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훈 ⓒ 이정훈/에큐메니안

어려서부터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나로서는 공상을 하는 시간이 가장 자유롭게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곤 했다. 공상을 하다보면 내게 불가능하게 보이던 것이 눈앞에 훤히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동네 단칸방 한 구석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캄캄함을 도구 삼아 공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꿈과 공상이 많은 청년들

이 버릇은 나이가 들어 이젠 “어른이 왜 그래?” 하는 말을 듣는 요즘에도 버리지 못하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이런 공상은 나만이 가진 것은 아닐 것 같다. 누구나 그런 공상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나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퍽퍽한 세상을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꿈과 공상은 나이가 젊을수록 많이 꿈꾸고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덜 들어 철이 없을 그런 나이에 말이다. 그럴수록 꿈과 공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도 많은 것이 젊은이들이다. 그러면서 철이 들고 나이가 든다고들 한다.

그런데 젊은 치기로 그런 것이 아니라 꿈과 공상이 여전히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철이 덜 든 놈? 철모르는 놈?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놈? 온실 속의 화초? …

"하나님 나라는 마치..."

신약성서를 읽다보면 예수님의 음성이 가장 잘 보존된 장르(?)는 예수님의 비유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북미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이야기가 아직 회자되고 있는 요즘은 그마저도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다. 신학계의 상황이야 어찌되었던 신약성서의 예수님 비유를 읽고 있노라면 예수님께서 내 앞에서 조곤조곤히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그 예수님의 비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려는 무식하지만 용감한 행동에서 나온 말을 하자면 ‘하나님 나라’라고들 한다. 예수님께서 버릇처럼 “하나님 나라는 마캇라고 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본받아 말이다. 정말 그런지는 예수님을 만나서 물어 볼 일이다.

그렇지만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했다고 하면 김창락 선생님의 무수한 타액을 받으며 꾸지람 들을 일이지만, 그 중 몇 개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어떤 실재로 고정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묘한 실재이구나!” 하는 것 말이다. 실재는 실재인데 딱 고정되지 않는 실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끊임없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 견주어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딱 그거야!” 하고 말한다면 비유 자체를 오해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니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어떤 실재에 고정하고픈 유혹을

나부터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엇인가 아리까리 한 상태를 즐겨하지 않는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을 선호한다. 물론 선호도의 문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앞에 드러나는 현상이나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떤 무엇인가에 고정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아니 어쩌면 한계를 가진 사람이 당연지사 가질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구약성서 창세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그리스도교 교회 신학의 역사는 무수한 논쟁을 해왔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의견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그런데 창세기 5:3을 보면 “아담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고 한 것은 부자간의 외모의 유사성을 형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구절이다.

구약학자 궁켈(H. Gunkel)과 폰 라트(G. von Rad)는 “인간의 경이로운 신체적인 외관도 하나님의 형상의 영역에서 제외될 수 없다”(G von Rad,『창세기』,國際聖書註釋, 박재순 옮김[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81], p. 61)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영혼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주장에 반기를 드는 해석이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슈미트(W. H. Schimdt)는 “이집트 왕조 신학적인 배경에서 볼 때 신의 형상은 신의 통치의 대리와 신의 영광의 반사를 의미한다”(W. H. Schmidt, Die Schöpfungsgeschichte der Pristerschrift, Neukirche, 2 Auf, p. 139)고 했다.

이에 대해 본회퍼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드러나는 “인간이 하나님과 비슷하다는 이 유사성은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가 아니고 ‘관계의 유비’(analogia relationis)”(D. Bonhoeffer,『창조․타락․유혹』, 문희석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1], p. 53)라고 했다. 바르트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인간의 존재는 관계적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자신과의 계약 관계성 속에 들어올 수 있는 파트너로서 계획하고 만드신다.”(K. Barth, Church Dogmatics III/2, Eng. trans., G. W. Bromiley, Edinburgh: T. and T. Clark, 1955, p. 185.)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동료 인간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도록 지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성서학자들과는 달리 본회퍼와 바르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이 땅의 딱 고정된 실재로 정의될 수 없음을 전한다. 이것저것 뭐라고 말하고 싶지만 딱히 그럴 수 없다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과 나, 너와 나 이렇게 어울려 사는 요 모양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일게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 무엇엔가 딱 고정하고 싶은 유혹도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해방된 이스라엘 공동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된 원시 교회 공동체, 교황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로마 카톨릭, ‘오직 믿음으로’만을 외치며 박차고 나온 프로테스탄트 교회…”

혹은 “독재적 군사 정권에서 해방된 민주주의 국가이거나 유래 없는 자본주의의 폭압에서 해방된 평등 세상”으로 말해왔다. 특히나 세상의 불의와 변혁된 세상을 꿈꿔 온 진보적 신앙과 신학을 가진 우리들은 더더군다나 이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우리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의 어떤 체제로 고정하고픈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동분서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군가 하나님 나라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로 남았으면

‘메타 담론’(Meta Discourse)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쪼갤 수 없거나, 세상의 모든 것을 쪼갤 수 있는 담론”으로 이해하곤 한다. 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메타 담론으로 이해한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난 그렇게 이해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정당, 정치 체제 혹은 국가를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고정시키면 비유를 비유 아니게 해석하는 우(愚)가 될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영원히 아웃사이더로 남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무기삼아 꿈을 꾸고, 욕을 헤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청년 아닐까 한다. 열심히 꿈을 꾸며 공상하는 청년 말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