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기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르면서 지내고 계시죠? 지난주에는 “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인가?” 라는 물음의 실마리를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물음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지속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난 일을 묘사하는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1:14)라는 표현이 중심입니다. 이 일을 가리켜 교회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라고 말합니다. “말씀(lo,goj)이 육신(sa.rx)이 되었다.” 성육신의 개념은 하느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제도화된 교회에서 예수의 신성은 교회의 거룩함과 권위로 대치

“그는 근본 하느님의 본체시나 하느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빌립 2:6-8)

‘지극히 높은 하느님이 낮고 천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썩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성육신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천년 동안 기독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자기들의 신앙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교리를 살펴볼 때에, 성육신을 우리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육신, 즉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교회는 철저한 이원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원론은 고대 희랍의 철학과 중세의 교부신학, 그리고 근현대의 형이상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뿌리에 의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전적 차이를 강조하고, 영과 육을 구별하여 영은 하느님과의 접촉점으로서 고귀한 것이고 육은 죄악의 근원으로서 더러운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절대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죄악으로 타락한 인간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지만,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의 질적 차이를 강조할수록 성육신의 은혜와 그에 의한 하느님의 사랑이 더 강조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절대타자성과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할수록, 그로 인한 인간의 충성과 절대복종의 정도도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대로 말로는 예수님이 “참 인간이면서 동시에 참 하느님”으로 세상에 왔다고는 하지만, 이미 교회는 예수님의 신성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미 제도화된 교회에서 예수님의 신성은 교회의 거룩함과 권위로 대치된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영이나 말씀에 대한 강조는 목회자의 비합리적 권위를 지지하기 위한 전제가 되었습니다.

영지주의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

“그 말씀(lo,goj)이 육신(sa.rx)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evskh,nwsen).” (1:14)
여기에서 말씀과 육신, 그리고 성육신을 말하기 위해서는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세계관은 신(God)이 있기 전에 있었다고 하는 ‘신 본체’(Godhead)에서 시작합니다.

“‘신 본체’는 완벽하고 선재하는 것이며, 보이지도 않고 이름할 수 없는 높은 곳에 거하며, 시작 이전이며 근원이며 심연이 되신다. 그는 어느 그릇에도 담을 수 없고 분리할 수도 없으며, 영원하고 생성되지 않는 영원한 시간의 적막이자 깊은 고요함이다. 그와 함께 생각이 있었으니, 곧 은혜와 침묵이었다.”<발렌티누스, 150년경,>

신 본체는 자신이 알려지기를 원해서 내적 요동을 통해서 유출(emanations)이 일어났습니다. 유출의 첫 결과는 신이고, 다음에는 남성과 여성이고, 이 유출의 과정이 30번 전개되어 신적 세계(신 본체에서 유출되어 우주의 운행을 관장하는 힘인 아이온(aeon)들이 지배하는 세계) 곧 ‘충만’(Pleroma)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 신적 세계는 물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적인 세계였습니다.

물질세계가 생겨난 것은 지혜(Sophia)의 타락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출과정의 맨 마지막 단계인 소피아가 접근 불가능한 신 본체의 금지된 지식을 탐냈기 때문에 은총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주제넘은 무례함 때문에 소피아는 신적 세계인 ‘플레로마’에서 쫓겨났으며, 지혜의 비탄과 고뇌에서 물질세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소피아는 추방당해 향방도 모른 채 자신의 신적 원천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며 우주를 떠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즉 우리의 세계는 천상적 삶의 왜곡이며 무지와 타락으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은 추악한 물질과 아무런 관련도 없기 때문에 절대로 물질적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세계를 창조한 것은 ‘조물주’(demiourgos)라고 불리는 아이온의 소행이었습니다. 데미우르고스는 신을 질투하여 자신이 플레로마의 중심이 되기를 꿈꾸었으며, 그 결과 그는 타락하고 반항적인 격정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식 없이 하늘을 만들었고, 인간에 대한 무지 가운데 인간을 빚었으며, 지상에 대한 이해 없이 지상에 빛을 가져왔다”<발렌티누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물질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영혼은 그 육체에 갇혀서 구원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해에 따르면,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이온들 가운데 하나인 로고스가 이것을 구하려고 지상으로 내려와 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인간에게 가르치고자 예수라는 육체적 형상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영-육 이원론은 극단적 성차별로 나타나

많은 교회에서 영지주의의 이러한 생각을 배척한다고는 하지만, 성육신 사건을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의 형상을 입었다”라고 표현하는 말 속에 물질과 육체를 죄악시 하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가져왔습니다. 차별이 아닌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오리게네스도 있지만, 유명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성에 대한 병적인 혐오감을 표현했습니다.

성을 극단적으로 죄악시 하는 것은 서방 기독교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어거스틴의 원죄 교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느님이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파멸의 운명을 내렸다고 믿고 있었으며, 이러한 믿음은 그 이후 서구인의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유대교인도 동방 정교회 기독교인도 그리고 무슬림도 이 원죄라는 희망 없는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서방 기독교회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난 원죄 교리는 냉혹한 모습의 신을 강조한 터툴리안에 의해 제시되었고 어거스틴에 의해 확고한 신학적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또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히에로니무스)은 광적인 여성혐오를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근원적 결점을 강조하는 원죄론에서 비롯된 인간 소외 현상은 성에 대한 격하, 특히 여성에 대한 억압적 이해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오늘날에도 인권의 마지막에는 항상 여성이 있습니다. 같은 노동자라도 여성 노동자는 더 많은 인권의 침해를 당합니다.

