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과 8월의 민족통일대축전 및 민족대축전은 우리 민족 끼리의 기치 아래 그 동안 진행되어오던 민족의 화해와 교류, 통일운동에 새로운 단계를 열어젖혔다. 6.15공동선언 채택 5년 만에 민간과 정부가 함께하는 본격적인 통일행사와 뜨거운 통일 분위기가 펼쳐졌다.

그 뒤에는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에 4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한반도에서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평화와 안정, 번영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쳐났다. 그때만 해도 양식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9월 중순이후 10월말까지 정세의 흐름은 평화지향세력의 뜻대로만 되어가지 않았다. 9월 중순, 맥아더 동상이전 투쟁에 나선 진보적 운동권은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엉뚱하게도 보수세력의 결집이라는 역풍을 맞이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논란의 주변에 머물러 있던 강정구교수의 기고글에 대한 논란이 검찰의 사법처리 문제를 앞두고 전면에 드러나서 극심한 이념논쟁에 휘말려 들어갔고, 그 파고는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놓고 검찰총장의 사퇴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구국운동' 천명에서 최절정에 달했다.

▲ 최근 의원직이 박탈된 전 조승수 의원 홈페이지

또한 민주노동당의 조승수 의원은 사법부의 형평성을 잃은 판단에 의해 의원직을 상실당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승규 민주노동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순식간에 '날라 갔다'. 민주노총의 파동은 10.26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의 패배로 이어지면서 민주노동당의 지도부 또한 '날라갔다.'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도부가 날라간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진보적인 운동권의 두 지도부와 개혁을 표방하고 집권한 여당의 지도부가 동시적으로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고, 우리 사회는 공포스러운 이념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내년 서울시장 후보에 서로 나오는 논공행상의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참으로 두 달 여 시간이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이 이상스런 상황으로 빠져버리게 되었다.

6월에서 8월의 기간이 수구보수세력에게 무언가 홀린 것 같은 시간이었다면, 9월과 10월은 평화와 진보통일 세력에게 무언가 홀린 것 같은 시간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진보세력의 힘 대결은 이렇게 1승1패(?)씩 나누어 가지며 연말을 향해 가고 있다.

10.26재보선 이후에 다소간의 정신적 안정과 차분한 성찰의 과정을 거치며 이렇게 전개된 상황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 사회의 보수 기득권세력이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와통일, 개혁과 진보세력은 이 사회와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세력이다. 그들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상징적 표현이 소위 386세대이다. 그들은 4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의 젊고 힘있는 세대를 이루면서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에 중심세력이 될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구조를 지지하고,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며, 사회의 변화와 경제번영을 추구한다.

이런 시대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 노무현대통령의 당선과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획득, 그리고 진보정당의 약진이다. 그 뒤를 받치고 있는 X세대 즉 3526세대는 개인주의적 특성만 제외하면 합리적 판단과 진보적 성향 등을 보이며 386세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보수 집회장에서 깨구리 군복에 빨간 마후라를 쓰고 험한 분위기 잡는 늙은 아저씨들의 위세(?)는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다. 가스통 옆에 차고 검은 군복으로 분위기 잡는 북파 공작원들은 공포스럽다기 보다 만용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만큼 세상이 변했다.

게다가 6자회담에서는 한반도의 냉전분단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외교적인 대회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개혁과 진보세력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던가?
6월에서 8월까지 그리고 6자공동성명으로 잠깐 교만한 사이에 미국과 보수수구세력들은 절치부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냉전과 이념의 장검을 휘둘러 여럿 피 흘릴 그때를 기다리며 칼을 갈고 또 갈아왔던 것 같다. 한나라당, 검찰, 사법부, 보수언론... 그리고 그들 뒤의 검은 세력... 그들이 춘 검무 끝에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의 쟁쟁한 지도부들의 모가지가 날라 갔다. 하긴 그들은 구국의 결단으로 칼을 휘둘렀을테니 그 정도는 돼야 나라가 구해질 것이다.

수구보수 기득권세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무기는 '냉전이념논쟁'이다. 이념논쟁을 야기하면 수구보수세력은 남는 장사를 하고, 개혁평화진보세력은 밑지는 장사를 한다. 맥아더, 강정구의 이념논쟁 위에 민주노총의 부패가 얹혔으니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여기에 진보세력과 개혁세력내의 정파 갈등이 내연하고 있다. 이렇게 싸우면 백전백패이다. 교만과 분열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이 이번 일을 겪으며 피로 얻은 교훈이다. 그러기에 평화세력은 뱀같은 지혜와 강철 같은 단결이 필요하다.

