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가 술의 제 맛을 느끼나보다. 그전 같으면 술 먹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개신교회를 다니면서 술을 입에 대는 것은 큰일 나는 줄 알고 있은 데다가 ‘목사의 가정이 어디 술을 마시느냐’는 게 아내의 지론 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아니 술의 맛을 아는 것 같이 보여 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 내 공(?)이 크다.

단둘이 감행한 지난 산행에서 찍은 '단풍나무 아래의 아내'

사실 어릴 적 우리 집은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인해 3일이 멀다하고 힘든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술만 취해서 들어오시면 집 식구들에게 술사오라고 큰소리치며 우리 식구들을 힘들게 하셨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가정을 이끌어가는 책임감에도 약했고, 모든 면에 무능한 분이셨다. 일전엔 아버지가 술 사오라고 큰소리치는 게 싫어서 동생들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켜 놓고 내가 그 자리에서 다 마셔 버린 일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술도 못 마시던 내가 한 자리에서 큰 4홉들이 대병(어른들은 기억할 것이다)소주를 벌컥벌컥 마셨으니 위장이 온전할 리가 있었겠는가. 그날 나는 소위 말하는 필름이 끊겨 버렸다. 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귀한 형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꼬박 하루 이상 잠을 잔 후 일어난 내 몸에서는 술 냄새가 펄펄 났던 그런 사건이었다. 그 후로 나에겐 위장병이 생기는 아픔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웬수 같은 술. 내가 입에 대나 봐라’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군대에 가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군 복무 당시 나는 교회 군종병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병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것이 동료들로부터 인정이 되어 내무반장이 되는 보기 드문 성과(?)를 이루었다. 내무반장이 되고 나니 내무반 전체를 이끌고 가야했던 나로선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술에 대해 종교적인 금기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으리라. 그러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술에 취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많이 알게 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사병들에게는 내가 인기였지만, 장교들에겐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 “저놈 저거. 교회 군종병이 저 따위야.”라고 말이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폼 잡았는데, 눈은 떳는지 감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술의 맛을 느껴보았지만, 제대하고 나니 술 마실 친구가 없어서 마시지 않게 된 것이다. 교회와 신학교가 내 생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 한 까닭이었다. 예의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한 잔 정도는 입에 대는 일이 간혹 있을 뿐 이였다. 그러다가 최근 2년 전부터 아내와 내가 술을 한 잔씩 하게 되었다. 처음엔 포도주를 사서 저녁밥 먹고 간혹 한 잔 정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수준이다. 가끔 저녁에 아내와 나는 술을 마시며 인생과 사랑과 일상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나보다도 아내가 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변한 게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고 술꾼으로 착각하지는 말라. 아내는 아직 술에 취하도록 마신 적이 없으니까). 아주 모범적이고 다소곳한 아내가 술을 마시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다가 지금은 못 먹던 맥주도 마신다. 아예 포도주를 담가 놓고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마시곤 한다. 그러면서 “이 포도주가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며 걱정도 한다. 최근 아내가 ‘단풍이 붉은 이유’라는 시를 썼는데 글쎄 단풍이 붉은 이유가 ‘밤새 이슬이라는 술에 취해서 그렇다’라나 뭐래나. 잘 알다시피 모 회사의 소주이름이 ‘참 이슬’이 아닌가 말이다. 아직 소주는 입에도 못 대는 아내이지만, 발상 자체가 재미있지 않는가.

그래도 좋다. 아내와 내가 이렇게 통할 수 있다는 게. 아내와 나의 자유스러움이 우리를 풍성하게 해준 다는 게 더 없이 좋다. 남들이야 ‘목사 부부가 저럴 수 있냐’ 라고 해도 좋다. 오늘 밤에도 아내와 내가 단 둘이 앉아서 오붓하게 한 잔 하고 기분 좋게 이글을 쓰고 있다. 예수께서 왜 그토록 마시기를 탐하면서(성경 속의 바리새인이 예수에게 한 표현) 사람들과 행복한 하나가 되려 하였는지 조금은 알 듯 하다.

두 사진을 섞어볼까요. 누구 맘대로. 작가 맘대로. "뾰로롱. 퓨전"

<아내의 시>

단풍이 붉은 이유

지은이 : 한바다

가을 산은 목마르다.

지난 계절 어느 덧 가버린 청춘이 아쉬워

그리도 목마르다.

목이 말라 벌겋게 타오른다.



가을 산은 목마르다.

가을 산은 목마르면

밤새도록 찬 이슬로 술에 취한다.

밤새 마신 술은

떠오르는 아침이 되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저 그렇게 붉다.



취한 가슴 가눌 길이 없어

산등성이에 올라 "야호" .

괜한 술주정에

한창 잠 자는 메아리만 깨운다.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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