로 과거를 털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그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 일은 그들 의식 밑바닥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저 말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과 미래를 담은 고백입니다. 감사의 표현입니다. 잊었던 과거가 이 일을 계기로 미래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요셉도 비로소 요셉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이 없었다면, 요셉은 에브라임을 낳고 성공과 번성을 노래한 것처럼 그러한 삶에 만족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형제들과의 재회는 그를 한 단계 더 오르게 하고 하나님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요셉은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생명과 미래를 여는 것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것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재해든 전쟁이든 가난이든 생명과 미래가 닫힌 세상에 생명과 평화의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억압과 수탈로 죽음과 절망만 있는 곳에 생명과 미래로 해방을 일으키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곧 예수를 믿고 사랑하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합니다. 그 믿음 그 사랑은 무엇입니까? 무엇이길래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합니까?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한 가지입니다, 요한이 염두에 두고 있는 그 계명은 다름 아닌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정말 이것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평화를 낳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 모든 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랑으로 모아집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사랑의 은사를 이야기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 13,5-6)고 증언합니다.

따라서 악과 불의를 거부하고 진리 편에 서는 것이 사랑입니다. 악과 불의 때문에 신음하고 절망하며 죽음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로 생명과 미래를 열어주라고 호소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악과 불의, 절망과 죽음의 세상을 이기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표현은 한 가지 일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되든 그것은 그 사랑이 모든 표현들의 공통분모입니다. 이것을 갖지 못한 행위는 적어도 세상을 이기는 사랑이 될 수 없고 그 사랑을 낳는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랑과 믿음이 세상에 희망을 줄 것입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는 양 한숨과 절망을 양산하는 한국 사회에 생명과 미래를 열어주는 믿음과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그 사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이기에 숱한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게서 그 길을 멈추지 않도록 사랑과 용기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서로 연대하고 서로 지지하며 생명과 미래를 보여줄 수 있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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