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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행복하라낡은 탈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박철 | 승인 2005.10.15 00:00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 우리는 열 손가락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행복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불행을 헤아리는 데만 손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많은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눈을 들어 주위를 다시 한번 살펴보라.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행복을 손가락으로 찬찬히 하나하나 꼽아가며 헤아려 보라. -박철 산문집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뜨인돌) 22쪽.
*이 글은 모 잡지사와의 인터뷰 전문기사 내용임을 전제합니다.


질문 : 현대인들은 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요?

박철 :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여유보다는 속도를 인간중심의 사고보다는 기술과 경제중심의 판단이 지배하고 있지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아니겠습니까? 소위 대량생산이라는 사회전반에 걸친 시스템이 빠른 속도(speed)와 연결되어 있지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술 집약형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도전에 밀리면 살아남을 수 없지 않겠어요. 이런 사회적 흐름의 부작용이 마치 '빠름'이 미덕인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늘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쳐질까봐 불안해하며 사는 게 현대인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바쁘다'는 말과 '부지런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지만, 지금 우리는 대단히 바쁘게 사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6.25전쟁 이후 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비극과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면서 몇 차례 쿠데타 정권이 연 이어 등장하고 저들마다 경제개발정책을 들고 나섰지요. 소위 개발이데올로기의 핵심이라는 게 일단 잘 살고보자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자신들의 부실한 정권안보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개발이라는 채찍을 휘둘렀던 것이지요.

   
예를 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10년의 걸려야 할 것을 7년 만에 완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3년이 단축되어진 시간의 군사정권의 치적(노하우)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대다수 국민들 대다수의 삶의 리듬이 무조건 "빨리빨리"에 길들여졌다고 할까요? 무엇이든지 빨리 해치워야 직성에 풀리게끔 되었지요.

질문 : 느리게 살기 운동과 펼치게 된 동기와 호응도, 앞으로 계획은 어떠신지요?

박철 : 처음부터 거창하게 느리게 살기 운동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런 위인이 못 됩니다. 제가 평소 생각이 급하다니 실수도 많고, 또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40살 불혹을 넘으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게 살자. 내 삶을 반듯하게 정리하면서 살자. 좀 헐겁게 살자. 그래서 산을 주로 찾았지요. 숲속에 들어가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사라지고 내 영혼이 정화 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자연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연이 주는 영성에 깊이 빠져들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최근 제가 자연을 통해 발견한 삶의 표지가 '느릿느릿'이었어요. 프랑스의 철학자 삐에르 쌍소도 <느리게 산다는 것의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서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지요. 느림은 절대로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인생을 바로 보자는 의지에요. 자연히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하루의 느낌을 글로 적게 되었어요.

2년 전에 <느릿느릿 함께 하는이야기>(http://slowslow.org)홈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 신문과 몇 군데 잡지에 느릿느릿 사는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비슷한 생각이나 느낌을 갖고 계신 분들이 제 글을 읽고 찾아오게 되었어요. 주로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만나고 필요에 따라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주로 연령층은 30대 이상입니다. 여기에 참석하시는 분의 직업군도 다양하지요. 요즘 세상에 남의 이야기를 가슴을 열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느릿느릿에 참여하는 분들끼리는 느릿느릿 가족이라고 합니다. 느릿느릿을 통한 만남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지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좀 더 느릿느릿이라는 개념을 우리 실정에 맞게 이론화 하는 것이고, 작은 규모의 느릿느릿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질문 : 목사님 스스로, 느림의 삶을 어떻게 실천하고 계시지요?

박철 : 중세 수도사들은 '스타티오'라는 훈련을 했다고 해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기존에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지요. 한 가지 한 가지 여유를 갖는 것, 책을 읽은 후 잠시 내용에 대해 묵상하거나, 전화를 하기 전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등…. 우리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기를 보지 않으면 '빨리'를 외치는 세상의 파도 속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어요. 느려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일, 자연이나 사물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 저녁에 가족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면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일 등, 그렇다고 제가 이런 일들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질문 : 정선과 남양, 교동도, 부산 등 목회지를 자주 옮기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박철 : 글쎄요. 장돌뱅이 기질이 있는 모양입니다. 실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이삿짐 싸는 것이고 이사 가는 것입니다. 작년 부산으로 오기까지 시골생활만 20년을 했어요. 20년 동안 세 교회에 머물렀는데 그래도 역대 담임자들 중에는 제가 제일 오래 있었어요. 농촌목회 20년 만에 부산으로 오기까지 내 삶에 이렇다할만한 불만이나 유감이 없었어요. 중간에 제도권 목회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은 여러 번 했어요.

그러나 지금 부산에서 살기까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이끄심'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신학교 시절 내가 발견한 삶의 표지가 있었는데 '작은 것이 아름답다'였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발견한 하느님은 작은 자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지요. 만날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노랠 했더니. 큰 교회에서는 한 번도 나를 오라고 하지 않더라고요. 지금 제가 섬기고 있는 부산 좋은나무교회는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작은 교회에요.

