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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진영,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신학적 보수와 사회참여 강조의 중도 진영인 '복음주의'라는 용어의 불분명성
정강길 | 승인 2005.07.20 00:00

(* 이 글은 '복음주의'라는 용어의 불분명성과 이러한 진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으로, 각기 도식화해서 나눈다는 것의 위험성은 알지만 그냥 대체적인 성향으로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준다면 좋을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복음적'이라고 말한다. 이 '복음적'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성경적'이라는 용어와 동의어로도 사용되곤 한다. 그러면서 한국 기독교 안에선 대체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기독교 진영을 소위 '복음주의'라는 용어로서 흔히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장신측 계열의 신학자들이 주로 그렇게 쓰기도 한다.

<복음주의>라는 표현의 불분명성

누군가는 말하기를 한국의 보수, 온건(복음주의), 진보의 비율을 6:3:1의 비율로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먼저 '복음주의'라는 용어의 모호성부터 짚고 넘어가자. 아래 인용한 글은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 김경재 교수의 글이다.

"한국 신학계나 목회현장에서 가장 불분명하게 사용되는 어휘 중 한 가지가 '복음주의'라는 단어다. 유럽신학계에서 '복음주의 신학'이라고 말할 때는 가톨릭 신학에 대비하여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곧 개신교 신학 진영 일반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에서 태동하고 성장해온 오순절 운동전통 및 교회성장론적 선교신학 써클에서는 대체로 성령은사, 성경권위, 선교사명, 그리고 교회성장을 강조하는 신학적 운동을 말할 때 '복음주의'라고 칭하면서, 굳이 세계교회협의회(WCC) 신학적 노선과 차별하는 신학표지로 사용되곤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신학자 중에는 근본주의적 보수 정통신학, 자유주의적 신학 및 진보주의적 신학운동을 견제하면서 신학적 중용의 길을 걷는다고 자부하는 신정통주의 신학 입장(주로 칼 바르트 신학 계열)을 '복음주의적 신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점을 말하자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자기들이 수용하고 지지하는 신학적 견해가 가장 성경적이고, 정통적이고, 건전하고, 사도전승의 정통신학을 이어받는 신학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신학적 특권용어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도 좋은 용어 '복음주의'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한국 교계와 신학계에서 지극히 불분명함으로, 교통 정리되어 안정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신학적 전문용어로서는 모호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경재, '한국신학의 태동과 흐름',『기독교사상』2002년 2월호, 대한기독교서회 中에서)

'복음주의'라는 용어보다 '온건주의'라는 표현이 좀더 적절할 듯

위의 글에서 보듯이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사실상 정확한 신학적 표현으로서도 인정을 못받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일반적으로 온건한 신학 노선 계열을 가리켜 대체로 '복음주의' 진영이라고 워낙 관행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냥 쓰는 것뿐이다. 보다 알맞은 뜻으로 굳이 말해야 한다면 나는 '온건주의' 진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더 적절하다고 본다.

즉, 보수, 온건, 진보 정도로 나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온건주의 진영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적인 '중도 진영'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에도 일정한 관심을 보이는 다소 유연한 입장에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인지 소위 말하는 '기세(기독교세계관) 논쟁'도 유달리 이 진영에서만 활발할 뿐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독교의 정통주의와 세계참여(=사회참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붙잡고자 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물론 진보진영에선 복음주의권이 말하는 기세 논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않을 뿐더러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볼 때,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권의 기세 논쟁마저 매우 우습게 보는 맥락은 성서무오설 혹은 축자영감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와 그에 따른 역사비평적 성서공부의 부재가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즉, 성경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순과 오류에 대해선 아무런 별 말도 없이 그냥 쉽게 '성경적 세계관' 운운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볼 때도 그러한 논의들은 들꽃향린교회의 김경호 목사님이 하시는 '성서학당'보다도 훨씬 못미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문제는 여전히 심층에서 모호하게 남아 있는데도 별다른 기초 고찰 없이 곧바로 복음과 세계관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이러한 온건주의 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여전히 보수신학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한국 사회에 정직한 도덕성을 일깨우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진보적 사회운동에 일정한 관심을 가지다가 아예 진보진영으로까지 눈을 뜬 사람들도 있다.

