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밀양'의 포스터

비극은 외적 비극과 내적 비극이 있다. 물론 외적 비극이 더 비극적인 상황을 몰고 오지만, 문학에서는 내적 비극을 비극의 완성으로 본다. 섹스피어의 4대 비극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비극이 내적 비극이 아닌, 가문간의 싸움이라는 외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햄릿>의 우유뷰단함이나, <오델로>의 질투, <리어왕>의 독선과 <멕베드>의 야망은 내적 비극의 극치라고 볼 수 있으며 영화 밀양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학적 깊이가 떨어지는 외적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적 비극이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또 다른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사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원작인 이청준의 소설을 읽으며 ‘1988년도에 소설 <벌레이야기>를 읽으면서 5·18광주민주항쟁을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용서할 수조차 없도록 억압당하는 조건’을 생각하며 <밀양>이라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것이 이 영화에서는 ‘신의 용서’라는 그럴듯한 은유를 집어넣어 억압당하는 조건을 비꼬았지만……

끔찍한 것은 현실은 27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피해입은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이상한 기억상실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홍보사에서 떠들듯 멜로영화도 아니고, 신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아주 특별한 영화도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 영화는 감독의 장관 생활 이후, 현실 정치에서 느꼈던 회의감의 표출이며 억압받은 이를 ‘신애’(信愛)라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메타포로 설정하고, 이제 억압당하는 조건을 종교적 이유로 바꾼 현실 인식의 날카로운 풍자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신애의 현재의 억압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상징되는 이들을 통해 신애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인 것이다.

1. 신애의 과거, 유괴범의 딸

먼저 우리는 신애의 과거를, 아니 우리들의 과거를 유괴범의 딸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동네 오빠들에게 맞고, 마침내 아버지의 유괴라는 범죄에 공범이 되고 마는, 이 땅의 어린 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8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이고, 영화 <박하사탕>에서 그토록 주인공이 돌아갈 수 없었던 잃어버린 순수인 것이다.

2. 신애의 미래, 종찬의 어머니

그렇다면 신애의 미래는 어떤가? 영화에 존재감조차 없는 종찬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어쩌면 신애의 미래이다. 유괴되지 않고 아들을 종찬의 나이만큼 키운 후, 신애의 모습이란 말이다. 아들에게 귀찮은 존재, 그렇지만 아들이 밥 먹었는지를 끝까지 물어보는 이러한 어머니로 표상되는 신애의 미래는 <오아시스>의 ‘한공주’와 ‘홍동주’의 현재와도 같은 것이다.

3. 신애의 현재와 우리의 상황

그렇다면 이제 신애의 현재를 살펴보자.
비밀의 빛(secret sunshine) 밀양으로 진입하는 차가 고장이 나고, 그곳에서 아들은 유괴되어 죽고, 자기 스타일이 아닌 남자는 계속 생활에 간섭한다. 2007년 6월 9일 현재, 참여 정부의 현재를 이렇게 표현하는 감독의 기지가 놀랍다. 그 밀양은 종찬의 소개대로 ‘경기가 좋지 않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도시인데, 영화의 마지막, 신애의 동생에게 밀양을 소개하는 종찬의 변화가 압권이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요”

이러한 자괴감은 지금 27년 전 광주와 20년 전 전국에서 대항하였던 전두환과 노태우의 분신인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서글픈 우리 현실을 잘 반영한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하였단 말인가? 아니 상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신애보다 더한 절망을 되새겨 본다.

6월 항쟁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분배와 복지보다 성장을 외치며 민주화보다 산업화를 외치고 있는, 나아가 ‘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못 쳐도 다 노무현 탓’(노무현탓놀이)이라는, 그래서 ‘민주화서 선진화로 시대정신 바뀌어야’(신지호, 김영환, 구해우)한다는 6월 항쟁의 당시 주역들에게 ‘비밀의 빛’은 어디 있을까? 광주에서 밀양으로 도시는 바뀌었지만, 나는 신애의 말을 듣고 가게의 인테리어를 바꾸었던 옆집 아주머니와 이진경의 다음의 말에서 다중(multitude)과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된다.

“80년대 진보운동이 국가 전체를 바꾸는 대규모 혁명을 꿈꾸었다면, 지금 나는 비(非)국가 단위의 소규모 공동체 운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공동체가 생겨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세상을 꿈꾸는 거죠?”

우리들의 비밀스러운 빛이 소규모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감독의 마지막 장면을 통한 메시지는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야 말로 새로운 시작임을 알려준다.

최병학  hak99@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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