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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하나 없는 목사의 둥지 공사‘부산 부활의집’ 김홍술 목사의 보금자리 공사현장을 가다
송상호 기자 | 승인 2007.11.12 00:00

   
▲ 김 목사에겐 그 흔한 집무실이나 사무실이 따로 없다. 방 한 쪽에 컴퓨터가 놓여 있는 곳이 바로 사무실이 된다. 지금은 사무실을 방 다른 쪽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 ⓒ 송상호
초대장이 날아왔다. 부산 ‘부활의 집’에서 온 초대장이다. 보금자리 공사가 다 끝나진 않았지만, 더 추워지기 전에 주변 마을사람들과 지인들을 초대해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잔치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현장을 알리고 꼬지(‘구걸’을 뜻하는 부산 사투리)를 보려는 얄팍한(?) 속셈이 이번 잔치의 의미 중 하나라고 진솔하게 털어놓는 ‘왕꼬지’ 김홍술 목사(부활의집 대표). 그가 벌인 보금자리 공사 대장정은 15개월 전인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미완성이다.

그래서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부산행을 감행했다.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하루라도 몸으로 동참하겠다는 각오다. 지난 8일, 부활의 집에 미리 연락하지도 않고 우리 집 식구들에게 예고도 없이 불현듯 배낭 하나 짊어지고 부산행 무궁화호에 오른 것이 부활의 집 공사현장의 ‘체험, 삶의 현장’이 되었다.

15개월이 걸리도록 완공 못 한 사연

무슨 거창한 아파트를 짓는 것도 아니고 대형 저택을 짓는 것도 아닌데 15개월이 지나도 아직 다 완공 못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마디로 경제적인 이유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처지에서 시작했다면 건축업자에게 맡겨서 벌써 완공되고도 남을 집이지만, 김 목사에겐 돈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돈’으로만 건축하고 싶지 않은 게다.

여러 명의 정성어린 후원과 부활의 집 식구들의 땀을 섞어서 집을 완공하고 싶다는 깊은 이유가 있다. 돈으로만 지은 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다가 실제적인 이유는 이렇다. 10만원 후원 들어오면 10만원어치 공사를 하고, 20만원이 들어오면 20만원어치 공사를 하는 것. 그런데다가 김 목사가 감독·진행·설계 등을 도맡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외부일 때문에 바쁜 김 목사가 없는 날은 공사를 쉬는 날이다. 그런 공치는 날도 상당수 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김 목사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동안 미뤄왔던 방바닥 공사를 하자고 한다. 떡본 김에 제사지내는 격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5평 정도의 바닥공사였지만 하루만에 끝내지도 못한다. 방 반쪽의 잠자던 공간을 다시 반대쪽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전기 패널을 깔고 잤던 공간을 다시 뜯고 짐과 장판을 옮겨서 밤에 잘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후에라야 바닥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일만 하는 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전날 밤에 왔던 나로서는 공사에 손도 대보지 못하고 방을 옮기는 데만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아하, 이래서 15개월 걸려도 다 완성 못한 거구나.”

나의 도 터지는 소리에 호탕한 웃음으로 김 목사가 응수한다.

   

▲ 공사를 위해 주방을 정리하니 오래간만에 외식이 이루어진다. 짬뽕을 먹고 있다. ⓒ 송상호

   
▲ 편지 봉투에 일일이 손으로 글을 써다가 큰맘 먹고 부활의집 주소를 인쇄한 봉투를 만들었건만, 보금자리 공사가 더뎌 보관이 잘 되지 않는 바람에 봉투들이 곰팡이가 쓸었다. 그래서 김목사는 옥상에다가 일일이 펴서 말리고 있는 중이다. ⓒ 송상호

 

목사 집무실 하나 없지만, 모두 공평하게 쓴다

부활의 집 식구들은 뭐든지 공평하게 쓴다. 목사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잠자리도 식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그 흔한 목사 집무실이나 사무실도 따로 없다. 널따란 방 한쪽에 놓인 팩스, 컴퓨터, 전화기 등이 있는 공간이 바로 사무실이 되는 셈이다. 그나마도 한군데 지정해서 있을 수 없다. 짐을 옮기고 방을 옮기는 것에 따라서 사무실도 자연스레 옮겨져야 한다. 김 목사의 독자적인 공간이나 자리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날도 방을 옮겼으니 당연히 사무실도 옮겨져야 했다. 각종 사무기기들도 부활의 집 식구들에 의해 보일러 바닥공사가 마무리된 다른 쪽으로 옮겨졌다. 사무실은 그렇게 이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정도이니 경제사정과 운영상황이 투명할 수밖에 없다. 모두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두말해서 무엇 하랴.

   

▲ 드디어 모자를 쓴 본인이 부활의집 식구들과 함께 시멘트 비비는 작업에 돌입했다 ⓒ 송상호

   
▲ 차는 도저히 못 올라가는 길을 리어카로 시멘트를 나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미 수백 포의 시멘트와 모래가 공사 현장으로 공수 되었다. ⓒ 송상호

김목사는 왕초이자 아버지 였다

“마, 시끄럽다. 그게 아이고 이거라이 카네.”

