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열린 세계 에큐메니칼 여성포럼에 다녀왔다. 지금까지 숱한 국제회의와 여성모임에 참석하였지만 이번에는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여성의 문제를 논하고 여성만으로 구성된 모임에 남성들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여성보다 더 여성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바야흐로 인간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변화하게 될 새 시대가 눈앞에 닥친 상황을 보면서, 다가오는 미래가 환한 햇살 아래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여남의 관계의 문제는 고금을 막론한 화두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관계성 속에는 우리의 정형적인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고, 이것은 또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생물학적 제약 속에 갇혀 살게 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였던 것이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이제는 더 이상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탄식이 지구촌 곳곳에서 흘러넘치고 있었고, 제도적인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과 가치관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깨달음이었다. 심지어는 기독교가 없어지든지, 자신이 기독교를 버리든지 해야 할 것이라는 강한 어조로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처럼 각자가 처한 상황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다보니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공동체에 헌신하면서 사랑을 나눔으로써 연대하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억압과 패권, 상극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조화, 협동과 평등, 상생의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자가 남성 우위의 사상인 데 반하여 후자는 여성 우위의 시대를 예견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종교와 영성의 지도자는 거의 80퍼센트가 여성이고, 여성들이 대거 주역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여성이 없이는 아름다운 사회를 희구할 수 없고, 여성의 가슴이 없이는 사랑을 배울 수가 없으며, 어머니 지구를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영성을 여성만이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는 에큐메니칼 단체에서 교회여성을 위한 운동을 펼치는 한가운데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방향짓고 있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여성신학으로의 나들이를 멈출까 한다.

결국 교회여성들 모두는 나 자신이 영적인 존재임을 자각하고, 나아가 이웃들 또한 영적 존재임을 알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성과 남성은 더 이상 서로 상반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존재의 옷을 입고 있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각과 소명을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키고 실천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상생과 연대, 협력의 기운들이 살아나 우리의 가슴을 감동으로 울리게 해줄 것이다. 좀더 멋지게 공동체에 헌신하면서 이웃과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삶의 목적을 실현할 것이다. 이미 여성 지도자들이 이 길을 보여주고 있으며, 많은 남성들이 여성과 연대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교회여성들이 마음을 열어 이를 수용하며 자신의 의식고양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대안적 미래 교회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이순임  soonim_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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