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를 병원의 정원> (1889. 4, 아를, 캔버스에 유채, 73×92cm, 빈터투어)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롬 5:20)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은 죄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죄를 자각하고 몹시 괴로워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죄에 대하여 아무런 감각이 없다. 도리어 죄와 악행을 자랑삼는다. 죄에 대한 아픔이 사라진 곳에 은총이 머물 자리는 없다. 은총이란 죄를 자각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곳에 임한다.

빈센트는 자기 삶의 고비마다 낮은 곳, 또는 막다른 곳을 택했다. 신학교 입학이 좌절되었을 때는 보리나주 탄광촌을 택해 비참한 삶에 처했다. 연인을 향한 마음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는 자해하기도 하였고, 가여운 거리의 여인 시엔과 그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을 때도 몹시 괴로워하며 아버지와 맞서기도 하였다.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스스로 귀를 절단하기도 하였다. 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동생 테오를 향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에게는 자책과 자학, 그리고 연민이 가득했다. 죄를 인식하였다는 반증으로 읽는다.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는 사건이 있은 후 빈센트의 병세는 급속히 나빠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무렵 창작 의욕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의 대부분 유명작이 이 무렵 창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고통은 창조와 비례하고 기쁨은 아픔 옆에 자리한다. 만일 빈센트에게 이런 고통의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밤하늘 별처럼 빛나는 그의 명작들을 우리가 과연 볼 수 있었을까?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놀라운 역설이다.

그 무렵의 작품 가운데 <아를 병원의 정원>(1889, 4)이 있다. 발작을 일으켜 귀를 자른 1888년 12월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병원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라며 거리를 두었고 경찰은 그의 노란 집을 폐쇄하였다. 그후 빈센트는 생 레미의 생폴 요양원을 가던 1889년 5월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그림에는 아치의 통로가 있고 복도를 지나는 사람이 보인다. 2층 창가에는 정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여덟 개로 나뉘어진 꽃밭 끝에 수녀의 모습도 있다. 가운데에는 수초가 자란 작은 연못에 잉어가 헤엄치고 있다. 나뭇가지는 아직 잎을 틔우지 않았지만 정원의 꽃들은 완연한 봄이다. 병원의 외벽은 노란색이고 작품은 보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특히 보라색이 거침없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의사와 간호사만 있지는 않다. 작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원사도 있다. 아마도 캔버스 밖 어딘가에는 모종삽과 전정가위를 든 정원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아를의 정신병원에서 정원을 빼면 병원이 아니다. 아픔은 약으로만 치료하는 게 아니다.

빈센트의 삶과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환희는 그의 고통 속에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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