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장신대 명예교수)

새 시대는 새로운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요구한다.

서양 교회사에서 20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18-19세기의 복음주의 각성운동과 선교활동을 전제한다. 라투렛트 교회사가는 19세기를 “위대한 세기”라 하였거니와, 1815녀부터 1914년까지 100년 어간의 서양 선교 역사는 그 이전 1800년 어간의 선교를 능가하는 기독교의 확장을 일구었다. 우리 한국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이 떨러진 시기도 바로 이 19세기였다.

120년의 선교 역사를 뒤로 하고 있고, 특별히 1970-1980년대에 교회성장과 아울러 해외 선교에 큰 성과를 올렸고, 1970년대에는 군사 독재에 항거하여 인권과 민주주의를 쟁취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남북통일의 물꼬를 튼 우리 한국의 개신교는 이제 바야흐로 에큐메니칼 운동에로의 부름을 받고 있다. 1980년대에 시발된 한국 장로교 내의 일치 운동과 1990년대에 본격화된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와 한국교회 협의회 간의 교회일치 추구의 노력은 탈냉전 시대 혹은 탈 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이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바라 볼 것을 요청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서유럽과 미국의 문화유산인 모더니즘의 병폐를 반성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부익부 빈익빈의 지구적 계급화를 초래하고, 다양한 문화를 시장경제 문화로 단일화하며, 지식-정보사회의 혁명을 지구화하는 지구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사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에큐메니칼 비전을 가지고 교회 일치와 세계선교와 사회봉사에 참여해야 하고,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상황과 한국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에큐메니칼 비전을 구체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교파적인 참여가 아니라 개신교 전체가 에큐메니칼 운동에 나서야 할 때

물론, 우리 한국의 개신교는 각 교파별로 그 동안 나름대로 “세계개혁교회 연맹”, “세계감리교 총회”, “세계침례교 대회”, “세계복음주의 대회” 등에 참여하여 왔고, WCC 제2차 총회 때부터 WCC 총회에 참여하여 왔으며, “신앙과 직제”, “JPIC", 그리고 CWME와 CWM에도 참여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한국개신교 전체가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부분이 참여하여 온 것이 사실인 바, 바야흐로 이제부터는 한국의 개신교 전체가 이 운동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 개신교는 우리나라 안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내에서 지역별로 새로운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의 항목들은 이상과 같은 에큐메니즘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대적 요청에 따른 우리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신학선언으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에큐메니칼 신학 지침서에 해당한다.

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이요, 징표요, 그것을 실현시키는 도구이다.

1.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선포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선포하신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셨고, 부활 후 40일 동안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시고 약속하셨으며, 이들에게 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임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희망하던 메시아 왕국을 이 땅위에 도래시키셨고, 선포하셨으며, 장차 완성될 것을 약속하셨다. 공관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신인)과 모든 말씀들과 행동들을 통해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서 보여주셨고 도래시키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사역과 역사 속에서 성령을 통한 이 화해의 구현은 하나님 나라를 목표(telos)로 한다(칼 바르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인류에 대한 칭의와 성화와 영화롭게 됨을 성령의 역사 가운데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받아들여 의롭다함을 받고 성화의 삶을 살며 소망 가운데 영화롭게 됨을 향하여 나가는 기독교적 삶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삶이다. 신애망은 성령이 보증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담보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구현의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missio Christi)와 성령의 선교(missio Spiritus)를 통해서 이 땅 위에 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셨고, 미래에 도래할 것을 약속하셨으니, 교회는 성령 충만한 사도들에 의해서 선포되고 약속된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서 기원하였고,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희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는 곳 곧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이 다시 아버지 풍으로 돌아간 하늘에 있고, 그가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역사와 창조세계 속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완성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개인의 완성인 영생(고전 15:38-44; 15:51-53; 롬 5:21)을, 역사의 완성인 하나님 나라(고전 15:24; 눅 13:29)를, 그리고 창조세계의 완성인 새 하늘과 새 땅(계 21:1-5)을 계시하고 약속한다. 그래서 우리가 희망하는 “더 나은 본향”(히 11:16)은 정의와 공의(사 16:5; 시 72:1-2), 사랑과 평화의 세계인 동시에 죽음이 없는 생명의 세계일 것이다.

이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 새 하늘과 새 땅은 장차 은혜로 주어지는 동시에, 현재 우리가 구현해야 할 과제로서, 이미 우리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회와 세계와 창조세계를 통해서 역사 속에서 그의 나라를 실현해 가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서 이와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trinitatis)에 동참하고 있고, 동참해야 할 것이다.

