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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이라는 작은 몸짓밖에 할 수 없었던 목회자였지만[인터뷰] 한국 농민의 현실을 몸으로 알린 신민주 목사
이정훈 | 승인 2005.12.24 00:00

신민주 목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가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안 믿는 눈치다. 첫 인상에서 풍겨 나오는 모습은 도시 스타일의 깔끔함이 묻어 나온다. 한 마디로 지적으로 생겼다는 말일게다.

   
농촌목회를 하고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깔끔한 스타일의 신민주 목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를 마치고,  목회를 하면서도 현재 목회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그는 몇 번을 만나보아도 ‘시골 틱’(?) 하지 않다. 속된 말로 생긴 거와는 다르게 “어떻게 농촌 목회를 하게 되었을까?”도 궁금해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농촌 목회

어떻게 농촌 목회를 하게 되었을까? 그의 신앙 경력을 알게 되면 더욱 더 그런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는 아주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신학대학에서 학부 시절을 보내며, 학보사 사장도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인가 그에게 교단이 원하는 착한 목회자가 되지 못하도록 한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신 목사는 자신의 학부 시절을 이렇게 표현한다. “총신대학의 학보사 일을 맡아 하면서 교권주의와 교리주의에 갇혀 있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제 자신도 갇혀 버리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진로를 옮겼지요.”

그렇게 해서 옮긴 학교에서는 어땠을까? “한신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참된 나의 하나님을 만났지요.” 많은 해방감을 느낀 모양이다.

이런 저런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며 학생 시절을 겪었던 그가 또 어떻게 쉽지 않은 농촌 목회의 길을 가려는 생각을 했을까? 그도 “처음부터 농촌 목회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기장에서 전도사 시절을 살았던 민중교회에서의 경험을 살려 대학원을 마치고 민중교회(현 생명선교연대)로 돌아갈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신학대학원 3학기 때 목회실습을 농촌개발원에 갔고, 그 곳에서 이태영 목사(현 한국기독교장로회 농촌개발원 원장)와 이세우 목사(현 전국농민선교목회자협의회 부회장)를 만난 후 농촌 목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부임한 곳이 “개야제일교회”였고, 지금은 그렇게 시작된 농촌 목회 10여년에 3번째로 부임한 ‘방울토마토’로 유명한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 위치한 세도교회이다. 면 소재지에 위치해 있는 100명이라는 적지 않은 교인들과 “행복하고 힘 있는 목회”를 하고 있다.

교회를 옮기면서 한 번도 스스로가 원해서 옮긴 적은 없다고 하니,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다고 해야 하나?” 때에 맞게 적절하게 옮긴 것으로 그는 평가한다. 이 세도교회로 부임한지 1년이 조금 넘어 가고, “이곳이 저에겐 농촌목회의 터전으로 삼아도 될 듯싶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니 농촌 목회에 뼈를 뭍을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데, 이젠 그도 농촌 목회가 몸에 베어가는 모양이다.

총무는 예상했지만, 삭발은?

10여년 농촌 목회의 또 하나의 열매라고 해야 할까? 그는 지금 현재 기장 전국 농목 총무를 맡고 있다. 지난 6일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세도교회에서 열린 총회에서 총무로 당선되었다. 진작 부총무 직을 수행하고 있어서 총무가 되리라는 것은 예상된 것이었다.

   
삭발할 당시 이발 기계가 방전되어 급기야 가위로 듬성듬성 삭발을 해야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는데, 총무로 당선된 지 이틀 만에 홍콩으로 날아가 삭발을 하게 된 사연이었다. 사실 홍콩으로 가게 된 일도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농목 자체 정책협의회 때 기장 총회 선교국장인 정진우 목사가 총회에서 준비한 “기장 대안 지구화 실천대표단”에 농목이 합류해 주기를 요청했었다. 또한 WTO의 협상 내용 중 가장 첨예한 현안이 농업문제이고 농촌목회자의 실제적 일이기도 해서 16명의 대표단에 농목 6명이 결합하게 되었다.