김 목사의 한마디에 상황은 종료된다. 공사 진행 중에 부활의 집 식구들끼리 이렇게 해야 하느니 저렇게 해야 하느니 하며 말다툼이 있을 때 김 목사가 한마디로 정리하는 장면이다. 그러고 보면 부활의 집 일이 모두 그런 식이다.

김 목사가 기획·감독·진행 등을 하면 부활의집 식구는 동참하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김 목사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현재 8명인 부활의 집 식구들은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말로만 ‘왕꼬지’가 아니라 실제로도 ‘왕꼬지’다.

그렇다고 그가 부활의 집 식구들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김홍술’이라고 하는 울타리가 있어 그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있다는 걸 부활의 집 식구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왕꼬지 목사’가 있기에 천하게 뒹굴 수밖에 없었던 인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간다는 걸 잘 안다.

부활의 집 존재 목적은 노숙자들을 수용하는 데 있지 않고 생활하면서 자생력을 길러 독립하는 데 있다. 실제로도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부활의 집을 수료(?)하고 포장마차, 막노동 등의 일을 하며 셋방살이라도 하는 선배들이 있다. 그야말로 ‘꼬지’만 보던 인생에서 자립적인 인생으로 거듭난 경우다.

   

▲ 이들은 몇 년 째 이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00명 분의 음식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었다.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갔다. ⓒ 송상호

   
▲ 이날 밥을 프는 여성 분이 오지 않아 김목사가 밥을 프고 있다. ⓒ 송상호

노숙자가 노숙자들 아침식사 챙긴다

마지막 날 새벽 4시20분, 딸그락 딸그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알람시계 하나 울리지 않아도 부활의 집 식구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부엌에서 큰 솥과 양동이를 챙긴다. 누가 누구에게 지시할 것도 없이 각자가 맡은 것을 소리없이 해낸다.

그리고 김 목사가 차에 시동을 걸면 새벽 공기를 가르고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노숙자 급식소로 향한다. 일주일에 화·목·토 3회 실시하는 아침 급식이다. 웬만하면 힘들어서 거를 만도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백여 명의 노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5시쯤에 현장에 도착하면 벌써부터 그곳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숙자도 있다. 문이 열리면 모두가 부엌으로 간다. 한 해 두 해 한 것이 아니기에 손발이 척척 맞아 흡사 무슨 특공대 같다. 순식간에 100명분의 음식이 만들어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밥상에는 하나 둘 노숙자들이 늘어간다. 6시30분에서 7시가 되니 모든 자리가 꽉 채워지고 드디어 식사시간에 돌입한다.

눈치 챘겠지만, 그 많은 노숙자들의 밥을 챙기는 것은 부활의 집 식구들이다. 그들도 얼마 전까지는 같은 노숙자였으니 배식 현장에 동정이나 연민이라는 단어가 발붙일 곳은 없다. 오히려 부활의 집에 있는 노숙자들은 몸과 정신이 약한 사람들이지만, 밥을 먹으러 온 노숙자들은 더 건장하고 멀쩡하다.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온전하면 노숙자라도 부활의 집 공동체 생활에 적응을 못 하는 것이다. 규율과 통제가 있는 공동체 생활에 멀쩡한 사람이 자리를 못 잡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닥공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에도 김 목사가 기획·감독·진행 담당이다. 나와 부활의 집 식구들은 뒷바라지 담당이다. 시멘트와 모래 나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 김 목사는 바닥 수평을 보고 일일이 표시를 한다. 수평작업에 실패하면 바닥이 고르지 못할 것은 자명하기에 세심함이 요구된다. 왕년에 건축도 손대봤던 김 목사는 척척 해낸다. 그래서 평소 부활의 집이 잘 돌아가는 것이다.

바닥공사가 마무리 되지는 않았지만 자리를 떠야 했다. 밤 8시에 안성에 도착해 바닥공사가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전화로 확인했다.

   
▲ 아침 식사를 하러온 노숙자들과 함께 식사기도를 하는 김목사. ⓒ 송상호
부활의 집 식구들이 그립다

부활의 집 식구들이 벌써 그립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인 노숙자들의 대표 K 아저씨, 부활의집 사무는 내가 감당한다던 J 아저씨, 백만 불짜리 미소의 주인공 또다른 K 아저씨, 자기가 맡은 일은 끝내주게 잘하는 왕고참 C 아저씨,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G 아저씨, 조그만 체구에도 힘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성실맨’ P 아저씨, 걷는 것도 시원찮지만 식구들의 밥상을 책임지는 S 아저씨, 최근에 입소한 신입생 B 아저씨 등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한 2박 3일은 내게 금쪽같은 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부활의 집 집짓기를 ‘작은 자들의 집 짓는 이야기’라고 그들 스스로 자처한다. 잠시 언급했지만 노숙자들은 자본주의 문명 시대에 있어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부활의 집은 노숙자 중에서도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그들이 집 짓는 현장은 대단히 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는 김홍술 목사는 ‘노숙자들의 대부’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아 보였다.

덧붙이는 글 | 부활의 집(htp://www.homeless.name/)은 현재 8명의 노숙자와 김홍술 목사가 사는 집이며, 보금자리 공사는 지난해 7월부터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부활의 집과 함께한 더아모의 집(http://cafe.daum.net/duamo)은 경기 안성 금광면에서 나눔문화를 실현하는 곳이다.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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