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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찾는 사람과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김선주 님의 “탐루”를 읽으며
이병일 | 승인 2005.07.18 00:00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낙서인데, 특히 공공으로 사용하는 역이나 버스터미널 학교 등의 화장실에는 가끔씩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온 낙서도 있었습니다. (물론 안에서 사색을 즐기는 동안에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사색이 되기도 하지요.) 화장실 낙서 모음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 - 니체 -
“니체는 죽었다.” - 신 -
“둘 다 걸리면 죽는다.” - 청소부 -

니체에게서 참 복음에 대한 갈증을 읽을수 있다

   
▲ 김낙중 선생의 자서전 탐루(김선주,도서출판한울)
니체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신을 찾아서 거리를 헤매고 다닌 일화로 유명합니다. 니체는 “모든 신은 죽었다. 바야흐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바라고 있다.”라는 말로 (실존주의적) 무신론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무신론자로 취급되는 포이에르바하, 칼 맑스, 프로이트 등과 마찬가지로 그의 무신론은 당시 문명과 종교를 비판한 예언자적 진단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의 종교비판이 현실적 삶을 부정하고 생명과 육체성과 세계성을 긍정하지 않고 죄악시하거나, 현실도피적인 염세사상에 물든 종교를 비판한 것은 옳습니다.

그의 비판은 굳어진 교리와 생명력을 상실한 기관조직체로 전락하여 인간 생명의 발랄한 창조적 활동을 억압하는 기능으로 작용하는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또한 그의 맘속에는 참 복음의 모습에 대한 갈증과 참신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적 열정을 역설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눈물 가진 사람은 없는가? 김낙중 선생의 자서전은 곧 우리의 현대사

한국전쟁이 휴전한 직후에 부산 광복동 거리에는 ‘탐루(探淚; 눈물을 찾는다)’라고 쓴 등불을 들고 헤매고 다니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흰 옷을 입고 삭발을 하였습니다.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는가?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는가? 전선에서 피를 토하며 죄 없이 쓰러져가는 가난한 이 땅의 아들들을 위해 전쟁을 반대하며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없는가?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는가? 이 겨레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세계열강의 분할 정책을 반대하며, 진정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는가?”

하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승만 정권이 무력북진을 선전하는 것에 반대하여 평화통일을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행색을 보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였고, 경찰은 사상을 의심하면서 체포하여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 선생님”이십니다. 얼마 전에 그의 딸(김선주)이 김낙중 선생님의 삶을 중심으로 가족의 일대기를 “탐루(探淚)”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 책은 자녀들이 예의상 부모의 자서전을 출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내용은 “향린 40년”이 그런 것처럼, 한 개인과 가족의 삶을 그리면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선주 님은 부모님의 일기와 모든 기록을 꼼꼼하게 읽고 정리하였습니다.

멧돌 한짝을 찾아헤멘 태몽처럼 남북화해를 위한 고단한 삶 - 네 차례의 투옥

김낙중 선생님의 태몽이 한 짝뿐인 맷돌의 짝을 찾으러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으나 결국 찾지 못했던 것처럼, 그의 삶은 남북 분단의 모순을 온 몸으로 받아 안고 남북의 평화와 화해(통일)를 위해 고단했습니다.

1955년 6월 25일에 조국 통일을 위해 북한의 현실을 파악하고, 스스로 만든 ‘통일독립청년고려공동체수립안’을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임진강을 건너 월북하였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남한으로 돌아온 후 네 번이나 간첩활동 협의로 옥고를 치루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 50년 전 혼자 헤엄쳐 건너갔던 임진강 앞에서(사진 오마이뉴스)
1956년 이후, 1962년, 1973년 그리고 1992년에 그는 수세에 몰린 독재정권의 공세적 정국 전환용으로 간첩협의를 받아 구속되었습니다. 1962년에는 5.16 직후 권력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국민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 1973년 10월유신 직후에는 영구 집권의 야심을 은폐하고 반북안보제일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1992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하고 자신들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조작된 ‘간첩단 사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갖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려고 애섰습니다. 62년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을 구형받고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검은 것을 검다고 하고 흰 것을 희다고 말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사형당하는 것을 서러워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인간도 아니며 땅에서 솟은 인간도 아니기에. 나를 이 세상에 낳아 키운 이 민족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은 머지않은 내일, 지금의 나와 똑같이 생각하며 똑같이 행동할 무수한 생명들을 배출할 것이기에, 역사는 오늘의 이 재판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현명한 판결이 있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자른 새끼손가락