처음 부임해서 모든 교우들마다 가정방문을 했는데 서너 사람이 앉으면 더 이상 앉을 수 없는 작은 집들이예요. 70년대 서울 달동네를 생각하면 맞을 거예요. 그런데 모든 교우들 얼굴이 너무 행복하고 밝아요. 모두 가난하고 고단하게 살면서도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 참 부끄러웠어요. 제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노래했더니 하느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모양이라고 했더니, 그럼 지금부터 '큰 것이 아름답다'라고 그렇게 하라고 어느 권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질문 : 무정처의 삶은 생활에도 어려움이 따를 텐데. 경제적인 측면은 어떠신지요?

박철 :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요. 내가 어디든지 붙박이로 살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정선에 있건, 교동에 있건, 부산에 있건 시간과 공간적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 서울에는 개발 붐을 타고 개척교회 바람이 불었어요. 한밤중 제가 살던 집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수십 개의 빨간 십자가가 보였지요. 그래서 막연하지만 제가 목회를 하게 되면 농촌 목회할 것이라고 결심했어요. 그 때 결심이 20년을 농촌에 있게 했어요.

   
그럼 지금 농촌을 떠나 도시로 왔으니 농촌을 배반한 것이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혹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40불혹에 접어들면서 더럭 겁이 났어요. 늘 마음속에 주문처럼 외웠던 것이 노자의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라는 경구였어요. 지금 제가 그리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물처럼 살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돈을 빌리려 다닐 만큼 궁색하지도 않아요.

목회 20년 동안 백화점을 딱 한번 갔었지요. 부산으로 이사 와서 필요한 물건이 있어 국제시장을 갔었는데 시골에서만 20년을 살다보니 물건을 흥정하는 방법을 몰라 당황했습니다. 물건 값을 깎아야 되는 건지, 부르는 데로 다 주어야 하는 건지, 그래서 물건을 하나도 사지 못하고 그냥 왔습니다. 지금 우리 집 식구들이 입고 있는 옷의 90%는 바자회나 남들한테 얻어 입은 것이 전부이지요. 그래도 옷장에는 죽을 때까지 입어도 못다 입을 옷이 서너 벌 되고 너무 부자로 사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질문 : 목사, 시인, 농사꾼이라는 목사님 이력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지요.

박철 : 제가 신학교 다닐 때부터 교회에서 주는 밥을 먹고 선생노릇 했으니 25년쯤 되었네요. 저는 목회를 운동론적인 삶으로 이해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실천(praxis)이 없으면 목사의 삶이 자칫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목사의 삶은 영혼의 돌봄과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놓고 생각하면 솔직히 선생 노릇을 잘 못했습니다. 낙제점수를 면치 못할 겁니다. 그래도 하느님이 저를 잘 봐주셔서 늘 제 옆에 좋은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시 쓰기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남양에서 목회 할 때 수원지역 작가가회의 소속 문인들과 동인활동을 했지요, 40살이 되던 해<어느 자유인의 고백>이라는 시집을 냈었는데, 창피해서 혼났어요. 시에 대해 조금 눈이 떠진 다음 제 시를 읽어보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글이라고 하는 것이 한번 책으로 만들어지면 마음에 안 들어도 빼도 박도 하지 못하지요.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민족작가회의>에서 신경림, 이시영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매주 만났습니다. 혹독한 문학수업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생각이 좀 더 공부를 하고 나의 내면을 다듬은 후, 농익은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길 어느 날 갑자기 시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지만 그렇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어쨌든 문학도 제 삶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농촌에서 20년을 살았으니 농사꾼 시늉을 냈을 뿐이지 농사꾼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집 둘째 아들 녀석에게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농민이라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이 평소의 저의 생각을 읽고 있었던 거예요. 저 역시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이 땅의 농민들입니다.

질문 : 청소년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시지요?

박철 :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하는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서로 책임을 안지고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사회로 가고 있어요. 큰 문제입니다. 인간이 가야할 길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릅니다. 책임은 땀과 노동을 동반하지요. 땀과 노동을 싫어하는 인간은 무책임한 인간입니다. 청소년들이 책상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공부를 위한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한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질문 : 요즘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시는지요?

박철 : 올 봄 비노바 바베(Vinoba Vhave)가 그의 노년에 쓴 "버리고 행복하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지요. 우리네 마음이란 참 신기하지요. 빈 마음을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한 없이 아름답고 따뜻해요. 정말 살만하게 느껴져요. 그러나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면 세상이 험하고 삭막하고 사는 게 고달프고 힘들고 지치게 하지요.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낡고 고독한 생각에서 낡은 생활습관에서 떠나라는 것이지요. 그 낡은 넝마를 벗어 던지면 참 사는 게 가볍고 좋지요. 그렇지 않고 눌러 앉아서 세상 흐름대로 살다보면 빛깔도 없어지고 자기 삶도 없어집니다.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남의 장단에 의해서 마치 삶이 표류 당하는 것처럼 되어버리지요.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예요. 낡은 탈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요.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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