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선만아. 네가 지금 거기에 왜 있니?"

밤에 퇴근하고 온 아내가 처형(이 글 주인공의 엄마)에게 전화하더니 깜짝 놀라며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아내가 전화한 곳은 '논산 훈련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조카의 집인 게다. 아내가 처형에게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으니 놀랄밖에.

이렇게 해서 조카 선만이(20)가 들려준 그동안의 군대 행적이 담긴 요절복통 스토리의 내막은 이렇다.

▲ 훈련소 입소 하루 전에 더아모의집 마당에서 아내가 분명히 이발까지 했다. 그런데...... ⓒ 송상호 기자

조카는 분명 지난 5월 28일 오후 1시경에 논산훈련소에 입소를 했다. 내가 동행하여 데려다 주고 왔으니 의심할 것도 없다. 우리 더아모 15인승에 태워 논산훈련소 안까지 들어가 데려다 주고 온 게다. 이제 '더아모의 집'에서 국가에게 조카를 인수인계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더아모의 집' 아이들의 맏형 노릇을 아주 따스하게 잘해 주었던 조카였다.

그런 후 우리는 모두 며칠 동안 그가 입소해서 잘 생활해주리라 믿고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문제는 입소 5일째 터진 게다. 바로 신체검사를 마치고 난 현장에서였단다.

"어이, 훈련병. 체중이 장난이 아냐."
"예~~~"
"자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 '귀가조치'야. 집에 가야겠어."

그랬다. 입소한 훈련병 중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귀가 조치'를 받은 것이다. 조카의 '귀가 사유'는 체중 초과였다. 군에 자원입대한 조카는 훈련소 바깥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는 가까스로 '입대 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그동안 체중이 5kg이나 더 늘어서 체중초과가 된 것이다(여기서 조카의 체중은 1급 국가기밀이라 밝히지 않겠다). 체중 상한선에서 까딱까딱한다는 것을 조카는 몰랐던 게다. 그런 상황에서 조카가 내뱉은 말이 또 진국이다.

"저, 교관님. 그래도 저는 군대 생활하고 싶습니다."
"생각은 갸륵하지만, 그건 안 되지. 그러다가 우리가 법적으로 걸린다니까."
"그래도 교관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조카가 군대를 굳이 고집하는 것은 이왕 갔다 올 군대라면 하루라도 빨리 갔다 오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원입대한 것이다. 그리고 좀 심하게 건강한(?) 체중을 군대의 힘(?)을 빌어 다이어트도 해보려는 속셈도 있었던 게다. 그러니 조카 입장에서도 쉽게 포기가 안 되었나 보다.

이렇게 또 다시 '재신체검사 통보'가 날아올 때까지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사연을 들은 아내와 나는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며 한참을 웃을 수밖에.

▲ 훈련소 입소 당일에 조카와 함께 훈련소 내부에 있는 입소대대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자료가 있을까. ⓒ 송상호 기자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 다음날 조카가 우리 '더아모의 집'에 놀러 와서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자기 친구들 몇 명에게 전화를 하며 '구라'를 치는 것이다.

"친구야. 나다."
"야. 너 어떻게 지금 전화를 하냐?"
"나. 탈영했다."
"진짜로?"

이렇게 전화하고 끊으니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 조카는 그게 재미있어서 그 '구라질'을 몇 군데나 해댄다. 참 세상에 저렇게 속 좋은 녀석도 있을까 싶다.

그것보다 더 웃긴 거는 나와 아내, 그리고 더아모의 동생들과 밥 먹으면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대한민국 남자들 둘 이상 모이면 꼭 단골로 등장한다는 바로 그 전설적인 '군대 이야기' 말이다.

하루종일 앉아서 멍청하게 벽만 보고 있었는데 힘들었다는 둥. 방충망 뜯어서 탈영하다가 붙잡힌 훈련병 이야기를 들었다는 둥. 거짓으로 아픈 체하여 신체검사를 통과한 후 '귀가 조치'를 받은 훈련병이 너무 좋아하며 날뛰다가 교관에게 들킨 이야기를 '훈련소 홍보용 책자'에서 읽었다는 둥.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아모의 동생들에게 들려주는 조카를 보고 있으니 진상이 따로 없다 싶다. 군대 5일 갔다가 온 녀석이 저리도 할 말이 많은데, 군대를 3년씩이나 갔다 온 사람은 얼마나 말이 많을까 싶어 아내와 나는 그저 웃기만 한다.

▲ 조카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더아모의집 거실에 앉아서 신나게 가요를 부르고 있다. 나참 기가 막혀서.^^ ⓒ 송상호 기자

그나저나 당장 문제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입소 하루 전에 조카의 이발을 내 아내가 해주었는데, 심하게 짧게 해 준 것이다. 그러니까 거의 '준삭발'이었던 게다.

"야. 너 그렇게 머리카락이 짧으니 모자 쓰고다녀야겠다."
"괜찮아요. 그냥 다니죠 뭐."
"꼭 스님 머리 같은데 괜찮겠냐?"
"제가 언제 외모에 신경 쓰는 거 보셨어요?"

아이고 내가 참 못 말린다 못 말려. 조카의 넉살에 두 손 두 발 다 든다 들어. 그러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더아모의 동생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도 하고 '가요반주기'용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기도 하는 조카를 보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 정도 넉살과 생명력이라면 시베리아 벌판에 떨어뜨려 놓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여유 있게 살 녀석이라는 생각 때문에 또 한 번 미소 짓게 된다는 걸 조카는 알까.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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