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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드디어 버스를 타 봤다. 홍콩에서장애인이어도 상관없이 탈 수 버스 시설들이 부럽더라
이정훈 | 승인 2005.12.22 00:00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동네에서 뛰놀 때 별 생각 없이 친구들 등에 업혀 좁디좁은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에 충분했었다. 워낙 달동네 지역이라 다닥 붙은 집들은 밤중에 부부 싸움하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이니, 돌아다닐 수 있는 곳도 그리 멀지 않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도 부모님께 의지하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통학하기에는 별 부족함이 없었다.

   
홍콩의 2층으로 된 대중교통 버스. 저런 버스들이 모두 저상에 리프트 시설을 갖추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라는 시설에 다녀야 할 사정이 변하면서 장애라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보다 배나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것은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내게 있어 가장 큰 통학 수단은 택시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택시비가 그리 비싸지 않아 별 부담이 없었지만, 지금은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그렇게 저렇게 가끔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의지해 도저히 택시로 움직이기에는 먼 거리는 버스를 타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는 내게 가장 쾌적한 운송 수단이었다.

사실 택시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선택해야 했던 이유는 턱없이 높은 계단의 버스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나 후배들에게 업혀 올라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높이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척추가 심하게 휘어버린 나로서는 거의 팔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내 허리만큼 오는 버스의 계단을 오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는 것이지만, “그런 현실을 어쩌겠어?”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즉 뭔가에 대해 장애인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고, “왜 저렇게 해야 할까?” 하는 불편한 마음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더욱 이런 내 자신을 보며 깜짝깜짝 놀란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 같아서 말이다.

   
▲장애인이건 일반이건 버스에 탑승하기 쉽도록 리프트 시설이 갖추어진 홍콩의 대중교통 버스. 한 관광객이 아주 쉽게 여행용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오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난 장애인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 온 것 같다. 난 분명 뭔가를 똑같이 할 수 없는 장애인데 말이다.

이번 기장 대안 지구화 실천단의 일원으로 홍콩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대중교통 수단인 2층 버스의 턱이 아주 아주 낮았다는 것과 그것도 모자라 장애인을 위해 아니 일반 승객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버스에 접혔다가 펴졌다 할 수 있는 리프트 시설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전 이해가 없었던 나로서는 공항 청사를 빠져 나오며 현지 교통 체계와 요금 체계가 가장 궁금했었다. 이리 저리 이동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충분한 택시비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기우였다.

공항 밖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 처음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리프트 시설을 한 버스가 한두 대 정도가 아니라 모든 버스가 리프트 시설을 갖추었다는 점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들이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풍문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홍콩이 선진국이 아니라 해도 내게는 선진국이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라는 면에서 그러했다.

사실 현재 한국에서, 아니 서울에서는 몇몇 저상 버스가 운행되고 있지만, 리프트 시설을 갖춘 버스들은 잘 못 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서울을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 정도가 더 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내가 경험한 현실이다. 그런데 홍콩에서는 연수가 오래 된 버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버스가 저상 버스이고 리프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오래 된 버스들도 저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계단이 몇 개 더 있다는 차이에 불과했다.

또 한 가지, 홍콩에서 머무르는 동안 숙소를 옮겨야 했었다. CCA가 주최한 신학포럼을 참여한 동안 머물러야 했던 곳은 ‘우 카이 샤’라는 곳의 YMCA 청소년 센터였다. 그리고 신학포럼이 끝나고서는 홍콩 시내에 있는 YMCA 호텔로 이동했었다.

그런데 이 두 곳 모두에는 휠체어를 갖추고 있었고, 그 덕에 모든 곳을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었다. 지하철이건 버스건 별 어려움 없이 말이다. 아니 휠체어를 타고 다녀도 대중교통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경험은 12월13일(화) 한국민중투쟁단이 주도한 WTO 반대 랠리가 있던 날도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로 이동했었다. 지하철을 타고 빅토리아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지하철 직원에게 물어 찾았는데, 마침 고장이 났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3분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무전기를 들고 한참을 뭐라고 하더니 연실 미안하다고 인사를 해왔다. 나의 짧은 영어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우 카이 샤의 YMCA 청소년 센터에서 휠체어를 타고 혼자 다니는 모습을 찍어봤다. 근데 휠체어 밀어 줄 생각은 안 하시고 사진을 찍고 있는 분은 누구였지?
연신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사람을 자세히 보니 경찰이었다. 빅토리아 공원에서 있을 랠리로 인해 지하철역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속으로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저도 여기 시위하러 왔는데요!”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다. 사실 영어가 짧기도 해서...^^;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홍콩의 이러한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없었다면 홍콩에서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먼 거리의 랠리를 참여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랠리를 참여했기에 그 수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중에 홍콩의 이러한 시설들과 사고 체계가 정말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돌아가면 일상에서 부딪혀야 할 장애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시설들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지금도 그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분명 장애가 죄는 아닌데 왜 이런 짐을 져야 하는지 아직도 의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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