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이날 아침에 여인들이 경험한 이 일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이날이 부활절 아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천년이라는 시간을 접어두고, 지금 우리가 여인들이 있는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았고, 십자가에 내려지고 서둘러 돌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삼일(정확하게 하루 반) 후에 무덤에 찾아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은 절망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고, 무덤에 있어야 할 시신이 사라진 것은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마지막이면서 원(原) 마가복음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뛰쳐나와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면서 넋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왜냐하면(gar)” 원래의 마가복음은 16:8로 끝나는데, 이후에 부가된 부분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단어인 gar는 이유, 설명, 추측, 계속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접속사입니다.
접속사로 끝나는 것을 “열린 끝"(open ending)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앞에 여인들이 벌벌 떨면서 넋을 잃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고, 여인들이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이후의 상황을
추측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전체를 통하여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예수님의 활동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활동이 어떻게 계속 되고 있는지를 상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부활은 하느님 나라 제시일 뿐 완성은 아니다
마가복음이 열린 마무리로 되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열린 마무리는 마가에 의한 복음,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구원의 길이 아직도 완성되거나 성취되지 않은 “열려진 끝"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생 자체가 하나의 종지부가 찍혀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새로운 삶을 건설하는 앞선 자의 길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 날과 시간을 정하여 과거의 사건으로 기념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참여의 영역이며, 따라가야 할 길이 될 뿐입니다.
부활한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보다 앞장서서 갈릴리로 가는 사실에서 경험됩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현장입니다. 마가는 1:1-8; 6:14-29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앞선 자임을 밝히고, 또한 부활 이야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대리자 예수님이 제자들의 앞선 자임을 천명합니다.
하느님의 대리자, 사람의 아들 예수님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람됨의 회복의 길을 앞장서서 건설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갈릴리의 삶에 참여할 때에 비로소 그들은 부활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마가복음의 제목인 “복음의 시작”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절망적인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삶을 위한 해산의 고통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들 - 예수님을 따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그 죽음과 부활에 함께 참여하도록 초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제시할 뿐, 그 완성을 안겨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국악찬송 “갈릴리로 가요”(88장)는 마가복음의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같은 곳에
다시 본문의 마지막 절을 읽어봅시다. “그들은 무덤에서 뛰쳐나와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면서 넋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여기에서 벌벌 떨면서 넋을 잃은 상태는 tromos(떨림, 떠는 것, 공포, 두려움, 전율)와 ekstasis(정신의 이동, 얼빠짐, 무아경, 황홀, 경악, 정신착란)라는 단어로 묘사됩니다. 이는 절망 속에서 극도로 두려워하여 얼빠진 것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인들의 상황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단어인 gar와 열린 마무리의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시간이 흘러 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여인들이 두려움과 절망으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면,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기독교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열린 마무리의 “그리고 그 다음에는”에서 암시하듯이 그 절망의 상황을 뚫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여인들의 희망에서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빈 무덤 이후의 일을 알지 못하던 여인들에게 그 상황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갈릴리로 돌아가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희망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절망과 희망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우연과 필연의 차이를 말할 때와 같습니다. 우연과 필연의 상황은 어떤 것입니까?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그 원인과 결과를 알지 못하면 우연이라고 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알고 있을 때에는 필연이라고 합니다.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루쉰은 《고향》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구겨지고 더뤄워진 '나'라도 여전히 소중한 가치 지녀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미래가 절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을 당리당략만을 위해서 싸우다가 장기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를 풀지 못하니까
자기들이 가진 힘으로 약자들의 요구를 짓밟는 모습을 볼 때<비정규직과 쌀 개방>, 힘 있는 나라의 패권에 휘말려 우리 민족의 일을
자주적으로 계획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을 볼 때<이라크 파병과 평택미군기지 확장 이전>, 우리의 미래가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아가며 싸우는 농민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의 처절한 외침이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절망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직장이 불안정할 때에, 당장의 삶의 어렵고 피곤할 때에 그 순간순간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남은 사람들에게 대한 걱정은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을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현실 속으로 끌어내릴 때 희망이 보입니다. 희망을 거스르는 희망, 모든 희망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붙들고 놓지 않을 때, 이 희망은 우리에게 상황적인 압박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줍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존재함을 가르치며 사랑은 하느님이 선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지만,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보는 사람은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절망의 끝에서 갈릴리로 돌아온 여인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꿈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희망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어느 대학교수가 강의 도중 갑자기 10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거 가질 사람 손들어보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지요. 그걸 본 교수는 갑자기 수표를 주먹에 꽉 쥐어서 꾸기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이거 가질 사람 손들어보세요.” 그랬더니 이번에도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또 그걸 다시 바닥에 내팽겨 쳐서 발로 밟았고, 수표는 꾸겨지고 신발자국이 묻어서 더러워졌습니다. 교수가 또다시 물었습니다. “이거 가질 사람?” 당연히 학생들은 손을 들었습니다. 그걸 본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꾸겨지고 더러워진 10만 원짜리 수표일지라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군요. ‘나’라는 것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꾸겨지고 더러워진 ‘나’일지라도. 그것의 가치는 전과 다르지 않게 소중한 것이랍니다. 실패하고, 사회의 바닥으로 내팽겨 쳐진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치는 어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랍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의 미래를 하느님께 걸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우리는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올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지금 나의 상황을 바라보면, 절망이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두운 밤에 풍랑을 만난 배처럼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절망스러운 일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먼저 자기를 사랑하십시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하느님
안에서 현재를 누리십시오. 한 순간순간의 삶을 사랑할 때에 절망은 희망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질 것입니다. 절망은 밤을 보고 캄캄한 어둠을
말하지만, 희망은 밤을 보고 다가올 밝은 아침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절망은 빈 그릇을 보고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지만, 희망은 빈 그릇을 보고
새로 담길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2005년의 한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면서 희망을 만드는 사람으로 2006년을 맞이합시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0대300에 씁쓸해 하는 동료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