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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윤리를 좋아하셨을까?배아 줄기 세포 연구와 기독교 윤리
오마이갓 | 승인 2005.07.05 00:00

 

 이 정 훈

 

6월 9일 오후 2시 30분부터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는 KNCC 산하 교회와 사회 위원회 주최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기독교 윤리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교회와 사회 위원회 서기를 맡고 계시는 김한승 성공회 신부님의 사회로 동아대 인문학부의 곽만연 교수님과 감신대 박충구 신학과 교수님의 강연과 토론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주최측의 배련인 것으로 보이는 점은, 곽만연 교수님은 동양철학회, 국민윤리학과, 불교학회, 인도 철학회 등의 이사를 맡고 있으시며, 또한 대한불교주계정 생명윤리학회 연구원이시라는 점과, 박충구 교수님 한국 기독교 윤리학회 회장이시라는 점입니다. 결국 불교와 기독교에 몸 담고 계신 학자들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담이자만, 이런 토론회를 지켜 보면서 사회적 이슈도 이슈이고 중요성도 중요성이지만, 이 주제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강박 관념이라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강당에서 참석한 분들은 어림잡아도 40~50명은 족히 된다는 것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예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정작 배아 줄기 세포가 과연 어떤 것이지에 대해 상식적인 수준에서라도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시민들 중에 과연 몇 %나 될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해 봤습니다!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서 곽만연 교수님은 “배아 복제에 대한 윤리학적 고찰”에 대한 주제의 강연이었습니다. 38쪽에 달하는 거대한 발제물은 일단 양에서 모든 참석한 이들을 압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대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현저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핵심적인 사안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세포 분열이 일어나기 저까지의 14일까지의 기간에 해당되는 세포에 대해 이 세포 조차 사람으로 인정할 것이냐 인정하지 않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배아 줄기 세포 연구 찬성론자들의 주요 근거가 된다는 점은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되돌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출발점은 어디서부터인가 하는 점이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그저 세포 덩어리로 볼 것인가? 그 세포 속에 들어있는 생명을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아니 그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답다라고 할 수 있는 정신의 소유 문제까지 외연이 넓혀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박충구 교수는 시종일관 기독교 윤리라는 잣대로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절대불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서론 부분에서 “나는 황 박사의 연구가 ‘놀라운 생명공학적 개갗가 아니라 ‘비정한 과학주의의 개갗임을 밝힐 것이다. 윤리 없는 과학주의의 오류를 피하기 위하여 최근 윤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의 연구 동향과 과제를 언급함으로써 황 박사의 연구 방법이 현재, 유일한 대안이 ‘아직’ 아님을 밝히고자 한다.”고 명시적으로 썼습니다. 이러한 비정한 과학주의는 상업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연구에 암울한 미래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금지하고 있는 여러 각국들의 예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언뜻 듣기에 두 강연자의 입장이 극을 달리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곽만연 교수님이나 박충구 교수님 모두는 “개체 복제”는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셨습니다. 즉 개체가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치료라는 대승적 목적을 위해서는 어렵지만 허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였습니다.

황 교수의 연구는 분명히 많은 윤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고, 앞으로 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면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강연들을 들으면서 윤리라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윤리라는 것을 아주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해 보자면, 인간 행위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 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인간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기독교 윤리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이 따르고 지켜야 할 행동 규범 쯤 될 수 있겠지요. 즉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잘 지켜나갈 것이냐는 문제로 집중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삶에 근거한 윤리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입니다.

그 근본 출발점이 다르지만 일반 윤리든 기독교 윤리이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한 사회 혹은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인 장치들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체제 유지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회가 되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되었든 간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규범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윤리의 일반적 속성을 예수님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강연 듣는 내내 제 머리 속에 상상했던 것은 성서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 앓던 여인의 만지심을 용서하시고, 어린 아이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사셨던 모습 말입니다. 당시 그 사회를 유지 하기 위해 굳게 지키고 있던 율법의 외피를 사정없이 벗겨내셨던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그거야 율법이 잘못되었으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실천의 가능성과 쉽고 어려움을 떠나 율법은 좋든 싫든 그 사회의 종교적이자 윤리적 잣대였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비윤리적인 분이 아니라 반 윤리적인 분이 아니셨나 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면 사람을 들들 옭아 맸던 윤리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만지시고 싸매시고 고치셨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윤리 때문에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그 당시 지식인들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사셨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분들의 질문과 의견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두 강연자들의 주고 받기 식 진행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 것입니다. 상대방의 강연을 들으며 자신의 부족했던 점과 서로에게 향한 지적들이 오히려 전면에 부각되어 토론회라는 제목이 무색한 시간이 아니었나 했습니다. 또한 박충구 감신대 교수의 의견이 마치 전체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저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기야 아직 어느 교단의 이름으로도 구체적인 성명서가 발표되지 않은 이 상황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 하리라 생각하지만, 기독교 내에서도 더 많은 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의견들이 다양하게 있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번 토론회가 그런 일들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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