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것이 꼭 경제가 어려워 취업하기 힘드니 대학원이라도 가자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것과 별개의 문제로 볼 수는 또한 없을 것이다. 내가 속해져 있는 계층의 특성상 대학원 진학이 거의 필수적이라 어쩔 수 없지만, 나도 저 8명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신 분들께는 꽤나 먹물 쫌 먹었다고 평가받을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삶을 변혁해 내는 실천적 역동성이 전혀 없는 먹물로만 보인다.
대학원에 진학해 후배 자리에서 선배의 자리로 바뀌게 되면, 내가 위치해 있던 후배 자리를 대신하는 그들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가 어떤 책을 보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럴 때면 마치 준비 된 듯이 읊조리는 것이 개론서에 충실하라는 대사이다. 예를 들면 내가 전공한 신학의 분과는 7개 정도의 분야인데, 조직, 구약, 신약 등에서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유통되고 있는 이론들을 잘 요약하고 정리한 개론서들을 보라는 것이다. 거기에 꼭 덧붙이는 한 마디가, 거기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이름들을 잘 외우고 익숙하라는 친절한 충고까지. 그렇게 되면 개뿔 아무 것도 몰라도 뭔가 알고 있어 보인다는 기술적인 조언까지 해준다.
나도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되면 거의 습관처럼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그 분야에 개론서적인 책들을 찾는 것이 내 모습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 마치 화장실에서 볼 일 안 보고 나온 기분처럼 영 찝찝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내가 지금 읽고 공부하는 것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이 갈 정도로 불안하기까지 하다. 반대로 그렇게 잘 정리된 개론서를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마치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아마 이런 사고 방식은 지리적으로 중앙이 아닌, 그리고 학문적 위치로서도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 공부한 나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어떤 책을 읽다가 이런 개론서에 충실한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굳이 후배들에게도 개론서를 읽도록 채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물론 개론서를 읽으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동안 그 분야에서 유통되는 지식 체계들에 대한 그야말로 체계를 가질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뭐 우스개 소리로 하면 어느 다리를 긁어야 할 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학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어디로 향해가야 할 지를 아는 것!
세상에 개론서만큼 재미없는 책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재미없는 개론서에 등장하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들을 숙지하는 것은 어지간히 엉덩이 무겁고 시간 많은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작업이다. 딱 깨고 개론서 제대로 읽은 사람도 많이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그러니까!
문제는 이렇게 개론서를 통해 그 동안의 학문적 흐름들을 알고 읊조리고 위치를 안 다는 것 자체가 그 시대의 지배 구조에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찬 처절한 사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대의 지배자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구조나 학문적 구조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박박 기어야 할 처세를 안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식민지적이고 피지배자들이 가지는 서글픈 사고 방식일까? 창의적 상상력이나 사고 없이 그저 흘러왔던 전통에 기대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의 위치를 잡아 가는 것이 얼마나 생산성 없는 투자인가? 거기에 개론서도 하나의 의견일 뿐인데 저자가 가진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수집되고 유포되는 것일진데! 마치 해답지인양 들고 다니며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까지!
이제 이런 개론서 인생은 살지 말아야겠다. 후배들에게도 개론서 권하는 선배는 되지 말아야겠다. 물론 후배들이 개론서 권해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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