김 선생님이 얼마나 자기에게 철저하고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란 것은 그의 손가락이 보여줍니다. 청년 시절에 그는 “나의 연애의 상대자는 이십억의 인류, 동포 또 전 생명체 그것이요, 나의 결혼의 상대자는 단지 진리뿐이다.”라고 일기에 적으면서 왼쪽 새끼손가락의 지장을 찍었는데, 만일 자신이 그 결심을 지키지 못하면 무인을 찍은 그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물넷에 같은 동아리의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고 청혼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냈습니다. 청년시절에는 누구나 그러한 희망을 품을 수도 있고 결심도 하게 되지만 조금씩 세상에 물들면서 변해가는 데, 그렇게까지 철저하지는 못합니다.

김 선생님은 청소년 시절에 폐결핵을 심하게 앓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곧 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며, 살아있지 않다면 죽음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그 누구의 삶도 앗아가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말년에는 네 번의 간첩협의로 사형을 구형받으면서도 살아 있는 이유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어찌하여 하느님은 나를 살려 두시는가?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살려두시는가?’ 그는 한평생을 ‘분단’이라는 바위를 향해 줄기차게 계란을 던졌습니다. 질기디 질긴 고집과 신념으로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완강한 분단이라는 바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어느 덧 변화한 남과 북, 그 속에 눈물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분단의 장벽과 지배자들의 선동으로 조작된 적대감은 환갑을 지나면서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남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이 북한이라고 믿던 사람들이 이제는 북한은 함께 협력해야 할 한 민족이고 오히려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 미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남과 북의 적대감과 분노의 감정이 누그러지고 누구나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아무런 제제나 처벌 없이 이야기하기까지 수십 년이 필요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경제적 교류를 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차츰 화해의 물꼬를 트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을 문제 삼아 이러한 화해를 방해하고 있지만, 이제 남한의 민중들은 그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저절로 된 것도 아니고, 권력자들의 용단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눈물을 가진 사람을 찾던 청년의 열정으로 한 평생 자신의 삶을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바친 생명들의 희생으로 된 것입니다.

선생을 통해 돌아본 나 - '무엇을 꿈꾸며 살 것인가

   
▲ 김낙중 선생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김낙중 선생님과 그 가족의 삶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 꿈꾸며 살 것인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처럼 일찍 죽임을 당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아직까지 나를 살려주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철저하게 살수 있는가?’ 이러한 고민은 끝임 없이 계속될 것이고, 또한 제가 속한 공동체로 확대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모여 있는가?’ ‘강남향린이 이 땅에 세워지고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일까?’

지난 7월 10일에는 평택에서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한반도 전쟁반대, 7.10평화대행진”이 있었습니다. 향린교회와 강남향린교회도 참여해서 몸과 마음으로 싸우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작은 출발입니다.

매향리 미군사격장 폐쇄나 부안 핵폐기장 반대도 시작은 작았지만 우리의 힘과 의지로 이뤄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지만 그것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비록 내가 거두지 못할지라도 눈물로 씨를 뿌려봅시다

김낙중 선생님이 전쟁으로 쌓인 적대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평화를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을 찾았던 것처럼, 간절함으로 우리의 의지를 모을 때에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능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보는 사람입니다. 작은 씨앗 속에서 미래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 미래의 희망은 오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철저할 수 있는 의지를 줍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것은 간절함으로 치열한 삶의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뿌린 것을 내가 거두지 못할지라도, 내가 뿌린 열매를 내가 먹지 못할지라도, 기쁨을 누릴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기쁨으로 단을 거둘 누군가를 위해서 우리는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봅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도록........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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