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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사태와 7.10 평택현장에서 목격된 사탄교회의 폭력, 국가의 폭력, 제국의 폭력 그리고 우리 안의 폭력
정강길 | 승인 2005.07.20 00:00

구원하는 비폭력에 대한 신화

월터 윙크는 그 자신의 저서인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를 지적한 바 있다. 그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살아있는 신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은연 중에라도 막강한 힘이 있어야 구원이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선과 악의 구도를 가진 영화에서도 종종 악을 응징하는 힘 센 슈퍼맨 같은 주인공들을 보통 인간인 우리들은 열심히 응원하는데, 그 이면에는 그러한 힘에 대한 동경이 은근히 깔려 있다고 하겠다.

이른바 힘이 우리들을 구원한다고 보는 생각이 우리 자신을 무의식에서부터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세계 강대국들이 말하는 평화는 폭력적 악에 대해 같은 방식인 더 큰 폭력적 힘을 확보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군사병법 격언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한참 뒤에나 알았다. 다시 말해 평화는 언제나 힘에 대한 축적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원리가 바로 현재의 전체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무섭고도 끔찍한 사탄의 원리요, 사탄의 강력한 현존적 실체라는 사실을! 이것은 문명이 열리기 이전의 아득한 태고적부터도 있어 왔던 것으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수천 년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수없이 예증되어 왔던 사실이기도 하다.

사탄이 활개를 치는 오늘의 역사적 현장들 - 사례 1. 광성교회의 폭력사태

나는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광성의 폭력 사태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착잡하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모든 것을 힘으로 제압하고 행사하며 소유하려는 욕망들의 분출들만이 난무한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도 고백한다. 이에 대해 어찌 기독교인이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얘기일 뿐이다. 저들이 왜 저럴 수가 있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힘을 갖기 위해서다! 저들에게는 그 폭력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 사진은 사설경호원과 방탄방패의 힘으로 광성교회 제직회를 점령한 이성곤측, 윗줄 가운데쯤에 방탄방패에 의지한 이성곤이 보인다. ⓒ 뉴스앤조이 신철민
저들은 자신들이 더 크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예수를 부른다. 실제로 저들이 믿는 그 하나님과 예수님의 실체는 곧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들의 진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며, 실제로는 월터 윙크가 명명한 대로, <폭력이라는 이름의 종교>라고 봐야 가장 정확한 맥락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의 그 실체는 곧 '힘'(force)인 것이다.

아마도 광성의 사람들은 이런 나의 얘기에 대해 의식적 차원으로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의식 이전의 거의 무의식적 차원에서부터 지적하고 싶다. 즉, 나는 지금 그것이 잘못된 이신칭의 신앙이든 보수신앙이든간에 그것보다 더욱 깊숙한 차원에서 메스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바로 저들의 무의식을 지배함으로써 의식마저 교란하고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당연히 모를 수밖에.

사례 2 -7·10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에 대한 폭력진압 사태

지난 7월10일 평택 대추리 황새울 벌판에서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반도 전쟁반대를 위한 국민들의 평화대행진'이 있었다. 전국에서 1만2천여 명 가까이 운집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전경들 역시 셀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병력들을 이끌고 왔었다. 아마도 평택 뿐 아니라 수도권 병력들은 죄다 끌어모은듯 싶다. 그 날 국민대행진측은 '인간 띠잇기'로 평화적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는 진보측 기독교의 몇몇 목사님들도 참여하셨다.

하지만 그 날 그 자리에 사탄과 마귀의 그림자는 어김없이 드리워졌다. 당시 진압을 지휘한 지휘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참고로 <오마이뉴스>와 <민중의 소리> 사이트에 7·10 평택 현장의 동영상이 올려져 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광기의 음성인데, 거의 사람들을 죽여라, 라는 식으로 몰고 갈 정도로 이성을 잃은 자의 것이었다. 당연히 부상자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 7·10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의 평화대행진에 참가했던 한 여성이 거칠게 진압하는 경찰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민중의소리)
그 날 집회에 참가했던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님의 얘길 들어보면, 그 지휘관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실제 전투를 하듯이 전경들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목사님의 마음은 한없이 억울하고 분하고 아프셨을 것이다. 어떻게 <뉴스앤조이>는 그 날의 7·10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 현장에 대해 아무런 내용의 기사 하나 없는 것인가. 지금까지도 많은 언론들이 떠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례 3 -세계를 무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미패권주의의 횡포

동시에 그 날 평택의 현장에 드리워진 그 폭력의 마귀는 더 깊숙이 근본적으로는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의 이기적인 횡포와 폭력과도 맞닿아 있는 거대한 것이다.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은 더 큰 힘을 지니기 위해서 세계의 곳곳에 개입한다.

미국의제3세계정책과군사개입의만행들참조.
(http://freeview.org/jboard/?p=detail&code=board6&id=20&page=1)

어이없게도 허준영 경찰청장은 미군기지의 울타리는 '국경선'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누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었을까? 누가 한기총으로 하여금 시청 앞에서 미국을 숭배하도록 만들었는가? 당연히 사탄의 세력일 것인데, 우리는 그 어둠의 세력이 언제나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지배체제의 권세를 덧입고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고, 현재의 부시가 저지르는 제국의 폭력 역시 당연히 세계 곳곳에 또다른 폭력들을 파생시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힘에 대한 숭배'에 따른 외교 전략은 당연히 다른 나라들에게도 '힘에 대한 숭배'를 가지도록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다.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에는 세계 안의 생명들을 죽이려는 이러한 사탄의 음모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들에겐 북한 역시 결국은 때려 부숴 정복해야 할 땅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라고 하겠다.

