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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인권에 관한 삭제된 기억들여수 이주노동자 보호소 화재사건의 희생자를 애도하며
김진호 | 승인 2007.04.10 00:00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에 불러다가 나의 기도처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게 하리라.
그들이 나의 제단에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내가 즐겨 받으리라.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 「이사야서」 56장 7절

강제 이주의 뼈저린 기억은 귀환공동체가 형성되는 가장 핵심적인 정신적 동력이었다. 50년쯤 전 바벨론 제국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후 수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황폐한 땅에 분산 배치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곳을 개간하여 정착촌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런 강제 이주 정책은 과거 앗시리아 제국 시대에 정복지역의 인력을 송출하여 미개간지에 배치하는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면 정복지역의 저항능력은 치명적으로 감쇠될 것이고, 황무지의 개간으로 인해 제국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될 수 있었다. 이 정책은 꽤나 효용성이 컸다는 게 입증되었다. 해서 바벨론도 이런 인구 강제 이주 정책을 답습했던 것이다.

한데 이런 강제 이주의 대상은 그야말로 뼈저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먼 길을 온갖 폭력을 당하며 끌려가야 했고,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 상태에서 소도 쟁기도, 이렇다 할 장비도 없이 황무지를 개간해야 했다. 풍토병을 비롯한 온갖 질병 또한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질곡의 하나였다.

바벨론을 대체한 페르시아 제국은 이들 이주민들의 본국 귀환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유대인들도 귀환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 정복 당시 폐허가 된 이후 오랜 동안 방치됐던 그 땅에서 이들 귀환민들은 공동체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그 뼈저린 기억을 자원삼아 가까스로 성전을 세웠고, 또 폐허가 된 성벽을 재수축할 수 있었다. 하여 유대 귀환공동체는 하나의 자치적인 정치세력으로 대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점차 영역이 넓어졌다. 그리고 확대된 영역 내의 미개간지를 개간하기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주해 들어온다.

한데 유대 귀환 공동체의 정치세력화가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성전, 특히 성벽의 수축 과정은 주위 세력에게 다소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다양한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웃 족속과의 화해를 도모하기보다는 강한 적대적인 전선을 구축함으로써 귀환 유대인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키는 전략을 추구한다.

사실 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비교적 대대적인 귀환의 물결은, 우리가 아는 한, 적어도 세 차례가 있었고, 그 외에 소규모의 귀환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귀환공동체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여러 계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고, 그중 두 개의 유력한 계파의 갈등과 공조가 󰡔히브리성서󰡕(=구약성서)의 편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귀환 유대공동체는 잘 결속된 집단이 아니었고, 이러한 분열을 어떻게든 극복하는 것이 귀환공동체가 당면했던 핵심적 과제였다.

한데 이 과제를 지도층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증오의 정서를 광적으로 불러일으킴으로써 결속을 도모한 것이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증오와 동질적인 것에 대한 친화성을 극대화한 강한 정체성의 형성을 위해서 그들은 외국 세력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감정의 정치를 구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적대적 감정의 정치의 일차적인 희생자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이들 유대공동체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이에 많은 외국인들은 추방당했고, 남은 이들도 온갖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오늘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처럼 말이다.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적 계보를 강조하면서 국민을 국가 중심의 발전을 위해 총동원하는 독재시대의 오랜 담론의 정치는 그 권위주의 정부가 물러간 뒤에까지도 관성이 남아, 타인종에 대한 배타적 감성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근자에 들어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 이른바 그 열등한 타자/타인종들은 외국인 혐오증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심성이 집중된 존재들이다. 이런 이유로, 정당한 기본권조차 부여하지 않고 그로 인한 각종의 인권침해가 횡행하게 되어도, 사회적으로 이것이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 이른바 망각의 정치가 대중의 집단 심성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를 국내의 한 경제학자는 ‘잊어버림의 정치'라고 표현했고 외국의 다른 경제학자는 기억의 삭제가 ‘인종적 선입견으로 말미암은 인식적 장애’라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인식적 장애의 한 단적인 사례가 지난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다. 이곳은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으로 강제추방되기 전까지 수용되는 16개 시설 중 한 곳이다. 후배이지만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한 목회자가 수감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들은 바로 그 보호소다. 그는 몇 년 전 이곳에 수용된 이들에게 수갑이 채워져 있다는 걸 보면서 분노했고, 그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날 수용소에는 약 55명 정도의 미등록 외국인들이 수용되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불이 났다. 스프링쿨러는 설치되지조차 않았다. 도주를 예방하기 위해 몇 겹의 철문이 잠겨 있었는데, 이 문들은 일일이 열쇠로 열어야 하는 수동문이었다. 또 경비원은 단 한명 뿐이었다. 그리고 보호소 내장은 가연성 소재로 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5년 2월에 이 여수보호소는 이미 한번 화재를 경험한 곳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시설은 수감자의 탈출을 막기 위한 기초설비만 되어 있을 뿐 안전관리설비는 전무했던 것이다. 수용자 시설에 대한 유엔의 보호규정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는 안전을 위한 국내법의 준수조차도 전무했던 법의 사각지대였다.

