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 박지훈/에큐메니안

모 회사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라는 공간에 신기한 것 중의 하나가 '블로그씨'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이 질문을 던지고 블로거들이 대답을 하는 형식이다. 난 별 흥미가 없어서 그걸 해 볼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하지만 이웃 블로그들을 방문하다 보면 그렇게 블로그씨의 질문에 답을 해 놓으신 이웃님들의 답들이 더 재미있고 흥미가 있다. 그래서 어떨 때 보면 블로그씨의 질문에 대답하고픈 충동마저 느낀다. 블로그씨 성공했어용. 짝짝짝...^^

그리고 이웃 블로그가 아닌 가끔 블로그씨의 질문들 중에 어라~ 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가끔 추억에 젖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오늘도 이웃 블로그들을 방문하다가 그런 질문을 하나 발견했다. 그날의 질문에서는 별 흥미를 못 느끼다가 이웃님들의 대답을 보면서 나도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의 기억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사실 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에 그리 큰 기억이 없다. 사실 몸으로 뭘 배운다는 것이 흔치 않은 사정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보니 늘 내가 배우는 것은 문자 즉 책을 통해서이다. 지적 깨달음이나 배움이 내게 있는 것이다. 그러서인지 뭘 배운다는 것이 그리 가슴 설레이거나 기다려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데 오늘 몸으로 무언가를 배웠던 기억이 떠 올랐다. 바로 내가 목발로 서서 걸음마를 배울 때의 기억이다. 정확히 몇 살 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분명한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목발을 짚고 걷기 전에는 아래 그림의 자세로 돌아다녔다.

▲목발을 짚기 전 저 모습으로 온 동네 방네를 헤짚고 돌아다녔다.

저 그림 꼭 무슨 동물 그림 그려 놓은 것 같지만 정말 목발 짚기 전의 내가 돌아다니던 모습이다. 그림이 조금 잘 못 되기도 했는데, 엉덩이의 위치가 좀 더 위이기고 머리는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래도 저 자세로 온 동네 방네 안 돌아다닌데가 없었다. 때로는 친구들 등에 엎히기도 했지만, 하여간 그렇게 별 이상한 것도 못 느끼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그것도 몇 살 때인지도 모르지만 병원을 다녀와서는 어느 날 어머니께서 목발을 사 오셨다. 그러고는 나보고 짚고 걸어보라고 하셨다. 지금도 기억 나지만, 그때 막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나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무서웠나 보다! 그리고 처음 목발을 짚어서 그런지 겨드랑이도 제법 아팠던 것 같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목발을 짚고 나서는 다닐 수 없는 곳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목발을 짚기 전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고 싶은 곳은 갔는데, 목발을 짚고 나서는 갈 수 없는 곳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포기하는 곳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동네 놀이터로 기억이 된다. 울 동네에 작은 영세민 아파트에 놀이터가 있었다. 그네도 있었고, 시소도 있었고, 정글도 있었다. 내게는 또 다른 세상 중의 하나였는데... 하도 가고 싶어서 정말 혼자서 저 자세로 엉금엉금 기다 싶이 해서... 그것도 울 집에서 놀이터로 가려면 어렴풋한 기억으로 30개가 넘는 계단을 지나가야 하는데, 저 자세로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발을 짚고 나서는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목발을 짚은지도 거의 20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처음 짚었을 때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분명히 목발을 짚었으니까, 아무리 늦게 잡아도 7 때는 목발을 짚었을테니까, 아무리 작게 잡아도 26년은 된 것 같다. 이젠 어지간 한 곳 아니면 나도 못 가는 곳이 이제 없어졌다. 그것도 신기한 일 중의 하나다. 아주 고층 건물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높은 산을 빼놓고는. 그리고 건물 3, 4층 정도는 꾸역꾸역 올라가기는 한다. 올라가면 초죽음이 되지만.

또 신기한 일 중의 하나는 내가 가진 과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나 자신이다. 이젠 좀 어른이 되려나 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