Ⅱ.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한다.

2. “이미”와 “아직 아님”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사도적 직무(the apostolate)를 수행함으로써 이 하나님 나라를 역사와 창조세계 속에 앞당겨 실현해야 한다. 사도적 직무란 메이야에 의해서 위임되었고, 메시야 왕국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설교, 세례와 성만찬, 코이노니아, 교육, 사회봉사, 복음전도, 하나님의 선교, 정의와 평화와 창조세계의 보전, 그리고 교회의 일치추구를 말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세상 속으로 파송 받아 사도적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는 “하나의 보편적 교회”(una, catholica)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기원하였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고, 세례를 통하여 믿는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편입시키며, 성만찬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 축하하해야 한다. 그리고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아야 하며, 기독교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교육해야 하고, 사회봉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해야 하고,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널리 증거하고 구현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와 같은 사도적 직무를 에큐메니칼하게 수행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한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trinitatis)에의 동참에 다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이요, 징표요, 그것을 구현하는 도구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유사성과 반영과 비유(칼 바르트)요, 하나님 나라의 전조와 여명이요(한스 큉), 하나님 나라의 선취(판넨베르크와 몰트만)이다. 때문에 교회는 메시야적 공동체로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들인 인간다움과 아름다운 덕목들을 세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역사와 우주만물의 과정에 참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와 우주만물을 통해서도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파편적으로 미리 보여주신다. 그러니까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이요, 그것의 징표요, 그것을 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보편사와 우주만물 역시 그것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역사) 속에 있는 역사와 우주만물의 과정 역시 종말론적으로 완성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파편적인 상응(correspondences)이요, 부분적인 유사성(likeness)이요, 희망의 유추(analogia spei)이다(몰트만).

보편사 속에 있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 모든 인간다움과 아름다운 덕목들, 인간의 아름다운 꿈의 실현들, 그리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우주만물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새 하늘과 새 땅의 파편적인 표지판들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세계는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표지판들을 세워 나가는 일에 동참하고 있고, 동참해야 한다.

교회는 성경의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이미 세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지판들을 따라서 역사의 지평 속에 이와 같은 표지판들을 세워 나가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표지판들이 이 세상 속에 세워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바르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해야 한다.

3. 우리는 교회가 하나임을 선포한다. 삼위일체 되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 나뉠 수 없는 한 하나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인 교회는 하나이다. 우리는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광 돌리며,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에 힘쓰는 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지체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적 신앙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과 더불어 예배하고, 세례와 성만찬과 직제에 있어서 일치와 갱신을 추구하며, 나아가서 선교와 사회봉사에 참여한다.

교회는 하나가 되어 선교하고(요 17:21), 나아가서 하나님의 선교와 사회봉사에 힘써야 한다(골 1:20; 엡 1:10). 하지만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 혹은 다양성 속에서의 코이노니아를 추구한다. 우리는 “세계교회 협의회”의 “헌장”에 동의하면서, “신앙과 직제” 전통의 수렴문서들에 동의하는 모든 교회들이 교파별로, 지역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특수성 별로 나름대로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주어진 일치(a God-given unity)를 누리면서 가시적 일치를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

즉, 우리는 이미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엡 4:1-7) 주어진 일치를 힘써 지켜 나가야 하고, 사도적 신앙의 인정과 해석과 고백, 세례・성만찬・직제의 상호 인정과 호환, 그리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위한 공동의 결의기구 형성을 통해서 가시적 일치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한다.

4. 부활의 나라로서 새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생명이 넘치는 삶을 요구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10:10)라고 하셨다. 지구생명 공동체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신비로운 생명의 관계 망이다. 생명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자연환경이라고 하는 집(oikos) 속에서 살고 있다. 또한 인간의 생명 역시 이 지구생명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 차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직물 속에 살고 있는 인류 공동체 역시 상호 의존적인 생명의 관계 망이다. 특히, 창조세계와 역사는 이분 화될 수 없다. “창조세계 보전” 문제는 “정의와 평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정치의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추구해야 하고, 지구화 시대에 대응하여 경제정의 실현해야 하며, 정의와 평화를 전제하는 창조세계의 회복과 지구생명 공동체의 회복에 힘서야 한다.

그리고 이분법이 아닌 영성추구와,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 맞는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과, 폭력 극복을 위한 평화 운동, 그리고 탈냉전 시대의 남북통일의 실현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의 관계 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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