2005년 화재 직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국제 엠네스티에서 조사단을 파견하여 다양한 항의와 사회적 의제화를 시도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거의 들리지조차 않는 삭제된 기억의 공간, 기억의 예외 공간이 바로 이곳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보호 아니 수감시설이었던 것이다.

결국 2월 11일 화재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리고 17명이 화상 등 상해를 당했다. 수감자의 거의 절반이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것이다. 한데 이것도 공식적인 발표에서만 그렇다. 증언에 의하면 생존자들 중 상당수가 사고 후의 심한 스트레스 증후를 보이고 있고, 일부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상태에 놓여 있어서 긴급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한 책임 있는 치료를 방기하고 있다. 심지어 생존자 중 22명은 이미 출국조치가 되었고, 나머지는 정밀검사도 없이 다른 보호시설로 이송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적절한 배상도, 철저한 수사도, 또한 보호시설의 안전 설비조치도,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보완되지 않은 상태인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은 국제엠네스티로부터 여러 차례 항의를 받은 바 있다. 즉 이 사태가 우연한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관된 방치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데 문제는 이렇게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민사회의 무관심에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대중매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부조단체로의 지정기부금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건으로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이 화재 사건의 경우, 대중매체를 통해 비교적 많이 소개된 편이지만, 사회적 의제로 될 만큼 시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다. 아니 실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여수에 있는 그 후배 목회자의 경고성 전화, ‘기독교 지식인들은 뭐하시오’라는 항의를 받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해서 앞서 언급했듯이, 잊어버림의 정치의 주체는 정부만도 기업만도 아닌, 우리 자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범주적인 편견을 통해 기억의 삭제라는 인식적 장애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온통 한민족의 위대한 기억을 되새긴다고 호들갑떨면서 드라마 <주몽>을 시청하고, ‘삼족오’ 이미지가 새겨진 각종 장신구를 몸에 두르고 다녔다.

한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유대공동체의 배타성에 대해 󰡔히브리성서󰡕에 나오는 한 익명의 예언자는 격렬하게 경고한다. 서두에 인용된 「이사야서」의 본문은 바로 그의 이러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대인의 배타적이고 종족적인 정체성의 장소였던 성전을 보면서, 예언자는 야훼께서 “나의 집은 뭇 백성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족적 경계를 철폐하는 것이다. 유대종족만의 권리이자 의무인 성전 활동조차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기득권도 그들에게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유대공동체의 시민권에 관한 재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예언자는 저들 외국인을 ‘개종한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유대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경계나 차별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이 ‘외국인’은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유대에 들어온 약한 자들이고, 바로 그 생존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개종유대인이 되고자 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즉 이들의 개종은 종교적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마치 오늘 우리 시대에 한국 국적을 갖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민족의 이익을 위해 살려고 국적 이동을 하려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도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고,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바로 이런 얘기가 위의 성서 본문 속에 함축된 의미인 것이다.

요컨대 예언자는 유대귀환공동체 재건기에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이들의 인권을 위해 야훼의 이름으로 투쟁하고 있다. 유대 당국의 자민족 중심주의 정치에 대항해서 말이다. 유대 엘리트층의 선민신학에 대항해서 말이다. 모든 유대인들의 편견, 그 인습적 기억에 맞서서 말이다. 그리고 이 성서 텍스트를 읽는 우리의 무감각, 삭제된 기억의 인식적 장애를 꾸짖으며 각성하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kjh5594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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