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신앙이라면 황 교수 연구를 오히려 반대해야 맞지 않니?”

얼마 전에 교회를 오래 다닌 친구와 황우석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아무래도 황우석 교수에 대한 철썩 같은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황우석 교수는 그래도 세계적인 과학자인데 언론에서 그렇게 죽여서야 되겠냐고, 그러면 우리나라도 같이 자멸하는 게 아니냐고 항변하였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로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장은 아픔이 있더라도 투명한 진실에 기반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친구가 보수적인 기독교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대뜸 다음과 같이 다시 얘기를 꺼냈다.

“원래 너의 신앙적 기준이라면 황우석 교수가 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오히려 반대해야 맞는 거 아니니?” 라고 말해주자, 그 친구는 나의 갑작스런 이 질문에 흠칫 놀라면서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 그렇지”라고 얼버무리듯 얘기한 적이 있다.

보수적인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부터 반대해야 그 보수적 신앙의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알다시피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낙태나 인간복제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에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이 그 연구 단계에서부터 허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점에서 같은 보수주의자라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보다는 적어도 매우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부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그 자체에 대해 이미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잖은가.

황우석 사건에 대한 보수 기독교 진영의 지지 혹은 침묵

황우석 사건이 애초 PD수첩을 통해 터질 때도 여론조사를 보면, 거의 전국민의 90퍼센트가 황우석 지지에 속했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보수 기독교인들도 없잖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기독교 진영은 이번 황우석 교수 연구 사태에 대한 입장표명을 공식적으로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나는 그래서 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이미 논리나 이성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결국 더 근원적인 경험의 차원인 우리 민족 <정서>라는 한풀이와 관련하며, 그렇기에 거대한 황우석 지지의 배경에는 한반도 국민들의 집단무의식이 왜곡되고 굴절된 한풀이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이미 본인의 다른 글에서 진단한 바 있다.

솔직히 생각해보라. 철저한 보수 기독교인이라면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반대되어야 그 신앙의 일관성이 온전히 설명된다. 반면에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한 논란에 있어 진보 기독교인 사이에선 다소 입장이 분분하고 갈린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금번에 나타난 황우석 교수 연구의 논문진위 여부에 대한 의혹규명에 대해선 진보 진영은 당연히 진실 규명 입장에 서 있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언론개혁기독교연대에서 그나마 제목소리를 내준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습게도 황우석 사건에서 나타난 보수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암묵적 지지 또는 거의 별말 없는 침묵이었다. 평소에 북한 인권에 대해선 왜 그렇게 침묵하냐고 방방 대던 한기총이나 대형교회 목사들은 지금 전국민들의 관심사인 이번 황우석 사태에 대해선 공식적으론 거의 아무런 얘기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한기총은 주류 다수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도 모른다. 괜시리 한기총이 나서서 '황우석 교수 연구는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발표했다가 금번 MBC방송국의 <PD수첩> 처럼 집단 이지메를 당할까봐 너무 겁이 나서 침묵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평소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언론인 MBC가 이참에 전국민들의 비난의 화살을 받고 또한 오마이, 프레시안, 한겨레 같은 진보 언론들을 죽이는 것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지도 역시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간에 이것은 참으로 일관되지 못한 신앙이며, 매우 이중적인 작태가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대신에 이들은 현재 엉뚱하게도 사학법에 대해선 한나라당과 손잡고서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를 해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학법에 대한 진보 기독교 진영의 침묵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학법에 대해선 역으로 진보 기독교 진영이 침묵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종교 진영의 단체와 손을 잡고서 사학법 반대에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경인데, 이에 대해 한국의 진보 기독교 진영을 대표한다는 KNCC는 아직 아무런 논평이나 별 얘기가 없다.

짐작하기에 아마 속으로는 내심 이번의 사학법 통과를 지지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을 줄로 생각되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현재 우리나라의 사립학교의 현실에서 볼 때 보수든 진보든 기독교 자체가 사립학교 재단과 관련되어 있는 불가피한 현실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다면 진보 신앙인의 입장으로선 한나라당과 한기총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선 분명한 브레이크를 걸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는지. 기독교 자체가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고 해서 아무런 얘기조차 없이 수수방관하고만 있다면 이것 역시 내가 보기엔 좀 이중적으로 느껴진다.

솔직히 우리 사회의 일반인들이 이번 사학법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기독교 진영에서 한기총만 저렇게 날 뛸 경우, 기독교는 이번 사학법 국회 통과에 대해선 대부분이 반대하는 것으로도 비춰질뿐더러, 자기 종교의 교세만 생각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물을 때 정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한기총이 교회협을 향해 너네들은 왜 또 침묵하냐고 따져 물을 경우 뭐라고 말해 줄 것인가.

깨어있는 기독교라면 한기총에 대한 전선을 형성함이 더 옳잖은가

사학재단의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작년에 종교의 자유를 외친 강의석 군 사태도 생각해본다면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반적 가치들과도 충분히 발맞춰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진보 기독교 진영에게도 촉구하고 싶다.  기독교는 언제나 더 큰 대승적 기독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고 말이다.

물론 이번에 통과된 사학법도 그렇게 만족스런 것도 아니다. 특히 막판에 개방형 이사제도를 민주당 때문에 4분의 1로 축소ㆍ수정되어 통과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한기총과 한나라당이 이것마저도 역사를 더 퇴보시키기 위해 어이없이 저렇게 발광하는 것에 대해선 적어도 건강한 일반성에 기초한 기독교인이라면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적어도 우리의 태도는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서조차 이중되지 않게 또는 모호하지 않게 딱 부러지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해관계와 손해득실을 자기 교세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부디 <하나님 나라>에만 맞추길 바란다.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도 불리한 말이기 때문에 안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 중심주의>가 아닌 <자기중심주의>로 전락될 따름이라고 본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셨고, 이것 때문에 유대교 율법 체제를 더 고착화하려는 바리새인들과는 종종 부딪히는 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하지 못한 사립학교 교육의 시스템으로 인한 그 폐해들은 결국 전체 한국 교육 현실의 부실함에도 기여할뿐더러 교육을 받는 우리 아이들에게까지도 돌아갈 수밖에 없잖은가.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와 약자를 위한 정의를 생각한다면 나는 현재 시점에선 저 한나라당과 작당한 한기총과도 전선을 형성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점에서 깨어있는 진보 기독교 단체라면 이번에 통과된 사학법에 대해서도 분명한 논평을 표명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그 모든 소리와 발걸음들에 힘을 실어 주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참으로 악이 가장 원하는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정강길  minjung21@par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