둘째 그럼에도 한반도와 우리민족은 여전히 평화지향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5차 6자회담이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지난 4차회담의 6자공동성명이 '말대 말' 공약이었다면 이제는 '행동대 행동'의 일정표가 짜여질 것이다. 미국과 북을 중심으로 6자가 자기대로 전략을 갖고 '네가 먼저해라' 요구하면서 순서를 짜는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할 것이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겠지만 결국 '동시에 하자'면서 타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으로 한반도의 총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그동안 100여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해 온 40년 식민지 문제는 북일간의 수교 교섭으로, 60년간의 분단 문제는 북미간의 관계 정상화로, 남북 간의 화해와 6.15 통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 근대사의 100년 과제가 해결되는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미국의 기득권유지욕구와 일본의 군국화 욕구, 남한의 수구보수세력의 격렬한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냉전 해체와 화해통일로 가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남과 북 전체 우리 민족과 남한의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이 요구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기에 역량 관계 상 미일남한의 수구보수세력이 열세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평화지향세력은 자기의 힘을 남한에만 국한해서 고립적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참된 커다란 힘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남한의 평화지향세력의 힘을 기본으로 해서 민족 전체의 힘과 주변 나라의 힘을 동시에 보아야 하며, 그 힘 전체를 동원해 미국 일본 그리고 남한의 수구보수세력과 투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세의 주도권은 여전히 평화지향세력에게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아펙투쟁을 새로운 정세전환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아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아시아와 태평양연안국가가 경제협력을 통해 번영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냉전 이후 세계 경제가 지역경제화 되어 미국의 유일한 경제 패권이 위협을 받게 되자, 미국과 일본의 경제 영향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관점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배 영향력을 유지하자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 강화보다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신자유주의 확산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아펙반대국민행동의 기자회견(통일뉴스제공)

올해 아펙회의가 부산에서 열린다. 11월 18일 오후3시에는 범국민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정세의 흐름에서 볼 때 올 아펙회의는 새로운 특징과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비정규노동자를 비롯한 노동 세력과 농산물개방을 반대하는 농민의 치열한 투쟁, 반전평화를 지향하는 반부시 세력,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세력 등이 한자리에 합류해 반전평화, 민중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이 아펙투쟁에서 우리 평화세력은 수구보수세력과의 치고받는 치열한 싸움을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야 하는 의미가 놓여 있다. 마치 7월의 평택싸움에서 소위 '황새울 대첩'을 일구어냈듯이 이제는 '부산대첩'을 일구어내어 전체 정세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앞으로의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와 남북정상회담 등 예상되는 커다란 사건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할 수 있고 대중적 힘을 모아 평화구조를 완전히 정착시켜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운동세력들은 이런 아펙투쟁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운동에 맞는 형식을 갖고 전체적인 정세의 흐름에 기여해야 한다.

넷째 아펙투쟁이후 민주개혁을 위한 투쟁과 민족화해를 위한 활동, 민중생존권을 위한 투쟁에 연대하는 등 사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아펙 이후에는 연말을 맞이하게 된다. 연말은 올한해 모든 투쟁이 총화되면서 국회를 중심으로 비정규노동자 보호법과 국가보안법 등이 쟁점이 될 공산이 커보인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서게 되면 개혁선명성을 보이기 위해 국가보안법 문제를 다룰 공산이 크다. 새로운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내년 1,2월경에 선다면 3월 국회가 될 것이고, 그 전이라면 그때 하려고할 것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을 향해 나아갈 것이 전망된다.

어쨋든 이럴 때 민중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중연대투쟁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11월 아펙투쟁을 이런 투쟁의 동력을 새롭게 형성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해야한다.

특히 기독교운동권은 올해 정세대응을 위한 투쟁 사업보다는 행사성 사업에 많은 힘을 기울여왔다. 물론 지난해 많은 에너지를 들였기 때문에 쉬어간다는 의미도 있었으나, 연말의 민중연대투쟁과 국가보안법투쟁은 새로운 힘을 기울여서 해야할 것이다. 이런 투쟁과제와 성탄절연합예배를 결합하는 것도 구상해 볼 만하다.

어쨋든 지금 우리 민족사는 개혁과 진보 화해와 통일번영으로 가느냐 냉전갈등분단의 세력에게 발목이 잡히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 역사의 새로운 부대가 형성되고 있으니 우리는 혁신 변화하여 새로운 역사의 술이되어 민중과 민족의 희망의 역사를 창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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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뉴스엔조이에 동시에 기고하였습니다.

김성윤  peacechurc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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