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머리를 감을 때 샴푸도 쓰고 비누도 쓴다. 비누를 쓰는 사람은 주로 나와 아들 녀석이다. 샴푸를 쓰는 사람은 아내와 딸 녀석이다. 우리도 한 때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비누로 머리감고 식초를 써보기도 했지만, 머리가 긴 아내와 딸 녀석은 무리였던 것 같다. 냄새도 나고, 감기도 불편한데다가 비듬이 자꾸 생겨 가려운 탓으로 얼마 시도하지 못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나는 몇 해 전부터 비누로 머리를 감으며 독야청청하고 있다. (설거지를 할 때도 될 수 있는 대로 주방세제를 안 쓰고 물로서 해결하는 가상한 노력도 하고 있다.) 요즘은 아들 녀석마저도 샴푸로 감고 있는 바람에 나는 더욱 군계일학이 되어 버렸다.

▲더아모의 집 거실에 비치된 분리수거 통들. 투박해도 실용적으로 살자는 생각이 묻어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전에 내가 잘 알고 지내던 한 신문사 기자가 들려 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기자의 주변에 한 주부가 “우리는 천 귀저기를 쓰는 환경운동을 하고 산다”며 자랑해오더란다. 그러면서 종이 귀저기를 쓰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더란다.

그 사연인즉슨 주부들이 천 귀저기를 직접 세탁하는 것이 아니라 업소에서 천 귀저기를 수거해가서 한꺼번에 세탁한 후 각 가정으로 배달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주던 그 기자는 “웃기는 이야기죠. 자신은 환경운동 한다고 뻐기면서 천 귀저기를 쓴다지만, 그 수거된 천 귀저기 수 백 장을 한꺼번에 세탁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제가 필요하겠어요. 아이러니한 일이죠”라고 귀띔을 해준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 되새겨 볼 이야기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아무리 좋은 거라도 자발적으로 하도록 해야지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않는가. 좀더 넓혀 역사를 보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명목이 무언지 아는가.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타도하고,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켜 자유 민주국가를 건설하도록 돕는 다는 것이었다.

티베트를 침공한 중국이 내건 구호는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인 티베트를 현대화 시키고, 악질 부르주아로부터 티베트 민중을 해방 시킨다’는 것이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아직도 공공연하게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한 덕분에 근대화가 되었다고 망언을 해대질 않는가 말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타율과 억압에 의해서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아주 심각한 악이라는 것을 그들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거창한 이야기를 접어두고 우리 마을을 둘러보면 이렇다. 우리 마을은 시골이라 노인네들이 많고, 거의 쓰레기를 소각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음식쓰레기는 거름 더미로 재활용하니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더아모의 집에 비치된 문제의 샴푸와 비누.

노인네들이 평생 동안 길들여진 방식이라 쉽게 못 바꾸는데다가 나이들이 많으셔서 설명을 해도 잘 모른다. 그리고 당장 사는 데 불편함이 없으니 고쳐볼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꾸만 노인네들에게 잔소리를 하며 고치라고 할 수도 없다. 혹 앞에서 열거한 역사적인 예처럼 강압적으로 바꿀 재간은 더욱 없는 것이다. 아직 우리 더아모의집 역량이 부족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다.

조금씩 바뀔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작은 노력의 일환으로 더아모의집 거실에 분리수거 통 여럿을 비치해두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율적으로 바뀔 날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사실 안 바뀌어도 할 수 없지 않는가.

우리 옛 속담에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순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이지는 못한다.’는 게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속담이라 하겠다.

하여튼 우리 집에선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머리 감을 땐 비누도 쓰고 샴푸도 쓰게 될 거 같다. 이런 우리 집이 좋다.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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