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교리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처음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셨을 때, 당신이 공부한 미국의 한 신학교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풍경 1 : 박사과정 인터뷰 가는 신학생이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를 직직 끌고 갔다.
- 그래도 당신은 놀라지 않았다. 자신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신학교를 졸업했으므로.

풍경 2 : 그 학교 모 노(老)교수는 수업 시간에도 담배를 피웠고 손가락만한 이동식 재떨이를 가지고 다녔다.
- 그래도 당신은 놀라지 않았다. 자신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신학교를 졸업했으므로.

풍경 3 : 그 학교 옥상에는 바(bar)가 있었다.
- 그래도 당신은 놀라지 않았다. 자신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신학교를 졸업했으므로.

풍경 4 : 그 학교에는 게이 코코스라는 동성애 동아리가 공개적으로 있었다.
- 이 일은 유학 마치고 귀국 때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풍경 5 : 그 학교 채플시간에는 신학생도 축도한다.
- 노코멘트

가톨릭 신부임을 증빙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부를 나타내는 검은 셔츠에 하얀 로만칼라, 미사 때 사제만 가능한 포도주 마시는 일, 고해성사 등 성례식 베푸는 것, 뭐 이런 것 아닐까 싶다.

그러면 개신교 목사를 증빙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톨릭 사제와 비슷한 로만칼라셔츠(가톨릭의 모방인듯하다), 성례식, 설교권, 축도권 이런 것일까?

그런데 개신교에서 설교는 가끔 목사가 아닌 사람도 한다. 시골에서는 장로님들도 설교를 하고 보통 교회에서도 꼭 목사는 아닐지라도 “선교사”와 같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설교를 하기도 한다. 목사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을 ‘간증’이라 이름 붙여 굳이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개신교에서 축도라는 것이 있다. 축도는 목사만이 한다.
장로 열이 있어도 축도는 못한다. 이 축도라는 것은 목사를 목사이게 하는 한 상징이다.

지난 달 두 번 교회를 비웠다.
그러는 바람에 다른 목사님 두 분이 우리 교회를 와서 설교를 하시게 되었다.
예배 사회는 두 번 다 우리교회 박 집사님이 보게 되었다. 박 집사님은 사업가이다.
예배 설교는 한번은 여성목회자인 김 목사님, 다른 한번은 ‘예장합동’의 이 목사님 이렇게 오셨는데(우리 교회는 기장이다) 이목사님이 설교하시던 그 주 예배 끝에 박 집사가 ‘축도’를 해버렸다.

우리 주보 예배 순서에는

“사라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복이,
자녀를 고이 품어주시는 어머니처럼
우리 위에 깃드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빕니다.”

라는 문구가 있고 이것을 내가 읽으므로 예배를 마친다(우리 교회는 다른 많은 교회들처럼 목사인 내가 사회보고 설교하고 다 한다).

그런데 예배 후 이 목사님은 당연히 당신이 축도를 하는 줄 알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사회를 본 박 집사가 그냥 ‘축도’를 해 버린 것이다(축도문을 읽어버리는 것으로).

이 목사님은 대단히 뻘쭘하여 손을 스르르 내리시고 예배는 잘 끝났다(이 풍경은 기도시간에 눈을 감지 않는 어느 초등학생이 알려준 것이다).
교인 중 아무도 문제제기 하는 사람도 없다.

문제제기 뿐 아니라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마음에 두는 사람도 없다. 아마 이 사건 자체를 우리 교우들은 모를 것이다. 

그날 사회 본 박 집사님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했고 교우들도 모르고 넘어가고 또 이 일이 신앙과 무슨 큰 관련이 있는 일도 아니다.

내가 이런 일을 소재로 글을 쓰는지 조차 우리 교우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 교회는 평온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일을 염두에 두고 기억하는 사람은 우리 교회에서 오로지 목사인 나뿐이다.

전성표  156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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