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오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절기. 해마다 반복되는 절기이지만, 올해도 초겨울 새벽바람처럼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사람의 망각 때문인 듯합니다. 맞이함, 기다림, 준비함. 이 단어들을 떠올릴 때면, 우리의 마음은 설레게 되고 약간의 긴장과 흥분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건강할 수 있는가 봅니다.

올해 대림절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할 것은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왔을까?” 하는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마음의 중심을 모으는 것입니다. 각 복음서에서 그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 하나씩을 뽑아서 성탄절까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렵니다.

마가복음의 고민 "예수님은 왜 하느님의 아들인가?"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그대로 당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당할 때 아픔을 호소하고,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회피하고 싶은 심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도 하고, 죽음의 순간에서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인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마가복음서에서는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에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옵니다. 그리고 “내 아들”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따라서 분명하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구절이 여섯 번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지금 이 말을 듣는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생뚱맞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는 이 말을 ‘왜?’ 라는 막대기로 찔러보고 싶습니다.

“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인가?” “여러분은, 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천년 동안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여겨져 왔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거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귀찮을 때, 쉽게 들이대는 것처럼 ‘성서에 그렇게 써 있기 때문에?’

아마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그리고 여러분의 행동과 실천 속에서 그 이유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품고 있을 것입니다. 말로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보다는 차마 말로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미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삶이 더 귀중합니다.

마가복음의 제목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단어가 성서의 고대 사본에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전제하고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 놓고 함께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당시에도 이러한 고민과 물음이 있었다는 흔적입니다. 마가복음은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의 삶, 그의 말과 행동 속에서 그 이유를 찾으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이 물음에 대하여 중간 중간에 복선을 깔아 놓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막 올라올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1:9)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여 우리는 그 소리를 함께 듣지만, 마가복음서의 기록대로라면 당시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이 시작되기 직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자기 체험이라는 것이죠. 물 속에 잠겼다가 다시 살아나는 세례라고 하는 무(無)의 경험, 죽음의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하느님의 기쁘게 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그 높은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는 앞에서 모습이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9:7)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의 길을 가려는 예수님을 애써 만류하는 베드로(8:31-38)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들려온 하늘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순한 정치적 그리스도, 다윗적 메시야로만 받아들여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잠시 동안 탐했던 제자들을 돌아서게 하는 소리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그의 제자들을 자기의 길로 인도합니다.

예수를 향한 세상의 유혹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이러한 마가복음의 복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 속에서 언제나 자기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강조합니다. 성서번역에 “人子”라고 하면 선입견에 의하여 대단한 어떤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풀어서 번역하면 “사람의 아들”입니다.

마각복음서에서 보여준 예수님의 능력, 즉 병을 고치고 귀신을 축출하고 풍랑을 잔잔케 하는 능력을 보면 당시 사회에서 충분히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예수님은 굳이 “사람의 아들”을 사용합니다.

조금만 알려져서 사람들이 추종하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칭하면서 사람들을 모으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하느님의 아들, 즉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던 로마 황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멉니다. 고대근동의 문화나 세계 문화에서 “신의 아들”은 지배자의 최고 정점에 있는 왕을 일컬을 때 자칭 타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혹은 신비한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 '신의 아들'은 지배자의 최고 정점에 있는 왕을 일컬을 때 사용된 말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유혹을 거부하고, '인간의 아들'을 고집했다.

얼마 전에 이회창 씨 아들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꾼들이 자기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던 병역비리가 한창일 때에 이를 빗대어 유행하던 말과 비슷한 뉘앙스입니다. <군대 : 신의 아들(면제) - 장군의 아들(6개월) - 사람의 아들(18개월) - 어둠의 자식들(현역)> 즉 “신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한창 그의 활동을 왕성하게 할 때에 “악한 귀신들이 예수를 보면 언제든지 그 앞에 엎드려서 부르짖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러면 예수는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엄하게 꾸짖었다”(3:11-12).

예수님이 이방인의 땅 거라사에 갔을 때에 무덤에서 죽은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사로잡았던 군대(레기온) 귀신이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서 엎드려 절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지극히 높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냐? 나는 하느님을 두고 당신에게 애원한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 왜냐하면 예수가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5:6-8)

여기에서 악한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이다” 라는 고백과 전혀 다릅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라고 말하는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활동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기운이 힘을 얻게 되고, 언제나 잠잠하고 억눌려 지낼 것만 같았던 민중들이 각성하여 그 운동에 가담하게 됩니다. 이 땅의 지배 세력들이 점점 수세에 몰리게 되어 그들의 설 자리를 잃게 될 것만 같습니다.