총무도 예상했고, 홍콩 가는 것도 예상했었지만, 삭발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의 속사정은 이렇다. “첫 랠리가 있기 하루 전, 기장 대표단이 모여 우리의 의지를 표현할 방법을 함께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그 중 목사로서 농민들에게 우리 목회자들도 함께 한다는 의미의 힘을 실어줄 뿐 아니라, 농민들의 극단적인 과격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의미에서 삭발이 가장 무난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목 부회장인 이세우 목사와 총무인 자신이 삭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가지 웃지 못 할 일은, 원래는 “기장 농목에서 이세우, 신민주 그리고 박승규 목사까지 삭발을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삭발을 위해 동원(?)되었던 이발 기계가 도중에 밧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머리 깎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결국 이세우 목사와 신민주 목사만 삭발을 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신 목사는 급기야 가위로 듬성듬성 깎아야 했다.

이 웃지 못 할 사연도 사연이거니와 삭발할 때의 심정이 어땠냐고 하는 기자의 질문에, “삭발식을 하고 있는 내내 제 마음을 괴롭힌 것은 ‘목회자란 무엇인갗에 대한 자책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대표해서 그런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데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왜 그런 자책감이 들었을까?

“우리야 삭발하는 것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싸워야 하는 농민들에겐 항상 앞에서 선언하고 빠지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의 역할이 항상 이런 모습이어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하지 않는가?’ 등에 대한 죄스러움이 저를 더욱 눈시울 적시게 했습니다.”

삭발하는 동안 또 하나 그를 울게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삭발을 하는 현장에 제 뒤에서 전농 대표단 몇몇 분들이 지속적으로 외쳐대는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존경합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목사님, 우리도 힘차게 싸우겠습니다!’”

그렇지만 말이 쉬워 삭발이지 돌아가 그가 목회하고 있는 교인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결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뭔가 모를 심지가 느껴졌다. 그 차에 한국에서 만났을 교인들의 반응까지 물어보았다.

   
삭발을 하고 대표단의 제일 선두에서 랠리를 진행하고 있다.
“홍콩에서 삭발한 것에 대해 미리 당회원들에게 알렸었고, 교인들에게 광고가 되었기에 삭발한 머리를 보이는 순간 한차례의 웃음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찬가를 제목으로 설교하던 중 홍콩에서 삭발을 하게 된 경위와 함께 농민을 위한답시고 했던 그 작은 몸짓밖에 할 수 없었던 저의 무기력함에 대한 용서를 구했죠.”

“교인들의 대다수가 눈물짓더군요. 그 순간이 저에겐 더 큰 감동이었구요. 내가 농촌 목회자로 교인들이 목사의 행동에 함께 공감하고 감사해 하는 모습 속에서 제가 머물러 있는 자리가 훨씬 든든한 힘으로 느껴지더군요.”

자신 스스로는 작은 몸짓이었다고 하지만 이 사건 때문이었을까? 이번 WTO 회의 동안에는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이경해 열사가 할복(割腹)한 것과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자 보기에 목회자로서 그들의 몫을 다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식적 연대를 통해 우리를 지켜내야

그러나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세계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고 했던, 국가 원수의 말을 생각해 보면, 언젠가는 아니 이미 우리 농촌은 개방화와 자유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 중이다. 결국 농촌의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사실일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농촌이 어려워지면 농민들이 교인인 농촌교회도 마찬가지로 함께 힘겨워지겠지요. 앞날을 어떻게 예단할 수 있겠습니까만 다만 우리의 현장 속에서 농민들과의 더 끈끈한 연대와 농촌교회들 간의 의식적 연대가 필요하겠지요. 다만 하나님께서 농민들을 버리시지 않으시며, 반대로 분명히 높이실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낮은 자리에서 우리의 언어로 우리를 지켜내는 데 힘을 다해야겠지요.”

어려워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알면서도 그곳에 생명이 있음을 그것이 생명임을 알기에 지키고자 하는 농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정의로움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한 믿음으로 그가 지키고자 하는 농촌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이 되기를 기자도 기도드려 본다.

   
기장 대표단에서 함께 삭발을 한 이세우 목사와 함께.
“저희 교인들과는 지난 1년 동안의 세월이 어디가 길인가를 보는 눈을 기르는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이제는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 가는 도반들이니까요.”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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