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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을 위한 기도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박철 | 승인 2005.11.19 00:00
   
어떤 청년이 숲속에서 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애인이 보고 싶은지 못 견딜 정도로 조바심이 났다. 그때 한 난쟁이가 나타나서 그 청년에게 노란 조끼를 주면서 유혹했다. 이 조끼를 입고 단추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애인이 빨리 보고 싶었던 그 청년은 얼씨구나 하고 그 조끼를 받아 입고는 "빨리 애인이 왔으면"하고 단추를 돌렸더니 애인이 바로 옆에 와 있지 않은가? 청년은 너무나 신이 나서 "빨리 결혼을 했으면", "예쁜 딸아이를 하나 가졌으면"하고 계속 단추를 돌렸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의 단추를 더 돌리다 보니 어느새 이제 한 번만 더 돌렸다가는 자신이 늙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청년은 몇 번의 큰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때 그는 "만약, 단추를 왼쪽으로 돌리면?"하는 생각에 단추를 왼쪽으로 돌렸더니 숲속에 옛날 청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그는 아름다운 숲속의 여러 나무들과 꽃들이 보이고 꽃향기와 풀벌레의 울음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고, 신선한 공기를 느꼈다.

   
그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가까운 내 주위에 얼마나 신기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느끼며 즐겁게 애인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는 중요한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사소한 다른 것들을 희생해도 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풍요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즐기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꽃향기 한 번 못 맡아보고, 푸른 하늘과 나무를 한 번 쳐다보지 못하고, 그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한 번 들어 마셔보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한 곡 감상하지 못하고, 감명 깊은 영화 한편 보지 못하고, 넓은 아파트에 비싼 가죽 소파를 들여놓았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가? 단전에 힘을 주고 한번 숨을 천천히 길게 내 쉬라.

곱게 늙어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인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어 새로움이 있다. 곱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는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달릴 수 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와 절망 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늙음이 곧 낡음 이라면 삶은 곧 '죽어감'일 뿐이다.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롭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진다.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온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다. 늙었으나 새로운 인격이 있다.

젊은 나이에도 낡은 마음이 있다. 젊었으나 쇠잔한 인격이다. 겉은 낡아 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이다. 겉이 늙어 갈수록 속은 더욱 낡아지는 것이 추하게 늙는 것이다. 새로움과 낡음은 삶의 미추를 갈라놓는다. 글자 한 획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삶과 인격이 다르다.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기쁨일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움 일인가,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

정직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면 부끄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다. 나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쁘게 살아있고 나의 미래가 설레면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완벽하게 기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으로 완벽하게 기쁠 수는 없다. 그러나 큰 흐름이 기쁨과 설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얼마간의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큰 흐름 속에 쉽게 녹아 없어진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내가 어쩌다 이런 행운을 타고 늙고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더 늙어서도 더욱 깊은 기쁨과 설레임의 골짜기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늙었지만 젊고 나이가 많지만 싱싱한 영혼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깨우는 일에 정성을 바치면서 삶을 끝없이 열어가는 모습이 그립다.

   
박철 목사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작자 미상-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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