터툴리안은 여성을 악의 수렁으로, 남성(인간)을 유혹해 구원의 길을 막는 영원한 독소적 존재로 매도하였습니다. “너희는 너희 각자가 한 사람의 이브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너희 여성의 죄가 분명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너희의 성에 신께서 내린 징벌의 심판 또한 오늘날 남아 있다. 너희는 사탄의 출입구이고 금지된 나무의 침범자이며 신이 내린 율법을 범한 최초의 죄인이다. 너희는 사탄 홀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었던 남성을 유혹하고 설득해, 신의 형상을 지닌 남성을 분별없이 파괴한 여성일진대, 너희의 불순종으로 인해 신의 아들마저 죽음에 이르게 되었도다” 속에서 뭐가 끓어오르죠?

어거스틴은 하느님이 여성을 창조했다는 점에 몹시 곤혹스러워 했습니다. “만일 아담에게 좋은 동료와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면 배우자로서의 여성보다는 친구로서의 남성을 창조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성육신 교리는 결국 이원론에 빠질 수 밖에 없어

“그 말씀(lo,goj)이 육신(sa.rx)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evskh,nwsen).” (1:14)
예수님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육신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말씀과 육신, 정신(이성)과 물질, 영과 육, 남성과 여성, 신과 인간 등의 극단적인 차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차별의 근본을 뒤엎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의 동역자이며 고귀한 로고스가 죄악의 원천인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인간들 사이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살다”는 “천막을 치다, 거주하다”라는 뜻입니다. 가장 철저한 이원론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뒤엎고 있습니다.

육체와 여성에 대한 기독교의 죄악시는, 신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인간적 속성을 취했음을 강조하는 성육신 교리에 매우 모순됩니다. 서방 기독교의 안셀름은 “신이 인간이 된 이유”라는 글에서 ‘인간의 죄는 인류를 향한 신의 계획을 망쳐 놓아 신의 새로운 구속 사역을 필요하게 만든 신 섭리에 대한 모독적 도전 행위이고,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파괴된 인간의 구원 계획을 새로이 바로잡기 위한 것임’을 주장합니다.

즉 그것은 인간의 죄의 대가가 신이자 인간인 존재에 의해 치러지기를 원하는 신에 의해 요구된 것으로, 신의 아들이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구원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희생 제물로 바쳐진 신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만족하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신의 이미지를 서방 기독교인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방 기독교의 비잔틴 신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막시무스는 이와는 다른 말을 합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인간 삶의 조건에 결박당한 하나의 외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통해 실현하는 인간 내면에 거하는 초월적 존재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변한 것은 아담의 원죄 때문이 아니라, 성육신은 아담의 죄 없이도 일어나야 할 신 섭리의 과정이었다. 인간은 말씀의 형상에 따라 지은 바 되었으며, 인간이 각자 내면에 담긴 말씀의 형상을 삶에서 완전히 구현할 때 최고 인간됨의 경지에 도달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은 “전 인류를 신적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과 똑같은 몸과 영혼으로 당신을 낮춘 신의 은총을 통해 인간을 본질적으로 신과 동일한 존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동양적인 사고에 있어서 그런지, 서구신학이나 서방교회의 교리에 대한 일말의 거부감 때문인지 막시무스의 이해가 더 친근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성육신을 이해함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에만 매달리거나 성육신의 과정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원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근원에 서로의 우위를 비교하여 하나를 우위에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지금까지의 해석이 두 방식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스스로의 꼬리를 물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이웃과 같은 인격으로 오신 것

“그 말씀(lo,goj)이 육신(sa.rx)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evskh,nwsen).”(1:14)
요한복음은 성육신의 과정이나 문자 그 자체를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성육신의 목적과 지향을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이유,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에서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생명권입니다. 생명이 자기의 생명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인 표적 이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사람의 아들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었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요한 6:51,53-57>

로고스(말씀)가 사륵스(육신)가 된 것은 그의 육신(sa.rx)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고, 그의 살(sa.rx)을 먹는 사람들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육신이 된 말씀은 우리와 함께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로고스인 예수님은 인간, 즉 육신으로 존재하는 한 인격체로 태어나서 우리 인간들과 동일하게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며 살았고, 그리고 육신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느님이 그저 개념이나 원리로서 존재하는 절대 타자(他者)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격으로 오시는 분임을 말하고, 하느님은 피조물의 삶과는 동떨어진 가운데 멀리서 따로 존재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피조물의 역사 속으로 계속해서 찾아오시는 분임을 역설합니다. 찾아와서 우리와 함께 지금 여기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는 하느님을 역설합니다.

이웃에서 예수 모습 발견하는 것이 성육신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시작

지금 옆 사람의 손을 잡아 보십시오. 마주 잡은 손에서 생명을 느끼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을 느끼십시오. 이것이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바로 옆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나의 이웃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성육신을 나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입니다.

또한 성육신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하느님과 세계, 영혼과 육신,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고 대립시키는 이원론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이 세계를 구원하신 하느님은 이제 성령 안에서 또 다른 성육신을 통하여 이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하느님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 속에서 함께 활동하심으로써 그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한 그 성육신을 통하여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심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육신의 지향이요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향기로운 이웃으로 살면서 서로에게 생명의 숨결이 되려는 향린 공동체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lo,goj)이 육신(sa.rx)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evskh,nwsen).”(1:14)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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