요컨대, 한국에서 사용되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복음 자체를 표방하는 걸로 평가되어서 '복음주의'라기보다는, 보수와 진보에 걸쳐 있는 그 어떤 중도 진영의 의미로서 쓰고 있을 따름이며, 그렇기에 한국을 넘어 외국에 가서도 널리 거론될 수 있을만큼 정확하게(혹은 학문적으로도) 쓸 수 있는 표현으로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온건주의'라는 용어가 오히려 더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지만, 복음주의든 온건주의든 그 의미의 진정성으로서 이미 서로 이해되고 통용되고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 어떤 표현을 쓰든지 상관은 없다고 하겠다. 문제는 그 의미의 진정성을 모른 채로 그러한 용어가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경우를 얘기하고 있는 것뿐이다.

흔히 크게 보수와 진보 진영을 둘로 구분할 때 에반겔리즘과 에큐메니즘이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어떤 면에서 에큐메니즘이 에반겔리즘과 다른 것으로 이분화되어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참 우습게도 여겨질 때가 있다. 사실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을 복음적으로 생각하고서 할 뿐더러, 오히려 보다 더 복음적이라고 보고 있잖은가.

개인적으로는 복음주의 진영이 신학은 정통 보수를 고수하면서 실천은 진보일 수 있다고 보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보며, 그러한 연유는 사유의 불철저성이 빚어내는 '과정상의 혼재된 중간 담론의 진영'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물론 혹자는 괜찮은 복음주의권의 인사로서 흔히 손봉호 교수나 이만열 교수를 예로 들기도 하지만, 이런 얘긴 또다른 차원의 논의들을 필요로 하기에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어쨌든 불분명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버리면 매우 혼란스러워지기도 하는 것이 이 '언어'라는 녀석이다. 그럴 경우엔 시대가 좀더 많이 흐르고 변천할 경우 그 역사적 평가와 그에 따른 용어 선택도 달라질 것이리라고 본다. 언어란 참으로 변덕스럽고도 불완전한 것이 아닐 수 없겠다.

'복음주의' 진영의 여러 단체들

온건주의(복음주의) 진영 단체로는 익히 잘 알려진 '기윤실'이나 올해 출범한 '기독교사회책임' 같은 단체들도 여기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곳 <뉴스앤조이> 언론도 공공연히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혹시 더 찾아보고 싶다면, 올해 8월 초에 열린다는 '성서한국대회'에 참가하는 단체들 목록을 살펴봐도 좋겠다.

아마도 거기 나오는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권 단체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성서무오설의 보수적 입장(신앙고백)과 진보적 사회참여(프로그램)가 같이 갈 수 있다고 보는 동네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꾸로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볼 경우엔 그나마 서로 교류가능하다고 보는 보수 진영이 바로 복음주의 진영이기도 하다.

실례로, 교회개혁실천연대 같은 단체는 온건한 복음주의 진영에 속하는 단체면서도 진보권의 단체들과도 잘 소통하는 매우 개혁적인 성향의 단체에 해당한다. 한때 진보 기독교인들마저 호응했던 「복음과 상황」이라는 월간지 역시 그러한 온건주의 진영에서 나온 기독교 월간지였고, 여기에는 다소 보수-진보 간의 갈등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복음주의 진영은 열린우리당식의 중도적 성향 진영

이 같은 성향들을 짐작해볼 때 온건주의(복음주의) 진영은 정치판의 중도를 표방하면서 보수와 진보 양쪽 다 거리를 두면서 포괄하기도 했던 열린우리당을 생각하면 거의 들어맞다. 일정부분 '개혁'을 표방하지만 명확한 선택의 지점에 가면 두루뭉술해지거나 각각 혼선을 빚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연유로 복음주의권의 색깔은 '회색'이라고도 말한다.

대체적으로 이들은 종교다원주의에 대해선 보수적 입장이며, 한국 민중신학 같은 진보 진영의 흐름에 있어서도 받아들이는 자도 있지만 거부하거나 잘 모르고 있는 자들도 많다.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서도 입장들이 서로 혼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은 정치, 사회운동에 대해선 지대한 관심과 참여를 가지고 있는 진영이 바로 이들이다.

내가 볼 때 이러한 온건주의 진영은 보수 진영에서 나온 일정부분의 교회갱신과 사회참여의 세력들이라고 보여진다. 본래의 한국 기독교계가 대부분이 보수 진영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그러한 한계 안에서 진보 진영에 대한 눈뜸과 그 응답으로서의 형성된 그룹들인 측면 또한 없잖아 있다. 즉, 이들 안에도 보다 더 근본적이고 보수적인 교회들에 대해선 반감을 표출하는 자들 역시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여기에는 수구적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중도개혁의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자들이 동시에 포진해 있을 만큼 신학적 이념과 정치적 이념들이 정리되지 않게 걸쳐 있는 혼재된 중간 진영이 바로 소위 '복음주의'라고 불려지는 진영인 것이다..

정강길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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