이제 그 악한 세력들은 예수님을 매수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신의 아들이다. 저런 벌레 같은 떨거지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신의 아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러느냐. 차라리 우리와 손을 잡자. 우리가 하는 일을 그대로 두고 상관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그 능력으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손에 넣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악한 세력은 이렇게 “하느님의 아들”을 들먹이며 예수님에게 애원하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대해서 예수님은 꿋꿋하게 “사람의 아들”로서 행동하였습니다.

무기력하게 고통과 죽음 감내하는 예수를 지켜본 백부장의 고백

그러면 굳이 “사람의 아들”로서 행동하였던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절망에 부르짖다가, “큰 소리를 지르고서 숨졌습니다”(15:37). 가족에게 오해받고, 고향에서 배척당하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거부당하고, 가장 가까운 추종자들로 자처했던 열두 제자들에게도 부정되거나 배신당한 예수님은 결국 하느님에 의해서까지도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어떠한 기적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무기력하고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마가는 이 처형의 순간을 목격한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하고 외친 것으로 묘사합니다.

▲ 고통과 죽음을 감당하는 예수를 보고 백부장은 고백했다. "저이야 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동시대 인물 중에서 로마의 백부장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입니다. 로마 백부장은 누구입니까? 로마정부의 처형권을 위임받고 예수님을 처형한 로마 병정들의 지휘관입니다. 그 지휘관이 예수님을 처형해 놓고 나서 처형된 예수님을 쳐다보며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하고 고백했다는 것은 그 처형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곧 로마 백부장의 외침은 로마 정부의 패배의 외침이 됩니다.

또한 이 사건을 보도하는 마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마가는 무엇 때문에 로마 백부장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하고, 마가는 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할까요? 마가는 백부장의 고백이 십자가 처형이라는 처참한 광경을 다 지켜본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그토록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을 보고서도, 지나가던 자들처럼 그를 모욕하지(15:29) 않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처럼 남을 구원하기 전에 네 자신이나 먼저 구원하라고 희롱하지도(15:31) 않았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처럼 욕하지도(15:32) 않았습니다. 그는 치욕스럽게 처형된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의 본질을 발견하였습니다.

백부장의 고백은 마태복음에 그런 것처럼 천지가 진동하고 성전 휘장이 찢어지는 기적적인 이야기와는 무관합니다. 단지 백부장은 더 처절한 예수의 한계를 목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백부장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15:34) 하고 절규한 것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운명한 것(15:37)을 보았습니다. 그밖에도 박대와 조롱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적절한 그 어떤 반응도 없이 무기력하게 감내만 하고 있는 예수님의 한계를 보았다. 마가에 따르면 그러한 목격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그 인간적인 예수님의 한계 속에서 하느님의 아들의 본질을 감지해 냈습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본질을 실천하신 예수

백부장에 의한 고백은 오늘 우리의 화두인 “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예수님이 공적활동 기간에 보여주었던 많은 기적과 귀신 축출과 병 고침, 그리고 권위 있는 가르침은 기존의 사회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칭송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앞에서 악한 귀신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거부하였듯이 그러한 칭송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보여주었던 예수님의 능력으로 충분히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단순한 신비가, 치료자, 지혜의 교사였다면 처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추앙받는 지위를 마다하고 철저하게 사람의 아들로 살면서 이 땅에 고통받고 억눌린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난을 받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신음하시는 하느님의 본질을 행동으로 옮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아들의 죽음은, 하느님을 떠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에게 도전하는 권력에 대항하여, 사람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누군가가 밖으로부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나의 몸과 마음을) 사람의 아들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삶을 살았던 예수님을 닮으려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면 너무나 심각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고, 쉽게 생각하면 우선 순위에 밀려 관심 밖으로 밀려날 일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마음에 짐이 되어 삶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또다른 형태의 율법 혹은 믿음이 되어 우리를 가둘 것입니다.

다만 내가 오늘 처해진 현실 속에서 작은 것 하나씩이라도 마음에 담거나 행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죠. 공교롭게도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며 계획하는 이 대림절 기간에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다시금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오시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으로 충만한 시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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