광성의 폭력집단, 멸공북진의 한기총, 미국의 부시가 예수를 믿는 가장 근원적 이유

하나님 역시 세계 안의 깨달은 자들과 함께 희망찬 새 역사를 일구어 나가듯이 사탄의 세력들 역시 세계 안의 혼미하고 무지몽매한 자들과 함께 어둠의 역사를 세계 안에 심어놓는다. 그러한 사탄이 우리 안에 가장 깊숙이 자리하는 지점이 곧,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를 동경하는 그 신앙에 있다. 세계를 좀먹고 전체 생명을 죽이고 있는 이 거대한 사탄의 음모를 발아하는 씨앗은 오늘 우리에게도 저마다 함께 품어져 있는 것이다.

혹시 멍청한 부시와 네오콘, 그리고 이들과 죽이 짝짝 맞는 남한의 한기총 그리고 금번의 광성 폭력집단 등등 이들이 예수를 믿는 가장 심층적인 이유를 혹시 아는가? 예수는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사랑의 메신저이기에? No!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 정답은 예수가 온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힘 센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적인 전능자이며, 무소불위의 왕으로서, 그것도 <왕 중 왕>King of King에 해당하는 막강 파워의 존재다.

   
▲ <힘이 곧 정의>라고 신앙하는 부시와 네오콘의 전쟁 ⓒ 엠파스 검색
가장 힘 센 존재자를 의지하고 믿음을 통해서 나 자신의 은근한 폭력성은 이제 이를 통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가 은밀하게 마련되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중세 마녀사냥과 종교재판들, 온갖 종교전쟁 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할 것 없는 근본주의 신앙인들의 극렬한 행태들과 21세기 들어서도 악의 축을 응징하겠다고 말하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까지 죄다 여기에 기저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나의 언급에 대해 내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그 분의 희생적 사랑과 내 죄를 대속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답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안다. 또한 예수는 당연히 '킹 오브 킹'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 자신의 신앙고백을 말한다면야 당연히 예수를 그렇게도 보지만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그가 왕이여서는 아니다. 그 분이 가장 힘이 센 우주통치자이기에? 물론 이것도 굳이 틀린 얘긴 아니라고 해도 정답은 못된다.

진정한 힘과 권위는 섬김의 자세와 설득적 합리성으로부터

예수의 주되심은 그 분이 가장 힘이 센 '왕 중 왕'이라서가 아니라 실은 그 분의 ‘왕 되심의 방식’에 있다. 즉, 예수가 악을 제압하는 슈퍼맨적 힘은 타자를 밀어내고 강압하는 그러한 힘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수는 그러한 힘에 대해 끝까지 싸우셨던 분이었다. 예수의 왕 되심은 놀랍게도 그 분이 '종'이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었다는 놀라운 신앙의 역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예수의 슈퍼맨적 힘은 우주적 절대파워의 전능성이 아니라 놀랍게도 낮은 자와 함께 했던 그 <섬김>diakonie의 도(道)에 있다. 즉,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바로 '구원하는 비폭력에 대한 신앙'으로의 전환에 예수 신앙의 근본적 결정체가 있으며, 실제로 이것이야말로 세계 안에 희망찬 역사로 창조하는 신성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시청 앞에서 북한 정권을 때려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한기총이나 광성교회 분란의 폭력사태, 7·10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현장의 폭력진압 그리고 미제국주의가 보여주는 힘의 외교에서 나타나는 곳곳의 놀라운 사탄의 역사를 우리는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탄의 역사를 물리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뿌리 깊고도 힘든 것이다. 바로 서로를 섬기는 자세로 합리적이고도 설득적인 방식으로 언제나 상대방과 관계할 경우엔 사탄은 자기의 힘을 제대로 쓰질 못한다. 그러한 방식이 그려내는 삶의 패턴 혹은 삶의 스타일을 두고서 이름하야 우리는 '사랑'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피흘리게 만드는 영적 존재

누누이 말하지만 사탄에 대해 생각하기를, 예배 시간을 방해하거나 기도 중의 잡념 혹은 이를 훼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심령적 존재라기보다 그러한 차원마저 넘어서 좀더 깊게 눈을 뜨고 들여다보길 바란다. 사탄이란 존재는 세계 안에서 뚜렷하게 생명을 피흘리게 만들고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이 곧 사탄이 의도하는 일인 것이다. 사탄의 임무는 생명 세계의 박멸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실제로 피흘리게 하고 죽이게 만들었던 국가보안법이 사탄의 흉물스런 예술품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5·18 광주의 생명들을 무참히 죽여버린 전두환 정권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었던 당시 유명 목사들의 정체야말로 사실상 <사탄교>의 종교지도자임을 나는 감히 선언하는 바이다. 오늘날 <적그리스도>는 오히려 적반하장격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이미 기독교 안에 강력하고 은밀하게 스며든 채 지배하고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폭로하는 바이다.

   
▲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앙을 정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먼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사탄은 바로 그 틈새에 기거하면서 그 존재를 지배하고 교란하여 세계 안에 온갖 생명들을 죽이도록 이끈다. 지금도 부시와 네오콘들의 신앙은 '힘이 곧 정의'라고 믿고 있다.

사탄의 역사는 설령 우리의 신앙이 '예수 신앙'이라 불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힘을 숭배하는 신앙의 패턴과 삶의 스타일을 보여줄 경우엔 여지없이 이미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바로 그때 믿는 '그 예수'는 본래의 '예수'가 아닌 놀랍게도 '사탄'이란 점을 말이다.

(사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앞서 말한 뉴욕 오번대학의 성서신학자 월터 윙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한국기독교연구소, 2004)을 꼭 권한다. 저자는 30년을 이 분야의 연구에 몰입했던 사람이며, 이 책은 온갖 찬사와 기독교 학술상을 받았을 만큼 '명저 중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

정강길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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